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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문체반정을 일으킨 진짜 이유, 뭐였을까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를 읽고

등록|2012.11.27 20:39 수정|2012.11.27 20:39
개혁군주로 알려진 정조. 즐겁게 보았던 드라마 <성균관스캔들> 배경도 정조시대다. 만일 배경이 다른 시대였다면 드라마가 그렇게까지 인기를 끌긴 힘들었을 것이다. 정조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을 가졌기에 주인공들의 패기와 꿈이 펼쳐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이 유독 많다. 그런데 항상 옳은 정책만 폈을 거 같은 정조가 의외의 정책을 펴기도 했단다.

2년 전, 보리출판사에 연 강의 제목 '정조의 문체반정-누구를 위하여 문체를 바꾸라 하십니까?'를 읽고 깜짝 놀랐다. 개혁군주 정조가 새롭게 유행하는 소품체 문체를 걱정하며 고전의 문체로 돌아가라고 신하들과 선비들에게 명했단다. 그동안 들었던 정조의 이미지와 문체반정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정조가 문체반정을 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너무 듣고 싶은 강의였지만 강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강의 내용이 담긴 책이 새롭게 나왔다. 책 제목은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이고 보리출판사에서 나왔다. 기대했던 책이라 손에 책이 들어오자 단숨에 읽었다. 글쓴이는 김용심 선생은 <임금의 나라 백성의 나라>를 쓰기도 했다.

글쓴이는 당시 시대적 배경과 사도세자에 관한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어 나간다. 당시 정조가 어떤 지형에서 왕위에 올랐는지 알아야 정조가 편 정책에 대한 이해를 정확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듯하다.

영조시대에 <중국역사회모본>이란 책이 나왔다. 이 책은 글과 그림이 있는 화첩으로 요즘 시대엔 만화책으로 칠 수 있는 책이다. 그림이 100점이 넘게 들어가 있었다. 이 책의 서문엔 정통 유학을 벗어난 소설에서도 교훈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 그림을 그린 자가 바로 궁중 화원이다.

궁중화원을 시켜 그림을 그리게 한 사람은 바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다. 물론 이 책을 저자가 사도세자임이 밝혀진 것은 2009년의 일이다. 소설을 좋아하고 후대에까지 남기고자 했던 사도세자에 반해 정조는 "소설을 보면 나는, 춥지도 않은데 몸이 떨린다"고 했단다.

책을 읽다 보니 아버지와 다른 길을 살아야만 살 길이 열리는 정조의 처지가 이해가 되었다. 그러므로 정조는 소설을 애호했던 아버지와 반대로 소설에 대한 억압 정책을 폈다. 하지만 글쓴이는 정조가 아버지 때문에 소설은 싫어할 수는 있어도 소설 문체를 금지할 만큼의 개인감정을 내세워 정치할 임금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럼 정조가 문체반정을 일으킨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밀 듯 밀려오는 자유로운 소설에 대항해 성리학의 고전 정신을 지키려 했다던가, 탕평책의 일환으로 문체반정을 이용했다던가, 과거 제도의 문제점을 고치고자 문체 개혁을 내세웠다던가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사정들에 들겠지요. 소설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과 사도세자의 소설 애호도 은연중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고요. - 본문 20쪽

책은 각각의 이유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글을 풀어간다. 진정 문체반정으로 정조는 잘못된 문체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 당시 각 당파의 역관계에서 전략적으로 선택한 탕평책이었을까?

질문을 풀어가는 책 속엔 소설에 빠져 지낸 의외의 인물이 나온다. 김조순. 김조순은 자신의 딸을 정조에게 며느리로 시집보냈고 정조가 죽은 뒤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시작한 사람이다. 김조순이 정조 11년에 예문관에서 이상황과 함께 숙직을 서고 있었다. 정조는 공부하는 문신들을 아껴 간식이나 선물을 내려 주곤 했다. 그날도 정조가 주서를 김조순에게 보냈다.

주서가 가 보니 숙직을 서고 있는 이상황과 김조순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책상에는 책을 산더미처럼 높이 쌓아 둔 채 아주 심취해서 읽고 있었다. 정신없이 책에 빠진 모양새가 흐뭇하여 얼른 임금에게 알리려고 돌아서던 주서의 눈에 우연히 책 제목이 들어왔다. <평산냉연>. 아, 아니 이것은 청나라에서 들어왔다는 그 유명한 연애 소설이 아니던가!
본문 67쪽

이 일로 인해 5년 뒤, 정조는 김조순에게 자송문을 쓰게 한다. 김조순은 자송문을 정조의 마음이 흡족하게 잘 써냈다. 그 덕분에 김조순은 정조로부터 신임을 얻어 순조롭게 출세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결국, 정조 사후에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시작한 인물이 된다. 사실 자유로운 문체에 대해 매력을 느낀 사람들은 성리학의 규범을 따르고자 한 노론세력보다는 새로운 학문에 관심이 많은 남인세력일 것이라 상상을 했다. 그런데 되려 그 반대였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저항했던 인물로 박지원과 이옥을 꼽고 있다. 박지원은 집안이 어려워서 늦은 나이에 글을 배우게 된다. 덕분에 그의 글은 다른 사람들보다 고전 문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정조는 박지원에게도 자송문을 쓰게 시켰다. 하지만 박지원은 너무 죄가 커서 자송문을 쓸 수 없다고 해버린다. 이옥은 과거에서 장원했지만 소품체 문체를 쓴 것을 정조가 찾아 꼴찌로 처리한다. 하지만 이옥은 소품체 문체를 버리지 않고 결국 벼슬 길에도 오르지 않는다.

책을 읽기 전엔 정조가 어떤 의도로 문체반정이란 과한 정책을 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정조의 의도를 알 것 같아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선 후기에 새로운 시대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이 얼마나 컸는지는 문체의 변화를 통해서도 읽을 수 있었다. 새로운 글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은 지금 현재도 여전하다. 글 속에 자신의 삶을 담으려는 사람들과 글은 고상한 내용만 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글에 대한 다른 주장 중 어떤 주장이 승리하게 될까? 반복되는 문체의 싸움 잘 지켜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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