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배추 월계관' 쓴 문재인 김해에선 "노무현 짓밟은 세력과 한판"
문재인, 1박2일 영·호남 횡단 강행군... 30일엔 '보수 아성' 대구 공략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9일 오전 여수 서교동 서시장의 한 야채가게를 방문, 상인이 배춧잎으로 만들어준 '배추 월계관'을 쓰고 "대선에서 꼭 승리하라"는 응원메시지를 들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 남소연
야채 좌판이 모여있는 시장 한복판에서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여수 서교동 서시장을 찾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머리에 가게 주인 곽초자(68)씨가 배춧잎을 올리자 문 후보는 물론 지켜보던 상인들이 큰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곽씨는 문 후보에게 "대선에서 꼭 승리하라"며 응원을 보냈다. 짓궂은 장난이었지만 문 후보로서는 대선 레이스 승리를 염원하는 '배춧잎 월계관'을 선물로 받은 셈이었다.
문 후보가 지나가자 동료 상인들은 곽씨에게 "자네 완전 스타돼부렀네. 한턱 내소"라며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문 후보는 이곳 시장 상인들에게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한 중년 여성은 "문재인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손글씨 피켓을 직접 들었고, 다른 한 상인은 급한대로 스티로폼 상자 뚜껑에 "문재인님, 당신을 응원합니다"를 쓴 채 문 후보를 뒤따랐다.
1박2일 영·호남 횡단 유세 나선 문재인... 10곳 유세 강행군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9일 오전 여수 서교동 서시장에서 유세를 펼치자, 한 시장상인이 급한대로 스티로폼 상자 뚜껑에 "문재인님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응원메시지를 적어 유세장으로 향하고 있다. ⓒ 남소연
29일 문재인 후보는 1박 2일 영·호남 횡단 유세 강행군을 시작했다. 대선 초반 판세를 가를 첫 주말 대회전을 앞두고 핵심 지지기반을 다지고 이번 대선에서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경남 지역 표심 잡기에 나선 것이다. 이날 문 후보는 전남 여수·순천·광양을 거쳐 경남 사천·진주·김해를 내달렸다. 영·호남을 넘나들며 10여곳에서 유세를 펼치는 총력전이었다.
첫 방문지는 안철수 전 예비후보의 처가가 있는 여수였다. 문 후보로서는 호남에서 안철수 전 후보 지지층을 온전히 흡수해 내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20% 득표를 저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문 후보는 오전 10시 30분경 서시장을 찾아 거리유세를 하고 상인들을 만났다. 유세장 분위기는 시장 안 보다 비교적 차분한 편이었다. 장날이었지만 이른 시간인 탓인지 민주당 텃밭치고는 적어 보이는 600여 명 정도만 모였다. 멀리서 유세를 지켜보던 김종수(62)씨에게 "민주당 후보가 왔는데 과거에 비해 분위기가 썰렁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다 문재인잉께 그라제. 박근혜 찍을 사람이 얼마나 있것소. 그러니까 와서 연설하면 그런가 부다 하는 거여. 맘은 이미 다 정해져 있어."
연단에 선 문 후보가 "참여정부 때 호남의 한과 설움을 풀어드리지 못해 송구스럽다, 기필코 세 번째 민주 정부를 만들어서 다시는 호남의 설움·소외·홀대 같은 말을 듣지 않도록 하겠다"고 하자 무대 아래서는 "괜찮다", "앞으로 잘하면 되지"라는 '쿨'한 반응이 돌아왔다.
유세를 지켜보던 박 아무개(48)는 오히려 문 후보의 유세 동선을 걱정했다. 그는 "오니가 얼굴 한번 보는 것은 좋은디 여기는 오지 말고 표 안나오는데를 더 열심히 다녀야할 것인디... 안철수(전 후보)가 들어갔응께 여기는 안와도 문재인 찍어준다"고 말했다.
오전엔 힐링 타임, 오후엔 적진 공략
이날 오전 텃밭에서 받은 격려를 에너지원 삼아 오후에는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남해안을 따라 경남 사천을 거쳐 진주·김해 등 아직까지 새누리당의 강세가 이어지고 있는 경남 지역 흔들기에 나섰다. 문 후보는 이 지역에서 지난 4·11 총선에서 야권이 득표한 40.2%를 넘어야 대선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고 있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9일 오후 진주 중앙시장 유세에서 '기호2번'을 그려보이며 대선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 남소연
현장 분위기는 고무적이었다. 새누리당의 전통적 텃밭이라는 점이 무색하게도 여수나 순천 보다 오히려 뜨거웠다. 오후 3시 30분 경 문 후보가 진주 대안동 중앙시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400여 명의 시민들 사이에서는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문 후보가 연단에 오르자 유세트럭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사진·카메라 기자들이 시야를 가리자 "좀 비켜봐라, 문재인 얼굴 좀 보자"고 불만을 터뜨리기도했다. 쇼핑을 나왔다가 문 후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30분을 기다렸다는 모녀는 "박근혜 후보 보다 문 후보에게 더 믿음이 간다", "젊은 사람들은 지역주의 같은 거는 모른다"며 지지의사를 나타냈다.
문 후보는 "지난 총선에서 경남은 역대 선거 사상 최대 야권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경남이 정권교체의 진원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낳고 키운 경남도민들이 정권교체의 선두에 서 달라"고 호소했다.
문 후보는 경남에서도 지역발전 소외론이 강한 서남부 지역의 반 여당 정서를 파고들기도 했다. 그는 "참여정부는 진주혁신도시를 서부경남 발전의 거점으로 만들고자 했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지지부진해졌다"며 "진주시민 여러분이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시면 진주혁신도시를 서부 대표도시로 발전시켜 균형발전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진주 유세장에서 만난 이아무개(72)씨는 "여기도 무조건 한나라당(새누리당)이라고 하는 것은 옛말"이라며 "누가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누가 진주에 자식들 일자리 많이 만드는지를 보고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문 후보의 유세를 취재하던 현장 기자들 사이에서는 "진주가 (여수·순천 보다) 분위기가 더 좋다"는 반응이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길이 좁아서 그렇지 좀 넓은 장소를 잡았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문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도 여전했다. 한 20대 여성은 "원래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려고 했는데 1000만 원 짜리 명품의자, 다운계약서 논란 등 서민 코스프레가 들통났다"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고향 김해 찾은 문재인 "노무현 꿈 짓밟은 세력과 한판 승부"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9일 경남 김해시 내외동에서 열린 유세에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9일 오후 김해 내외동 사거리에서 유세를 펼치자 지지자들이 문 후보를 응원하며 연호하고 있다. ⓒ 남소연
문 후보의 마지막 일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마을이 있는 김해였다. 경남 지역 중 가장 민주당에 호의적인 이곳에서는 1000여 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문 후보의 유세를 지켜봤다. 문 후보의 메시지는 이날 방문한 어느 곳 보다 강경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제기한 '참여정부 실패론'과 노무현 프레임으로 옭아매기에 대해서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문 후보는 "김해는 노무현 대통령이 누워계신 곳이고 그가 못 다한 꿈이 서려 있는 곳"이라며 "이번 대선은 노무현의 꿈을 짓밟은 세력과의 한판 승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제가 대통령이 돼서 노무현이 도전했던 새로운 정치, 지역주의 타파, 균형주의 발전, 원칙과 상식의 세상을 만들겠다"며 "노무현을 민주정부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여러분이 저를 세번 째 민주정부의 대통령으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문 후보는 1박 2일 일정의 두 번째 날인 30일에는 '보수의 아성'인 대구 지역에서 득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문 후보 측은 대구경북 지역에서의 절대적 열세는 쉽게 뒤집을 수는 없지만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적어도 20% 이상은 득표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다. 박 후보가 새누리당의 불모지인 호남에서 20% 득표를 목표로 뛰는 것과 비슷한 처지다.
지난 총선에서 3선을 한 군포 지역구를 떠나 대구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수성갑에 출마해 40.3%를 득표한 김부겸 전 선거대책위원장이 대구 공략의 선봉에 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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