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김치는 옹기에 담아야 제맛입니다
김장 경력 10년차, 고무장갑이 어색하지 않아요
▲ 네집이 겨우내내 먹을 김장배추입니다 ⓒ 김동수
"안 오나?"
"어머니 어제 내린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서요. 해 나면 갈게요."
"아침 먹지 말고 오랬는데. 고마 눈이 와가꼬."
토요일, 어머니는 아침부터 전화입니다. 김장 때문이라고 하지만 손자와 손녀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금요일 갑작스레 내린 눈은 겨울 한철 눈구경을 하기 힘든 진주 사람들에게는 환호와 동시에 두려움입니다.
몇 년 전 딱 이맘때입니다. 새벽에 비가 잠깐 내렸는데 고속도로에 살얼음이 얼어 100대 이상 추돌사고가 나 길이 마비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침부터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머니 때문에 11시쯤에 나서려다가 한 시간을 앞당겼습니다. 지난 수요일 배추 뽑고, 금요일 건져낸 배추가 평상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보다는 배추가 적어요."
"그렇지 배추 속이 덜찬 것들이 많아요."
"어제 먹어보니까 배추가 좀 짰어요."
"그럼 양념을 조금 싱겁게 하면 돼요."
▲ 배추에 들어갈 양념을 만들고 있습니다. ⓒ 김동수
금요일 절임배추를 먹어보니 조금 짠 맛이 났습니다. 김장 10년 노하우가 발휘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남은 멸치젓갈을 많이 넣는데 저는 조금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별종'으로 소문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멸치젓갈을 잘 먹는데 유독한 '김동수'만 안 먹으니 타박 아닌 타박을 많이 받습니다. 어떤 때는 어머니가 제 입맛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화살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멸치 젓갈이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을.
"김장 시작입니다."
"길고양이도 왔네."
"어머니 집 길고양이는 깨끗해요. 진주 우리 집 옆 길고양이들은 더러운데."
"이곳은 깨끗한 동네고, 진주는 매연 때문이겠지. 어제는 강아지만 한 길고양이를 봤어요."
"아마 젓갈 냄새를 맡고 '얻어 먹을 것이 있나' 왔나 봐요."
▲ 김장하는 데 길고양이도. 우리 집에는 길고양이가 많습니다. 새우젓갈 냄새가 났는지 주위를 기웃거렸습니다. ⓒ 김동수
가만히 보니 살이 오통통합니다. 도시 길고양이보다 훨씬 살찐 모습입니다. 생김새도 훨씬 예쁩니다. 옛날에는 시골쥐가 도시에 놀러갔는데 요즘은 도시 길고양이가 시골로 놀러와야겠습니다. 시골 길고양이들이 도시 길고양이들도 훨씬 따뜻한 겨우살이를 할 것입니다.
10년 전부터 김장 담그는 일에 함께 했습니다. 고무장갑을 낀 모습은 제가 봐도 김장을 한 두 번 해본 사람 모습은 아닙니다. 이제 양념간도 맞출 수 있고, 절임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옹기에 김치를 나르는 일은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 해마다 김장을 해야 나중에 김치 한 포기라도 얻을 먹을 수 있습니다. ⓒ 김동수
▲ 아무리 김치냉장고가 좋아도 옹기보다는 못합니다. 옹기에 김치를 옮기는 것은 제 몫입니다. ⓒ 김동수
김치냉장고가 아무리 좋아도 옹기보다는 못합니다. 옹기가 무조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옹기에 담아두었던 김치와 김치냉장고에 담아두었던 김치를 다음해 봄에 먹어보면 확연히 다릅니다. 입맛 까다로운 저만 아니라 무엇이든 잘 먹는 아내와 우리 아이들도 비슷합니다. 옹기에 담아둔 김치를 먹으면 '사각사각' 소리가 다 납니다.
"김치는 그래도 옹기에 담아야지."
"당연하죠. 옹기에 담아둔 김치와 김치냉장고에 담아둔 김치를 나중에 맛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 '하늘과 땅' 차이죠."
▲ 올겨우내내 먹을 김장. 보기만해도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 김동수
▲ 아무리 김치냉장고가 좋아도 옹기보다는 못합니다. ⓒ 김동수
옹기에 공기구멍이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김치가 스스로 호흡을 하기 때문입니다. 김치냉장고는 공기와 직접 호흡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옹기는 호흡을 합니다. 당연히 자연이 주는 맛 그대로입니다. 올해 담근 김치가 약 100포기입니다. 그 중에 속이 덜 찬 배추는 내년 여름에 먹습니다. 속이 꽉 찬 배추도 맛있지만 덜 찬 푸른 빛이 많이 도는 배추도 맛있습니다. 아내는 이런 김치를 잘 먹지 않지만 저는 좋아합니다. 물론 아내보다 좋아하는 것이지 속 찬 배추김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이 김치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생각보다 맛있잖아요."
"나는 속 찬 배추김치가 더 맛있어요."
"물론 나도 속 찬 배추김치를 더 좋아하지만 그래도 푸른김치로 밥을 싸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 배춧잎이 파란 것은 내년 봄 이후에 먹습니다. 이게 더 맛있습니다. ⓒ 김동수
▲ 아내 겨우내내 먹을 것이라며 열심히 김장을 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아내는 자기가 좋아하는 김치가 아니라며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열심히 담갔습니다. 그리고 김장김치 맛을 더 돋구는 것은 배추김치 사이사이에 무를 넣는 것입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배추김치를 시원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무가 다 익으면 무김치도 최고입니다. 김치를 듬뿍듬뿍 넣고, 배추김치를 옹기에 꺼내 먹을 때마다 무김치도 꺼내 먹으면, 먹어보지 않은 사람을 절대(?)로 그 맛을 알 수가 없습니다.
겨우내 먹을 김장김치를 다 담그고 나니 겨울 걱정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제 먹으면 됩니다. 맛있는 겨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겨울도 참 행복할 것입니다. 더 행복하려면 제가 바라는 분이 꼭 대통령에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한턱내기로 했습니다. 한턱내도 아깝지 않습니다.
▲ 배추김치 사이 사이에 무를 넣으면 한결 시원한 김장김치가 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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