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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대성통곡한 아이들, 이유가 있었다

[라오스 여행학교 마지막회] 인천 을왕리에서 마지막 밤

등록|2012.12.10 13:35 수정|2012.12.10 14:07

▲ 돈콘에서의 마지막 밤 ⓒ 양학용


하루의 해가 저문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탔을 때부터 주변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한국말들이 아이들은 낯설다고 했다.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와 배낭을 찾고 마침내 공항 로비로 들어섰을 때야 돌아왔다는 사실이 비로소 실감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을왕리에서의 하룻밤이 남아 있다. 그곳에서 다함께 여행을 마무리 짓기로 하고 민박집을 예약해 두었던 것이다. 을왕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공항을 나섰다. 한겨울의 찬바람이 몰려들었다.

우리들의 얇은 옷차림으로 2월초 대한민국의 겨울바람을 막아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춥지 않았고 오히려 좋았다. 우리는 돌아왔고, 모두가 다친 데 없이 건강했다. 무엇보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더운 여름을 한 달 동안 살고 온 우리들에게 한겨울 칼바람의 극한 대비가 아이들 표현처럼 심장이 쫀득쫀득해질 정도로 자극적이어서 상쾌하게 느껴졌다.

▲ 한 달 동안 여름을 보내고 겨울로 날아온 기념으로 ⓒ 양학용


찬 대기 속으로 우리들은 입을 모아 하얗게 입김을 불어넣었다. 버스정류장의 밤하늘로 입김이 안개구름이 되어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우리들은 여행에서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었다.

민박집 아주머니는 을왕리에 30년 가까이 사는 동안 올해처럼 추운 겨울은 처음이라며 창고에서 이불을 더 꺼내주셨다. 그리고 한 달 가까이 맡아주셨던 우리들의 겨울 외투가 담긴 종이박스를 내어주었다. 여행을 떠나던 날 공항에서 겨울 외투와 모바일, 아이들 짐 검사에서 제외시킨 물건들을 택배로 이곳 민박집에다 미리 보내놓았던 것이다.

아이들은 제일 먼저 모바일을 꺼내 집으로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냈다. 부모님들과 통화하는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 부부는 비로소 1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무사히 여행에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시 찾은 겨울 외투를 입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삼겹살집으로 갔다.

▲ 방콕 공항, 비행기 타기 전 풍경 ⓒ 양학용


▲ 우리 부부를 빼면 왕고참이던 하영과 상훈 ⓒ 양학용


라오스에서 한국음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돌아가면 꼭 하자고 약속했던 삼겹살 파티다. 손님이 다 돌아간 식당에는 우리들이 딱 1~2인분씩 먹을 만큼의 고기만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어디 멀리들 다녀오셨나 봐요?"
"그래 보이세요?"
"오랫동안 나갔다 오신 분들 같아요. 그러면 애기들이 많이 먹을 텐데… 고기가 부족해서 어떡하나…."
"그러게요. 김치라도 좀 넉넉히 주세요."

주인아주머니 말씀처럼 아이들은 몇 년 만에 귀국한 이민자들처럼 삼겹살 한 조각 김치 한 쪽에 감동했다. 그 한 끼 식사에 행복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리고 내일부터 엄마아빠에게 해달라거나 사달라고 할 음식 목록을 끝말잇기 놀이를 하듯 나열했다. 또 식당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도 연달아 감탄사를 보냈다.

한국인 앵커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익숙한 언어에 의한 낯선 소식들이 그 자체로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대한민국의 2011년 1월이란 시간'이 자신들의 삶에 있어 통째로 떨어져나가 영원히 공백의 시간으로 남을 거란 사실이 그저 신기한 것이었다.

"이런 여행을 청소년 시기, 아니 내 일생에 또 해볼 수 있을까?"

▲ 라오스 하면 떠오르는, 썽떼우 ⓒ 양학용


민박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라오스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것'과 '라오스에는 있는데 한국에는 없는 것'을 이야기해서 마지막까지 말할 수 있는 모둠이 이기는 게임을 했다. 또 방콕에서 사온 엽서에다 모두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는 '롤링페이퍼'를 작성했다.

써야 할 카드도 많고 할 말도 많아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도 아이들은 여행 중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그런 후에 스스로의 여행을 정리하는 마지막 글을 썼다. 그런 후에 하나의 촛불을 켜고 한 명씩 자신이 쓴 글을 읽었다. 카메라로 촛불과 아이들을 따라가던 나는 한 달 가까운 여행의 시간 가운데 처음으로 눈시울을 적셨다.

아이들은 방콕공항에 도착했던 그 첫날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무더운 공기와 혼을 빼놓을 것 같은 낯선 언어들,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까지. 아내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행을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

▲ 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밤, 야시장 풍경 ⓒ 양학용


그런데 어느새 그 소중했던 한 달이 지나가고, 마지막 종착역에 서 있었다. 촛불 아래에서 아이들이 읽어 내려가는 소감문들… 내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그동안 내가 읽었던 그 어떤 글들보다 감동적이었다.

다음날 아침 30년 만에 처음이라는 강추위가 만들어놓은 얼음바다를 보았다. 얼음바다의 낯설음이 잠시 우리 여행이 아직 조금 더 지속될 것 같은 착각을 주었지만 우리 모두는 그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공항으로 갔다. 그곳에서 서울로, 대전으로, 울산으로, 제주도로, 각자의 집으로 떠나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었다. 아이들도 서로를 한 명 한 명 안아주었다. 그때 막내 영준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영준이의 눈물 줄기가 이미 만수 수위에 다다랐던 다른 아이들의 울음보까지 넘치게 만들었다. 서희도 울었다. 도솔이도 유진이도 울었다. 수경이도 나운이도 희경이도 윤미도 하영이도 엉엉 울었다. 상훈이도 정호도 성호도 승현이도 훌쩍훌쩍 울었다. 공항 로비를 오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아내와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자리를 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문자를 남겼다.

"고생했다. 집에 가면 맛있는 것 많이들 먹어."

▲ 을왕리 해수욕장의 겨울 풍경 ⓒ 양학용


▲ 눈부신 겨울, 30년 만의 왕추위. 을왕리 해수욕장 ⓒ 양학용


아내와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색깔이든, 이번 여행이 아이들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훗날 삶을 살아가다 팍팍하고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면 작더라도 위안이 되고 힘이 될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들로 인해 많이 웃을 수 있어서, 작지만 자주 행복할 수 있어서. 여행이 끝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실은 우리 부부가 그들에게 받은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이들의 여행 소감문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과 어울리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물론 이번 여름 방학에 제주도 여행에서 좀 친해지긴 했지만 헤어져 있었던 시간이 있었으니까 또 재회를 했을 때는 나는 너무 어색해서 싫었다. 그리고 정말로 학생들끼리 다녀도 되는 건가 하고 걱정도 됐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싫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며 제주도 여행 때처럼 모두 잘해줘서 또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라오스가 위험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다녀보며 알게 되어 나의 걱정거리와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지고 싫었던 여행은 날이 가면 갈수록 재미있는 여행이 되어갔다. 돈을 주면 우리끼리 알아서 숙소도 구하고 밥도 먹으며 여행까지 각자 우리끼리 알아서 한다. 이게 학생인 나에게는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 훌륭한 경치들도 보고 라오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고 평소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경험들도 많았다. 그러면서 이때까지 하지 못한 색다른 생각도 많이 해보고 그 생각과 내 과거의 모습을 반성해 보기도 하고 내 옛날 생각과 그 생각을 바꾸어 보기도 했는데 나에게는 그런 것들이 정말 유익했었던 것 같다. 이런 여행을 청소년 시기에 아니 내 일생에 또 해볼 수 있을까? 이번 여행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송승현/15살)

덧붙이는 글 본 연재 기사는 <제민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은 김향미&양학용 여행작가 부부가 지난 겨울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명의 청소년과 2명의 대학생과 함께 라오스로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저서로는 967일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묶은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예담)와 라오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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