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에게 '국민대통합' 진정성을 묻다
세종, 정조 그리고 백범 김구에 비추어 본 '국민대통합'
두 대통령 후보와 한 전 후보가 같은 말들을 한다. 박근혜 후보, 문재인 후보 그리고 안철수 전 후보. '국민대통합', '새정치, 혹은 정치혁신' 그리고 '경제민주화'.
지난 12월 3일 안철수 전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대립적인 정치와 일방적인 국정운영이 계속 된다면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지 못한다"며 "이번 선거가 국민을 편 가르지 않고 통합하는 선거, 국민들에게 정치혁신, 정치개혁의 희망을 주는 선거, 닥쳐올 경제위기를 대비하고, 사회 대통합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간곡하게 호소한다"고 밝혔다. 안 전 후보는 박, 문 두 후보를 비판하면서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국민대통합'임을 제시한 것이다.
'국민대통합'. 그렇다면 평소 이를 정치적 수사와 행동으로 실천했던 이는 누구인가? 이에 답하기 전에 국민통합을 실천했던 우리 역사 속 인물부터 살펴보자.
먼저 세종, 세종의 즉위교서 화두는 '시인발정(施仁發政)', 즉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발흥하겠다는 소신이었다. 사계에서는 이를 민본 철학의 천명으로 본다. 하지만 이면에는 태조, 정종, 태종에 이르는 피튀기는 권력투쟁에 방점을 찍으면서 선대 공신들을 모두 끌어안겠다는 통합정치의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거슬러 고려 말 중신들을 향한 관용과 포용까지 말이다. 세종의 '시인발정(施仁發政)'은 맹자의 '발정시인(發政施仁)', 즉 정치를 일으켜 어짊을 펼친다는 왕도정치의 근본철학에서 한 걸음 나아간 화두였고 실제로 재임 기간 이를 최우선의 실천강령으로 실천하였다.
다음 조선중 후기 중흥을 이끌었던 정조, 정조는 피말리는 당쟁에 휩싸여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다. 즉위교서의 화두는 '불이본(不貳本)', 즉 자신의 근본은 둘이 아니라는 천명이었다. 부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당파, 권력다툼 등 어느 분파도 묻지 않겠다는 천명이었고 1800년 안타깝게 죽음을 맞을 때까지 실학파까지 중용하면서 통합의 철학을 실천하였다.
통일을 생각하면 늘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백범 김구, 오늘 분단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광복 후 백범을 비롯한 상해임정이 무장해제 당한 상태에서 귀국하던 모습에서 비롯된다. 백범 김구 선생은 미국과 소련을 등에 업고 남북한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이승만과 김일성의 움직임에 반대하며 1949년 4월 19일 홀홀단신 38선을 넘는다.
백범은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는 말을 남겨 오늘을 사는 우리 가슴을 울리고 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진정한 국민통합을 논하려면 백범 김구 선생의 발자욱, 그 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백범기념관을 단일화 장소, 또 단일화 TV토론 장소로 선택했었다. 그러나 과연 국민통합, 남북통일의 대의 아래 단일화에 임했는가?
나는 기자 시절, 중대한 선택과 결단의 기로에 선 정치인의 선택이 궁금하면 그가 과거에 행한 족적을 추적해 보았다. 선택은 늘 그가 말하고 행해 온 족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이 세 사람의 '국민대통합'을 향한 행적을 거슬러 올라 보자. 먼저 박근혜 후보. 다음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자서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박 전 대표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했다...(중략)...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중략)...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자서전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4년 8월 12일로 기록하고 있다. 그 2년 전인 2002년 박근혜 후보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이름 이니셜 'GH'에 'Great harmony(대화합)'라는 의미를 부여해달라고 당부했었다. 박근혜 후보는 기록으로 보아 최소한 후보 이전 10여년 전부터 나름의 '국민대통합'을 말하며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후보가 되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휘호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찾았다. 비혹 성사는 되지 않았지만 고 전태일 열사를 찾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는 야권단일화를 국민대통합의 가교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안 후보의 사퇴와 해단식으로 국민대통합의 전제였던 야권단일화마저 남은 과제로 미룬 형국이다. 3일 해단식에서 안철수 전 후보의 수사(修辭 ; Rhetoric)가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국민대통합'의 대전제로 삼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가 이후 가야 할 정치인으로서의 화두 또한 '국민대통합'이리라 전망된다.
차제에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다. 국민대통합의 염원과 과제는 말만으로는 안된다. 스스로 속한 정파의 이익과 정략에 국민통합을 앞세우는 환골과 절치의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세 정치인에게 바란다. 박근혜 후보의 국민대통합 행보가 과거를 넘어 현재진행형으로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현실정치 속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져 나아가기를 바란다. 문재인 후보의 공정과 평등의 이념이 민주화의 틀에서 한 걸음 나아가 여야를 아우르는 성장과 분배의 정책으로 향하길 바란다. 또한 안철수 후보의 '생각' 정치가 현시점에 이르른 '국민을 편가르지 않는 사회대통합'의 실천으로 이어 나아가기를 바란다.
돌아보면 세종은 공신과 사대부 중심의 불합리한 조세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17년 동안 세계 역사에 전무후무한 끊임없는 연구와 실사 그리고 중신과 백성을 아우르는 수십만 모집단의 여론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공평무사한 세제개혁을 이뤄냈고 민본의 '발정(發政)', 즉 백성의 민생을 우선하는 정치혁신을 실천에 옮겼다. 어쩌면 이러한 세종의 발자취가 오늘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자로 존경받는 이유라는 생각이다.
세 후보가 한 목소리로 말하는 '국민대통합', '새정치, 혹은 정치혁신' 그리고 '경제민주화' 등의 화두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 모두가 직시하는 정권평가의 척도일 것이다.
지난 12월 3일 안철수 전 후보는 캠프 해단식에서 "대립적인 정치와 일방적인 국정운영이 계속 된다면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지 못한다"며 "이번 선거가 국민을 편 가르지 않고 통합하는 선거, 국민들에게 정치혁신, 정치개혁의 희망을 주는 선거, 닥쳐올 경제위기를 대비하고, 사회 대통합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간곡하게 호소한다"고 밝혔다. 안 전 후보는 박, 문 두 후보를 비판하면서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국민대통합'임을 제시한 것이다.
'국민대통합'. 그렇다면 평소 이를 정치적 수사와 행동으로 실천했던 이는 누구인가? 이에 답하기 전에 국민통합을 실천했던 우리 역사 속 인물부터 살펴보자.
먼저 세종, 세종의 즉위교서 화두는 '시인발정(施仁發政)', 즉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발흥하겠다는 소신이었다. 사계에서는 이를 민본 철학의 천명으로 본다. 하지만 이면에는 태조, 정종, 태종에 이르는 피튀기는 권력투쟁에 방점을 찍으면서 선대 공신들을 모두 끌어안겠다는 통합정치의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거슬러 고려 말 중신들을 향한 관용과 포용까지 말이다. 세종의 '시인발정(施仁發政)'은 맹자의 '발정시인(發政施仁)', 즉 정치를 일으켜 어짊을 펼친다는 왕도정치의 근본철학에서 한 걸음 나아간 화두였고 실제로 재임 기간 이를 최우선의 실천강령으로 실천하였다.
다음 조선중 후기 중흥을 이끌었던 정조, 정조는 피말리는 당쟁에 휩싸여 뒤주에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다. 즉위교서의 화두는 '불이본(不貳本)', 즉 자신의 근본은 둘이 아니라는 천명이었다. 부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당파, 권력다툼 등 어느 분파도 묻지 않겠다는 천명이었고 1800년 안타깝게 죽음을 맞을 때까지 실학파까지 중용하면서 통합의 철학을 실천하였다.
통일을 생각하면 늘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백범 김구, 오늘 분단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광복 후 백범을 비롯한 상해임정이 무장해제 당한 상태에서 귀국하던 모습에서 비롯된다. 백범 김구 선생은 미국과 소련을 등에 업고 남북한 단독정부를 수립하려는 이승만과 김일성의 움직임에 반대하며 1949년 4월 19일 홀홀단신 38선을 넘는다.
백범은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의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는 말을 남겨 오늘을 사는 우리 가슴을 울리고 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진정한 국민통합을 논하려면 백범 김구 선생의 발자욱, 그 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백범기념관을 단일화 장소, 또 단일화 TV토론 장소로 선택했었다. 그러나 과연 국민통합, 남북통일의 대의 아래 단일화에 임했는가?
나는 기자 시절, 중대한 선택과 결단의 기로에 선 정치인의 선택이 궁금하면 그가 과거에 행한 족적을 추적해 보았다. 선택은 늘 그가 말하고 행해 온 족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이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이 세 사람의 '국민대통합'을 향한 행적을 거슬러 올라 보자. 먼저 박근혜 후보. 다음은 김대중 전대통령의 자서전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박 전 대표가 아버지 시절에 여러 가지로 피해를 입고 고생하신 데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했다...(중략)...그 말이 참으로 고마웠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중략)...박정희가 환생해 내게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것 같아 기뻤다"
자서전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4년 8월 12일로 기록하고 있다. 그 2년 전인 2002년 박근혜 후보는 기자들에게 자신의 이름 이니셜 'GH'에 'Great harmony(대화합)'라는 의미를 부여해달라고 당부했었다. 박근혜 후보는 기록으로 보아 최소한 후보 이전 10여년 전부터 나름의 '국민대통합'을 말하며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후보가 되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휘호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찾았다. 비혹 성사는 되지 않았지만 고 전태일 열사를 찾기도 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는 야권단일화를 국민대통합의 가교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안 후보의 사퇴와 해단식으로 국민대통합의 전제였던 야권단일화마저 남은 과제로 미룬 형국이다. 3일 해단식에서 안철수 전 후보의 수사(修辭 ; Rhetoric)가 2012년 대선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국민대통합'의 대전제로 삼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가 이후 가야 할 정치인으로서의 화두 또한 '국민대통합'이리라 전망된다.
차제에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다. 국민대통합의 염원과 과제는 말만으로는 안된다. 스스로 속한 정파의 이익과 정략에 국민통합을 앞세우는 환골과 절치의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생각만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세 정치인에게 바란다. 박근혜 후보의 국민대통합 행보가 과거를 넘어 현재진행형으로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현실정치 속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이루어져 나아가기를 바란다. 문재인 후보의 공정과 평등의 이념이 민주화의 틀에서 한 걸음 나아가 여야를 아우르는 성장과 분배의 정책으로 향하길 바란다. 또한 안철수 후보의 '생각' 정치가 현시점에 이르른 '국민을 편가르지 않는 사회대통합'의 실천으로 이어 나아가기를 바란다.
돌아보면 세종은 공신과 사대부 중심의 불합리한 조세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17년 동안 세계 역사에 전무후무한 끊임없는 연구와 실사 그리고 중신과 백성을 아우르는 수십만 모집단의 여론조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공평무사한 세제개혁을 이뤄냈고 민본의 '발정(發政)', 즉 백성의 민생을 우선하는 정치혁신을 실천에 옮겼다. 어쩌면 이러한 세종의 발자취가 오늘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자로 존경받는 이유라는 생각이다.
세 후보가 한 목소리로 말하는 '국민대통합', '새정치, 혹은 정치혁신' 그리고 '경제민주화' 등의 화두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민 모두가 직시하는 정권평가의 척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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