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관제권 회수, 국민 안전은 어쩌나요?

현장 기관사의 단상... KTX민영화로 가는 선제적 수순인가

등록|2012.12.12 16:04 수정|2012.12.12 18:20
대선 정국만큼이나 철도 현장도 뒤숭숭하다. 연일 뉴스로 전해지는 정부정책에 대한 직원들의 반감과 위기의식이 현장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KTX 민간개방의 신호탄으로 철도역사와 차량기지 회수계획에 이어 철도의 기능적 핵심 업무인 관제권마저 회수해 간다고 한다. 이대로 가면 경쟁력이나 안전은 고사하고 코레일은 곳간 털리고 열쇠마저 빼앗긴 빈집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더욱이 관제권은 국회동의 없이 시행령개정만으로 가능하니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이 되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소통은 없고 오직 지시와 권한만 있다. 언론의 지적처럼 정말 KTX민영화로 가는 선제적 수순 밟기인지? 이십년을 넘게 철길을 달려 온 기관사의 입장에서 보면 왠지 부당하다는 생각이다. 아니 심한 우려감마저 든다.

KTX 민영화 문제도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를 휴화산이다. 비싼 선로사용료와 부실화된 공항철도 떠넘기기 등, 정부의 왜곡된 철도정책으로 이미 철도적자가 고착화 된 지 오래다. 이러한 뿌리 깊은 적자의 원인은 외면한 채 경쟁력이라는 구실로 사실상 인력과 인건비만을 문제 삼는 것 같다. 정말 경쟁력 때문이라면 정부는 지금이라도 당장 강원도 일대의 모든 적자노선부터 폐선처리를 해야 옳다.

10원의 수익을 위해 1000원을 투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 공공성 때문이다. 그래서 코레일은 KTX 수익으로 근근이 적자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KTX민영화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KTX만 개방시킬 것이 아니라 태백선 같은 적자노선도 기업에 패키지로 끼워주는 것이 맞다. 그러나 기업이 왜 손해 볼 짓을 하겠는가. 그래서 KTX민영화가 "기업 퍼주기"라는 의구심을 불러 오는 것이다.

"관제사는 달리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관제권 회수는 "열차운영권"을 회수해 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국토부가 내세우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는 안전성 강화이다. 과연 그런가? 관제사에게는 철도시스템 전체를 바라보는 포괄적인 안목과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철도에 대한 경험과 심층적인 이해 없이 다른 조직의 관제사들이 열차안전 운행이라는 중대한 업무를 지휘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오케스트라는 각기 다른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며 통일된 음감을 만든다. 지휘자의 경륜과 연주자들의 협연으로 최상의 하모니를 연출한다. 열차 역시 달리는 오케스트라이다. 관제사는 시시각각 변하는 선로의 변수와 이상 징후를 선제적으로 판단하고 기관사와 즉시적으로 협의한다.

수많은 인적 물적 네트워크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상호 협연한다. 최종적으로는 '열차안전운행'이라는 완결된 하모니를 연출한다. 이 지휘자가 바로 관제사이고 사람으로 치면 머리 부분에 해당된다. 한 번 상상해 보라. 무경험자가 지휘봉을 함부로 사용한다거나 머리와 몸이 방향성을 잃고 따로 노는 광경을 말이다.

열차는 움직이는 생물체이다. 국민의 소중한 생명이 지금 이 순간도 시속 300키로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한사람의 판단착오가 큰 사고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관제권 회수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역주행을 예고하는 것은 아닌지? 관제권을 시설공단에 넘겨줌으로써 오히려 방만경영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국토부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철도경영진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해결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철도는 격동의 한 세기를 민족과 함께 달려왔다. 철도 곳곳에는 국민의 애환과 철도인의 땀이 묻어있다. 그래서 철도는 살아있는 역사이자 민족의 자산이기도 하다.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가 숨어 있는 곳이다. 철도가 더 이상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효율성이나 경쟁이라는 구실로 기업이권의 각축장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철도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김만년 기자는 코레일 기관사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