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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공광규·소설가 윤후명, 제1회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21일 고양시 백석역 천년부페 8층 회의실에서 시상

등록|2012.12.13 14:50 수정|2012.12.13 14:50

시인 공광규올해 처음 만들어진 제1회 고양행주문학상 시부문에 당선한 시인 공광규 ⓒ 이종찬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시와 고양행주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며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한 작가를 발굴, 시상함으로써 문화예술의 도시 고양시를 널리 알리고 한국문학 발전의 초석이 되고자 고양 행주문학상을 제정, 운영하기로 했다." - 고양행주문학상 운영위원회

우리나라 제18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와 더불어 2012년 한 해가 저물어가면서 올 한 해 동안 알차게 영근 '문학의 열매'를 거두는 문학상 시상식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시인 이재무가 받은 제27회 소월시문학상(상금 1300만 원)에 이어 상금 7000만 원을 각각 주는 동리목월문학상(동리문학상 소설가 이문열, 목월문학상 오세영), 한국문인협회 7대 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등이 줄을 잇고 있다.

어떤 이들은 '웬 문학상이 그리도 많으냐?', '만날 문학상을 받는 사람만 자꾸 받으니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냐?'라는 등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하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출판불황으로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글이 밥이 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가난한 문인들에게는 상금이 많든 적든 문학상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문학상이 많아야 그나마 상과 함께 상금을 탈 수 있는, 다시 말하자면 글을 써서 쌀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러 기관이나 단체, 문예지 등에서 주는 문학상에 아주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상금을 아예 주지 않고 명예만을 내세우며 문단에 구정물을 일으키는 몇몇 문학상을 빼고 나면 가난한 문인들에게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는 것이 문학상이다.

그 수많은 문학상 가운데 첫 번째로 받는 문학상은 그 상을 받는 문인들에게 글쓰기에 더욱 큰 힘을 보태준다. 12월 들어 특히 눈에 띄는 문학상은 올해 처음으로 만들어진 고양행주문학상이다. 12월 21일 저녁 5시 고양시 백석역(5번 출구) 가까이 있는 천년부페 8층 회의실에서 시상식을 가지는 고양행주문학상은 2012년 주요 언론과 문예지 등에 발표된 작품들이 그 심사대상이다.      

시 부문 상금 500만 원과 소설 부문 상금 1000만 원이 걸려 있는 올해 처음 만들어진 제1회 고양행주문학상은 시인 공광규(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와 소설가 윤후명에게 돌아갔다. 시 부문 당선작은 시인 공광규가 올해 <창비> 가을호에 발표한 '담장을 허물다'이다. 소설 부문 당선작은 소설가 윤후명이 올해 펴낸 새 소설집 <꽃의 말을 듣다>(문학과지성사)이다.

고양시문인협회 사무국은 "고양행주문학상은 등단 10년 이상 된 시인과 소설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며 "시 소설 분야는 각각 10인의 예심위원과 2인의 본심위원을 위촉해 심사한다. 시는 예심위원이 추천한 50편의 작품을, 소설은 20편의 작품을 그 대상으로 한다. 수상작은 <월간문학> 12월호를 통해 발표된다"고 밝혔다.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큰 고을 영주가 되었다"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둥치 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그늘 수십 평과 까치집 세 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마른 귀지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은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방콩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꽃이 하얗게 덮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 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 다니는 하루 수백 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성태산까지 나의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 영주가 되었다

- 시인 공광규, '담장을 허물다' 모두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시인 오세영과 이재무는 심사평에서 "10인의 예심위원이 추천한 작품의 편수는 총 50편이었다. 시편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빛깔과 향기를 발하고 있어 읽는 내내 시안을 즐겁게 하였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들은 "이들 개별 시편들이 보여준 수준만으로 평가한다면 바야흐로 시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다고 감히 말해도 좋을 듯하다"며 "이런 이유로 인해 선자들은 그만큼 심사에 고충이 따랐다는 것을 밝혀둔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심사위원들은 "우리는 문성해, 공광규, 손택수, 유홍준 네 분의 시편들을 놓고 장고에 들어간 끝에 최종적으로 공광규 시인을 제 '제1회 고양행주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하는데 합의하였다"며 "문성해의 작품 '각시투구꽃을 생각함'은 곤궁한 나날을 사는 일상인으로서의 시인이 쓰는 시 한 편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재치 있게 보여주고 있는 가편"이라고 평했다.

이들은 "공광규는 그동안 줄곧 외곽과 변두리로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불교 사상에 바탕을 둔 자연 세계에 대한 심오한 통찰의 세계를 보여 온 중견 시인"이라며 "이번의 수상작인 '담장을 허물다' 역시 후자의 범주에 드는 것으로서 기왕의 시세계를 더욱 넓힌 가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담장'을 허물어 얻게 되는 광활한 영토의 확장이 물리적 차원에 멈추지 않고 영적 세계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이 지닌 견결한 힘이자 미덕"이라고 덧붙였다.

시인 공광규는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청양에서 자랐다. 1986년 월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으로 작품화동을 시작한 그는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가 있다. 시론집으로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을 펴냈다. 1989년 제1회 신라문학대상, 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대상을 받았다. 지금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과 계간 <불교문예> 편집주간, (사)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꽃'이 아니면 안 되는 필연에 대해 귀띔하다

작가 윤후명올해 처음 만들어진 제1회 고양행주문학상 소서부문에 당선한 소설가 윤후명 ⓒ 윤후명

"'꽃'이 아니면 안 되는 필연에 대해 귀띔한다. 잘 알려진 대로 작가는 오랫동안 식물의 생명력과 생산성에 대해 써오면서도 늘 그것과는 다른 무엇을 찾아 헤맸다. 그 '무엇'이란, 작가가 오랜 작품 활동을 통해 궁구해온 '살아 있음의 원류'를 말한다. 세상 어느 잊혀진 귀퉁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그것을, 작가는 '꽃'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꽃은 단순히 아름답거나 예쁜 것이 아니라 존재의 극점(極點)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출판사 서평' 몇 토막

제1회 고양행주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 소설가 윤후명 소설집 <꽃의 말을 듣다>(문학과지성사)는 올 3월에 나온 책이다. 이 책은 '의미의 완성'을 향해 끊임없이 글이라는 힘든 길을 걷고 있는 소설가 윤후명이 5년 만에 선보인 새 소설집이다. 이번 소설집은 이 책 제목이 된 '꽃의 말을 듣다'와 함께 모두 아홉 편이 실려 있다.

시인이자 화가이기도 한 소설가 윤후명은 이 소설 아홉 편 곳곳에 그가 쓴 시와 그림을 곁들이기도 하고, 그림에 얽힌 일화까지 함께 아우른다. 여기에 음악, 조소, 영화 이야기도 말을 툭툭 건넨다. 이 책에는 작가 윤후명이 지닌 예술에 대한 깊은 눈과 예술에 포옥 빠진 사랑이 형식과 장르를 떠나 큰 바다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고양행주문학상 소설 부문 심사를 맡은 소설가 이상문(국제펜한국본부 부이사장)과 소설가 황충상(동리문학원장)은 "첫 고양행주문학상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전통 문예지에 발표된 유명 작가 단편소설 20편이었다"며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모든 작품의 문학적 성취도가 높았다. 특히 중견 이상의 작가들 작품에 있어 그 품격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따라서 여러 차례 큰 상을 수상한 이들을 제외한 수상자의 선을 생각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심사위원들은 "실험문제작을 쓴 신예작가, 인생을 관조하는 원숙한 시선을 지닌 중견작가 중 양자택일의 심사가 진행되었다"며 "신예작가로서 미래문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구축한 작품의 평점이 높아졌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심사의 기준을 뒤집었다. 제1회 고양행주문학상 초석을 위해서 중견 이상 대가급 작가의 작품을 선정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심사 최종 후보작 중 윤후명 작가의 단편소설 <꽃의 말을 듣다>가 수상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이 수상작품의 문학적 성취도는 다음과 같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소설의 작풍이 넓고 깊다. 시공간을 초월한 사물관(중국, 티베트, 중국에 돌아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은 유학생 루이, 세종대왕, 그리고 패모)은 교직 중첩의 이야기로 꽃의 말을 듣는 상상 이미지를 낳았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꽃의 말을 듣다>, 그리고 모든 사물의 말을 듣는 윤후명의 작가정신은 귀가 밝다. 아이를 못 낳는 여인이 꽃을 먹고 아이를 낳는, 여인의 신음 희열의 소리에서 윤후명은 그 꽃의 이름을 듣는다"며 "'패'는 '보패'에서 '모'는 '어미 모'에서 따온 꽃이름 패모! 그 패모가 우리의 마음 상처 자국에서 피어나는 것을 윤후명은 보여주었다"고 덧붙였다.

소설가 윤후명은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19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되고,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名弓>(1977),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1992) 등이 있고, 소설집 <敦煌(둔황)의 사랑>(1983), <부활하는 새>(1986), <원숭이는 없다>(1989), <오늘은 내일의 젊은 날>(1996), <귤>(1996), <여우 사냥>(1997), <가장 멀리 있는 나>(2001) 등을 펴냈다.

장편소설로는 <별까지 우리가>(1990), <약속 없는 세대>(1990), <협궤 열차>(1992) <삼국유사 읽는 호텔>(2005) 등이 있으며, 산문집 <이 몹쓸 그립은 것아>(1990), <꽃>(2003), 장편동화 <너도밤나무 나도밤나무>(1994)가 있다. 녹원문학상, 소설문학작품상, 한국창작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동리 문학상을 받았다. 지금은 '문학비단길' 고문과 국민대 문창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문학in]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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