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있어 행복해요"
다운증후군 김용만씨와 태안읍사무소 직원들의 '감동이야기'
▲ 이야기를 하던 김용만(왼쪽)씨와 박송범 부읍장이 서로를 향해 웃고 있다. ⓒ 이미선
오전 7시. 밤새 짙게 내려앉은 안개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이지만 김용만(44, 태안읍 남문리)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태안읍사무소로 출근한다. 누가 뭐래도 이곳은 용만씨를 가장 따스하게 안아주는 공간이자,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운증후군과 선천성 피부병을 앓고 있는 용만씨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도 이렇다 할 친구없이 홀로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는 용만씨가 어릴 적에 일찍 세상을 등졌고, 유일한 벗이자, 세상에서 용만씨를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마저 3년 전 하늘나라로 떠났다.
집이 읍사무소 근처인 까닭에 오래전부터 용만씨는 읍사무소 인근을 배회했고, 때마침 이곳으로 발령받은 박송범(54) 부읍장의 권유로 읍사무소는 이제 용만씨가 눈을 뜨면 가고 싶은 곳이 됐다.
처음 읍사무소를 찾은 주민들은 형색이 일반인들과 다른 용만씨를 보고 놀라 피하기 일쑤. 그도 그럴 것이 선천성 피부병으로 양 팔과 손에는 진물이 흐르고 150cm 남짓한 작은 키에 볼록 나온 배는 여느 사람들 속에서도 튀어 보이는 까닭이다. 이런 용만씨에게 직원들은 옷도 사주고, 같이 식사를 하고, 손에 약을 발라주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용만씨의 음료수 입맛까지 꿰뚫고 있는 여직원이 있을 정도.
"용만 아저씨가 처음엔 사이다만 찾았는데, 요즘은 오란씨를 자주 마셔요. 많을 땐 하루에 7캔까지 드시는데, 당이 있어서 직원들이 건강상 해롭다며 많이 마시는 것은 말리고 있죠. 그래도 늘 건강하게 우리 곁에 있어주셔서 좋아요."
강선경(35) 주무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경미(43) 주무관도 한마디 거든다.
"용만씨가 있어서 사무실 분위기도 한층 더 부드러워 졌달까요?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단순한 사무업무를 도와주는가 하면, 종종 직원들과 농담도 주고받으며 사무실 분위기를 리드하니까요. 호호호"
한 10여 일 전쯤엔 읍사무소를 찾은 주민에게 영문도 없이 맞아 옷이 찢긴 용만씨가 조금은 격양된 표정으로 읍사무소를 누볐다. 이때 뭔가 좋지 않은 낌새를 눈치 챈 이병삼(45) 주무관이 용만씨에게 셔츠와 점퍼를 사와 입혔고 직원들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용만씨의 신상을 살폈다.
▲ 태안읍사무소직원들과 김용만(가운데)씨 ⓒ 이미선
그뿐 만아니라 읍사무소 전 직원들은 바쁜 업무 중에도 용만씨에게 관심을 늦추지 않는다. 혹여 용만씨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해코지라도 당할까 직원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용만씨를 배려하고 있다.
"처음에 이곳으로 발령받아 왔을 당시만 해도 용만씨가 장애인으로 특별채용된 직원인줄만 알았습니다. 한 일주일 쯤 지났을까요? 부읍장님께 여쭈니, 용만씨가 정식직원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모두 암묵적으로 용만씨를 직원처럼, 가족같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게 시골 읍사무소만의 정 아닐까요?"
신형철(46) 산업계장으로 하여금 거창하게 소개받은 용만 씨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웃음으로 박송범 부읍장과 마주보며 미소를 짓는다. 김경미 주무관도 거든다.
"1년 반 전 제가 이곳에 처음 올 때는 아무래도 제가 여자다 보니, 용만씨와 서먹한 게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 편하고 좋아요. 용만씨 사랑해요~(웃음)"
"용만이는 우리 읍사무소의 웃음바이러스에요. 이장님들도 늘 이곳에 오면 용만이에게 우스꽝스런 인사를 하며 친분을 과시합니다. 그러면서 몇몇 이장님과 직원들이 주는 돈으로 주말에는 교회에 감사헌금을 하죠."
박 부읍장의 설명에 따르면, 용만씨는 매일같이 이곳으로 출퇴근을 한단다. 또 주말엔 인근 구세군태안교회(담임사관 이단주)에 나가는데, 토요일에는 주보를 직접 접는가 하면, 일요일엔 주중에 생긴 수익으로 헌금과 예배를 드린다고. 집안사정이 여의치 않아 매일 밥을 굶는 용만씨에게 읍사무소 직원들은 회식도 불사하고 용만씨를 챙긴다. 혹여 배고픔에 괴로울까 김밥이며, 자장면으로 그의 허기를 달래기도 한다고.
"용만이는 밥을 좋아해요. 식당에 가면 공기밥 2~3그릇은 뚝딱 해치우죠. 허허 건강을 생각해서 매 끼니를 챙겨주고 싶지만 점심 밖에 사줄 수 없는 한계도 있고요."
박 부읍장이 말끝을 흐리자 용만씨가 취재진에게 내민 건 다름 아닌 드링크제. 공손히 탁자 위에 음료수를 내민 용만씨는 읍사무소에 출근해 퇴근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이 의자에 앉아 보낸다거나 강선경 주무관과 자판기 음료수를 뽑아먹거나, 신문을 정리하고, 손님을 맞는 일 등을 한다.
"용만씨, 언제까지 읍사무소에 나오실 거예요?"
"계속…나오…"
이빨이 몇 개 없어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지만 똑똑히 들리는 용만씨의 대답을 들으니, 세상은 이래서 아직 살아 갈만 하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친다. 용만씨가 있어 더욱 생기가 넘친다는 읍사무소 23명의 직원들과 용만씨. 그리고 태안읍 주민들의 일상이 그렇게 저물어 간다. 짧은 해가 더욱 짧게 느껴지는 요즘. 오늘도 용만씨는 건강한 웃음으로 태안읍을 찾는 주민들에게 웃음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뵐 때도 건강한 웃음 잃지 마시고요"
"네…"
쑥스러운 듯 대답도 미처 다 못하고 얼굴을 땅에 파묻는 용만씨.
"이왕 기사 쓰실 거면 우리 용만이가 태안읍의 마스코트라고 써주세요. 하하하"
용만씨의 든든한 백이자, 통역사 박 부읍장이 용만씨를 대신해 마지막 멘트를 날렸다. 이 땅에 천사가 있다면, 지금 용만씨와 같은 웃음을 짓고 있지 않을까. 또 지금 이 공기 속 읍사무소 직원들의 얼굴처럼 밝지 않을까. 확신으로 찬 하늘이 읍사무소 뒤편 노을로 붉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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