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피' 마신 청춘, 이들이 누추한가요?
[불혹 배낭여행기②] 오리드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청년들
▲ 라제 아버지가 구해준 배를 타고 호수 위에서 바라본 오리드. 물빛 참 좋다. ⓒ 홍성식
마케도니아의 호수마을 오리드는 인구가 4만 명에 불과한 조그만 촌락이다. 관광객용 기념품과 티셔츠 따위를 파는 중심가는 걸어서 5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올드 타운' 역시 그 크기가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겨우 손바닥만 할 정도. 그러나, 그 작은 마을에 응축돼 있는 아름다움 탓인지 여름이면 여행자가 넘쳐난다.
관광객은 북유럽과 서유럽에서 온 이들이 주를 이룬다. 생성된 지 수백만 년이 넘었다는 거대한 호수는 알바니아 국경까지 뻗어 있고, 수십 미터 물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여기에 아기자기하고 예쁜 성당과 모스크, 고대 원형극장 등이 구 시가지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축조된 지 1천 년이 넘는 고성(古城)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써니레이크 호스텔, 시간을 잊게 만드는 그물침대
▲ 아주 오래 전 축조된 마케도니아 정교회 성당. 저 수평선 너머에는 알바니아가 있다. ⓒ 홍성식
이런저런 여행지로서의 매력 때문에 오리드엔 호텔과 민박 형태의 숙소가 넘쳐난다. 하지만, 욕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한 방에 여러 개의 침대를 놓아둔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호스텔은 단 한 곳뿐. 그 이름이 도시와 근사하게 어울리는 '써니레이크 호스텔'. 나는 햇살이 잘들 뿐더러, 비교적 높은 지대에 위치해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호스텔 3층 방에서 거의 한 달 동안 지냈다.
조코와 니노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형제가 운영하는 곳. 드물게 찾아오는 동양인 여행자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거기에 마케도니아인 특유의 유쾌한 친절함이 긴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햇살이 뜨거운 낮에는 주로 써니레이크 호스텔 조그만 정원에 마련된 그물침대에 드러누워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그처럼 달콤한 것인지 이전엔 알지 못했다. 저렴하고 감칠맛 나는 맥주 한 병을 옆에 두고 모든 생각을 멈춘 채 2~3시간씩 다리를 뻗고 길게 누워 흘러간 노래를 혼잣말로 흥얼거리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 써니레이크 호스텔 주변에서 발견한 고양이. 햇살 아래 게으르게 누워 있다.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홍성식
그곳에 함께 머물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유럽 청년들은 이런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호수에 뛰어들거나,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사진 찍기에 바쁜데 낮 시간엔 당최 정원 그물침대에서 내려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동양에서 온 게으른 아저씨가 이상하게도 보였을 것이다.
그럴 때면 호스텔의 주인 니노는 "한국에서 온 저 친구는 진짜 휴가를 보내고 있는 거야"라며 그 아이들의 호기심을 해소시켜줬다. 맞다. 난 거기에 달리 더 보탤 말을 찾지 않았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래서 누구나 알고 있는 이름난 장소를 찾아 그 앞에서 확인 사살 하듯 사진을 찍고 다시 더 유명한 곳을 찾아 급히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라는 걸 굳이 중언부언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 여름, 써니레이크 호스텔의 정원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역시 여행자의 권리 중 하나임을 내게 가르쳤다. 그런 유유자적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윽고 태양이 제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그때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아주 익숙한 동네를 산책하듯 호숫가로 나갔다. 세상에 존재하는 붉은 물감을 모두 뿌려놓는다 한들 저렇듯 선명하게 핏빛으로 아름다울까싶은 석양은 날마다 장관이었다.
▲ 해질 무렵의 마케도니아 오리드. 달 아래 새가 날았다. ⓒ 홍성식
▲ 오리드 호수의 석양.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동네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평화롭다. ⓒ 홍성식
그 피안의 풍경 같은 저물녘 속으로 가족 단위로 산책을 나온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 다녔다. 인형처럼 예쁜 아기들과 만면에 웃음을 띤 하얀 수염의 노인들까지 오래 만나온 피붙이인양 살갑게 보였다.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네면, 너나없이 더 큰 몸짓과 미소로 낯선 이방인을 반기던 그들. 조악한 낚싯대로 손가락만한 물고기를 잡던 동네 소년들과는 너나들이로 친해져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앞에 놓고 함께 깔깔거렸다. 그랬다. 마케도니아 오리드에서의 낮은 평화로웠고, 저녁은 은유가 아닌 직설의 '낭만적 풍경'이었다.
스무 살 아래 청년들과 '멧돼지의 피'를 마시다
음주가 부끄러움으로 여겨지는 터키 동부와 길거리 어디에서도 아예 술집을 찾아볼 수 없는 이란을 거쳐 온 탓일까. 동유럽으로 넘어와선 값싸고 풍미 좋은 유럽 맥주와 함께 하는 시간이 잦았다. 타의에 의해 한 달 넘게 이어진 금주 기간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것은 마케도니아 토속주 라키아와 맥주 '스콥스코'였다.
남유럽산 자두를 원료로 하는 알코올 도수 55도의 투명한 술 라키아. 풍부한 향과 거품, 시원스런 목 넘김이 근사한 스콥스코는 마케도니아 오리드에서 내가 만난 '또 다른 친구들'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거기다 조그만 동네 가게에서 파는 다양한 종류의 와인들은 또 어떠했던가. 1리터에 2~3유로(3000~4500원)인 '착한 가격'의 포도주 맛은 기가 막혔다.
▲ 마케도니아 오리드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 스콥스코. ⓒ 홍성식
저무는 오리드의 석양에 감탄하며 호숫가에서 마시던 스콥스코는 퇴색해가던 삶을 향한 열정을 떠올리게 했고, 밤이 내린 써니레이크 호스텔 정원 나무 의자에 앉아 나보다 스무 살이 어린 청년들과 나누던 '멧돼지의 피'라는 이름의 마케도니아산 와인은 잃어가던 문학에 대한 정열까지 돌려줬다고 말하면 과장이 심한 걸까.
맥주와 와인이 불러온 달콤한 취기에 온몸이 나른해질 즈음이면, 그곳에서 사귄 잘 생긴 마케도니아 청년 라제 파마코스키가 자신의 집에서 직접 주조한 라키아를 들고 정원을 찾곤 했다. 나를 향해 웃으며 술병을 흔들던 그는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서는 기타 연주자.
▲ 오리드 호수 인근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콘서트 무대에 오른 라제 파마코스키. 그는 한국의 소주를 꼭 마셔보고 싶다고 했다. ⓒ 홍성식
맥주와 와인, 토속주로 흥겨워진 분위기. 자정이 가까워지면 라제의 기타 반주에 맞춰 호스텔 손님 모두가 입을 맞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때론 열여덟 노르웨이 소년이 선창한 비틀즈의 옛날 노래였고, 어떤 날은 아일랜드 여대생이 스물여덟에 요절한 록커 짐 모리슨의 곡을 시처럼 읊조렸다. 프랑스 파리에서 왔다는 통통 튀는 개성의 스물한 살 니콜라는 제 나라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코믹하게 편곡해 불러 또래 여자애들의 박수 속에 행복한 웃음을 지었고.
그렇게 밤마다 써니레이크 호스텔 투숙객들은 나이 차이와 국경, 피부색을 뛰어넘어 친구가 됐고, 거기엔 항상 '또 다른 친구' 스콥스코와 포도주 그리고, 라키아가 동석했다.
리사·알리나·데이빗... 어떤 청춘도 누추하지 않다
▲ 왼쪽부터 라제(마케도니아), 알리나(오스트리아), 매트(호주), 데이비드(아일랜드). 마케도니아 오리드에서 머물 때 기꺼이 친구가 되준 이들이다. ⓒ 홍성식
오리드 써니레이크 호스텔에 1개월 남짓 머물렀던 2011년 여름. 스치듯 만난 여행자는 대략만 헤아려도 100명이 넘을 것 같다. 대부분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살고 있는 청춘들. 그중 여전히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찰랑이는 금빛 머리칼을 가진 스웨덴 여학생 리사. 장인이 만든 수공예품 인형처럼 예쁜 북구의 미인. 리사가 꿈꾸는 사파이어빛 눈동자를 빛내며 이런 말을 했다. "몇몇 사람만이 잘 사는 세상이 아닌, 가난한 나라의 헐벗은 이들까지 모두 어울려 아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전공으로 국제관계학을 택했다"고. 농담이 난무하던 술자리에서 들려준 리사의 진지한 고백은 나뿐 아니라 동석자 모두를 숙연케 했다.
"미국은 자신의 뜻대로 세계를 좌지우지한다. 하지만, 자연이 그 오만한 미국을 심판할 것"이란 말로 반골의 나라 아일랜드에서 왔음을 알린 데이빗은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가로질러 인도까지 간 뒤 배를 타고 호주로 가 체리농장에서 일할 것이라고 했다. 거기서 돈을 모으면 다시 자전거로 멕시코를 출발, 남아메리카의 끝 파타고니아로 갈 것이라고 했다. 아일랜드에서 대학을 마친 그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서의 안정된 삶을 과감하게 버리고 방랑과 모험에 생을 맡긴 것이다.
인종과 국가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가지지 않았기에 누구에게나 친절한 미소와 다정다감한 말투를 보여줬던 전정한 의미에서의 '평등주의자' 독일 은행원 잉고 역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80cm에 육박하는 키에 어울리지 않게 아기처럼 눈물이 많았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온 스무 살 여대생 알리나는 인도와 네팔을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히피였던 자신의 부모가 젊은 시절을 보낸 인도 해변에 가면 앞으로 뭘하고 살아야 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알리나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네 꿈이 내 꿈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말로 그녀의 소원이 곧 이뤄지길 빌어줬고.
▲ 호숫가 절벽에서 다이빙 하는 청년. 이런 모험도 청춘의 특권인 것 같아 부러웠다. ⓒ 홍성식
그렇다. 스스로에게 절망하여 꿈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누추한 청춘, 아니 누추한 인간이란 세상에 없다. 그해 여름, 마케도니아 오리드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그 당연한 명제를 새삼 깨닫게 해줬다. 나보다 한참은 어린 친구들에게 제대로 한 수 배운 것이다.
마흔 살, 가보지 않았던 길 위에서 만난 새로운 풍광과 낯선 사람들. 그것들에게서 얻은 깨달음과 배움을 잊지 않는다면 나 역시 꿈꾸는 인간, 누추함을 거부하는 인간으로 남은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여행에서 돌아온 지 1년이 넘은 지금도 아주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계간문예지 <문학의오늘>에 연재되고 있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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