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서울시교육감, 혁신교육 위해 인사권 내려놔야
[주장] 개혁과 혁신 막는 '관료마피아'... 교육감이 결단해야
▲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서울시교육청. ⓒ 권우성
관료사회에서는 승진이 오랜 공무원 생활의 보람이고, 성공의 잣대가 된다. 문제는 여전히 승진과 보직이 능력과는 거리가 있고, '관료마피아' 형성의 지렛대가 된다는 점이다.
'지방공무원 평정규칙'에 따르면, 승진서열(=승진후보자명부)은 근무성적평정과 경력평정에 의해 결정되는데(70:30) 대략 2배수 내지 3배수의 범위 내에서 승진시험을 볼 자격을 얻게 되고, 평정점이 합산되므로 시험 성적만으로 승진서열을 뛰어넘기 어렵다.
근무성적의 평정은 평정단위별로 직근 상급 감독자, 차상급 감독자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감독자의 평가가 절대적이며, '드래프트제'와 같은 발탁인사와 결합될 경우 국·과장을 중심으로 한 하급자의 줄서기가 나타난다.
관료사회의 꽃은 국·과장이다. 기관장에게 전결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보조집행기관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편성·배분하며 상당한 인사권까지 행사한다. 인·허가권과 계약체결권도 행사한다. 특히 지방자치 내지 학교자치, 그리고 주민참여의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조건에서 이들 고위직 관료들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교육혁신, 교육감의 인사권 내려놓기가 먼저
따라서 주요 보직과 승진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는데, 기관장의 낙점을 받기 위한 줄대기가 극성을 부린다. 매관매직이 이루어질 때에는 돈으로, 그렇지 않더라도 기관장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 동문회, 향우회 등 온갖 인맥이 동원된다. 특히 정치인과의 관계는 매우 특별하다. 기관장은 정치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고위 관료들은 이들에게 이권으로 보답한다. 물론 정치인들 뒤에는 업자들이 있다.
그리하여 관료조직 내부의 인맥, 외부의 정치인, 업자 등으로 이어지는 관료마피아가 형성되는 것이다.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형성된 관료마피아는 기관장의 발목을 붙잡고, 정보와 권한을 독점하며 국민들 위에 군림한다. 전직 대통령이 재벌의 발호를 바라보면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한탄했다지만, 관료들의 비호 없이 어떻게 편법적인 경영권 상속과 부당 내부거래, 일감몰아주기 등이 가능했겠는가. 관료조직의 혁신 없이는 정의도 민주주의도 자치도 뿌리내릴 수 없다.
새로 선출될 서울시교육감이 교육청 관료들의 성향과 태도, 능력 등을 파악하고 있을 리 없다. 따라서 정치인이나 인맥 등을 통해 인재를 추천받을 수도 있다. 인사 존안자료를 참고할 수 있겠으나, 축적된 자료가 그리 많지 않다. 직접 면접을 하더라도 즉흥적인 평가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결국 기관장이 공직 임명권을 직접 행사하는 한, 줄대기와 줄서기의 결과가 그대로 인사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교육감에게 진정으로 혁신의지가 있다면 인사권을 직접, 스스로 행사하지 말고 내려놓아야 한다. 즉, 자신이 낙점하는 방식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시스템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비서실장이나 정책보좌관 같은 정무직, 또는 외곽의 연구소, 사업소 등에는 기관장의 정치적 동지나 측근을 임명할 수도 있겠지만, 보조기관은 낙점 방식으로 임명해서는 안 된다. 비서나 정책보좌관은 기관장의 입과 귀의 역할을 해야지 손·발 역할을 해서는 안 되며, 연구소·사업소는 본청 사업부서가 기획하여 위탁하는 사업을 집행하는 기관일 뿐이다. 국·과장 같은 보조기관은 풍부한 행정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업무를 기획하고 조정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물론 인재풀이 좁고 참신한 관료가 없다고 한탄할 수 있는데,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오히려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에 근거한 능력주의 인사가 중요하다. 시민사회가 전문가 집단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였다지만 과장이나 팀장을 할 만한 활동가들이 얼마쯤은 있고, 일정한 목표 비율을 설정하여 임용하면 조직 내에서 활력소 내지 소금 역할을 할 것이다. 개방형 공모제는 시민사회와 행정정보를 공유하고, 시민참여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긴요하다.
물론 외부공모는 제한적이고 내부공모가 중심이다. 인맥이나 천거에 의존하지 않는 능력주의 인사가 이루어진다면, 기존 관료들도 더 이상 줄서기나 줄대기에 몰입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능력으로 평가받고자 할 것이다. 관료조직 내·외부 인사와 의회 의원 을 참여시켜 공모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충분한 자료와 시간을 주어 비전, 역량, 경력 등을 평가하고, 평판조사 등을 시행한다면 일부 기득권층이 불만을 표출하더라도 대부분은 환영할 것이다.
물론 자리와 승진서열에 따라 정해진 임기도 없이 '본청 과장-지원청 국장(지원청교육장)' 등으로 옮겨가는 순환보직이 아니라, 적어도 2년 정도는 안정적인 근무기간이 보장돼야 할 것이다.
관료제 개혁없이 혁신교육 성공 못한다
줄서기·줄대기 인사가 사라지면, 관료마피아의 존립 근거가 약화된다. 정치인, 업자들과의 유착관계가 사라지면,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편성·배분하는 권한이 더 이상 이권이 될 수 없다. 이권이 사라지면 더는 행정정보를 독점하거나 의사 결정 과정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려고 고집할 필요도 없다.
학교 혁신과 관련지어 본다면, 교육관료들은 그동안 교육사업이나 시설사업 예산을 본청에서 틀어쥐고 학교자치를 옥죄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경직된 교육과정을 강요하는 만큼 이를 유연하게 운영할 여지가 거의 없었고, 동아리활동, 기초학력부진학생 지도와 같은 학교의 거의 모든 교육활동에 대하여 본청이 사업을 기획하고 지침과 예산을 내려 보냈다.
시설사업도 화장실보수, 계단보수와 같은 사소한 유지·보수공사조차 모두 교육청 차원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여 단위학교에 예산을 배정하였다. 학교 운영위원회가 있어도 학교의 여건과 필요에 따라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할 여지가 없었다. 본청이 하달한 목적사업을 교장과 행정실장, 부장교사 선에서 집행하고, 실적을 보고하면 되었다. 여타 교사들은 어떤 사업에 얼마만큼 예산이 배정되었는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서울형 혁신학교에는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평균 1억4000만 원 꼬리표 없는 학교운영비가 지원되었다. 따라서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 거버넌스가 작동되었다. 그러나 교육관료들이 교육·시설 사업을 독점하고 예산배분 권한을 틀어쥐고 있는 한 혁신학교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학교의 자율과 자치가 보장되지 않으면 혁신학교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행정과 교육재정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교육관료들의 기득권 구조를 깨야 한다. 교육관료들의 기득권 구조를 깨기 위해서는 우선 인사제도를 혁신해야 한다. 인사제도의 혁신은 교육감이 인사권을 직접 행사하지 않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모심사시스템에 맡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최소한 전문직과 일반직 인사부서(총무과, 교원정책과) 그리고 학교혁신을 선도할 학교혁신과, 학교지원과부터 공모제를 실시할 것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글을 쓴 송병춘 기자는 서울시교육청 감사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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