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전 필요하다면, '사연 경매'에 올려보세요
[여럿이 함께 하는 착한경제④] '품앗이 대출' 서비스 하는 팝펀딩-굿펀딩
<오마이뉴스>는 서울사회적경제아이디어대회(위키서울)와 함께 공동기획 '여럿이 함께 하는 착한경제'를 시작합니다. 1%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의 대안으로 '사회적경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여럿이 함께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는 생생한 사례를 통해 사회적경제의 모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 팝펀딩, 굿펀딩의 신현욱 대표그는 "이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확대되기 위해서 굿펀딩과 팝펀딩이 사회적기업인증을 받으면 한다"고 밝혔다. ⓒ 이규정
[기사 수정 : 26일 오후 3시 33분]
'급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많은 병원비가 필요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돼 살길이 막막할 때 말이다. 이럴 때 보통 은행을 생각한다. 하지만 은행은 담보를 요구하고 신용을 평가한다. 사업자금을 빌리려 해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에게 은행 문턱은 너무 높다. 그 탓에 고액 이자의 사채나 대부업체로 발길을 옮기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돈이 정말 급할 때, 대부업체의 유혹이 아닌 사람들의 '호의'를 믿어보면 어떨까?
지난 8일 서울 송파구의 한 사무실에서 굿펀딩과 팝펀딩의 신현욱 대표(40)를 만났다. 돈을 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돈이 급한 사람들의 갈증을 해결해주는 이 회사의 정체가 궁금해서다.
신현욱 대표는 "네이버 근무 시절(1999~2005)부터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 NXC 김정주 대표이사 등의 젊은 창업가들을 보며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2005년 네이버를 퇴사하고 본격적인 사업준비를 위해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으로 MBA유학을 떠났다.
MBA 수업에서 그는 영국의 P2P 금융기업인 '조파'(www.zopa.com)를 접하고 사업의 가닥을 잡았다. 그는 "조파에서 개개인이 돈을 빌려주고 갚는 플랫폼이 활발하게 운영되는 것을 보고 P2P 금융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부터 한국에서 '품앗이 대출서비스'를 제공하는 팝펀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팝펀딩의 주요 고객은 저 신용등급자, 신용불량자 등 '금융소외자'다. 신 대표는 2012년 2월부터는 '크라우드 펀딩(대중에서 투자금을 모으는 방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굿펀딩'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북한에 두고 온 딸 구출할 자금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팝펀딩에서 대출신청을 할 수 있다. 팝펀딩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한 뒤 신용확인의 과정을 거치고 '빌리기' 신청을 하면 된다. 한 번에 1000만 원까지 대출 가능하며 대출자가 연이율 0%에서 법정한도인 30%까지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 예비투자자들(돈을 빌려줄 의향이 있는 사람)은 질문을 남길 수 있고, 대출자의 상환기록을 열람할 수도 있다. 질문 답변과 상환기록의 성실성 등이 투자의 판단기준이 되는 셈이다.
절차도 간단하다. 돈을 구하는 이유와 사연 등 '경매'를 게시판에 올린다. 여기에는 신청자의 정보, 소득, 지출, 연이율, 과거 대출 내역 등의 '딱딱한' 정보도 담긴다. 이 정보들 역시 예비투자자들이 볼 수 있다.
▲ 팝펀딩(www.popfunding.co.kr)의 '투자하기' 페이지대출신청자의 정보와 사연이 일목요연하게 공개되어있다. ⓒ 팝펀딩
투자자들은 이들 정보를 파악한 뒤, 투자결심이 섰다면 팝펀딩 가상계좌에 돈을 입금하면 된다. 투자할 때 투자자도 이자율을 써넣는데, 입찰률 100%가 넘으면 이자율 낮은 순으로 낙찰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빌려준 금액은 원금균등분할방식으로 매월 상환이 이뤄진다. 대출자는 상환 날짜에 예정금액이 출금되도록 잔금을 유지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펀드와 유사하지만 팝펀딩이 특별한 건, 돈을 구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사연'이다. 팝펀딩 사이트에는 돈을 구하는 온갖 사연이 다 올라온다. 어머니 병원비, 본인 수술비, 결혼자금, 전세보증금 등 고단한 삶의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사연 몇 개만 읽어봐도 분위기가 감지된다. 낮은 신용등급 때문에 은행거래를 할 수 없어 '꼭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절박감 말이다.
신 대표는 "기억나는 사연이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새터민 조아무개씨의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새터민 조아무개씨가 북에서 넘어 올 때 딸을 북에 두고 왔어요. 딸을 데려 오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사연을 올렸어요. 그런 일을 하는 브로커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어를 너무 자연스럽게 구사해서 투자자들이 의심스러워했어요. 그래서 우리 직원이 그 분을 만났습니다. 만나보니 새터민이었고 사연도 사실이었어요. 조씨가 말투 때문에 은행대출을 거부당하니까, 한국어 공부를 해서 팝펀딩에 사연을 올린 겁니다."
조씨는 결국 250만 원을 투자받아 북한에서 딸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신 대표는 "2만여 명이나 되는 새터민들의 은행거래에 대해 생각해본 계기였다"며 "다른 금융소외자와 마찬가지로 그분들도 은행거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을 돕는 뿌듯함과 수익을 얻는 흐믓함'
이 문구는 팝펀딩 홈페이지의 투자하기소개의 제목이다. 지난 5년여 서비스 기간 동안 1500여 건의 거래가 성사되었는데, '불량율(대손율)'은 7% 남짓이다. 신용이 낮다는 이유,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은행에서 거래할 수 없다고 평가된 사람 100명 중 93명이 꼬박꼬박 돈을 갚고 있는 셈이다. 이타심과 이기심이 공존하는 금융거래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팝펀딩이 대출을 서비스 한다면, 굿펀딩은 투자를 서비스하는 곳이다. 굿펀딩은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 약속한 보상을 주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현재 진행하는 <공약담은 에코백, 5년의 약속>은 18대 대통령선거에 쓰인 후보들의 현수막으로 '에코백'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 터치포굿을 후원하는 프로젝트다. 1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후원할 수 있으며, 후원자에게는 에코백 1개를 보상한다.
▲ 크라우드펀딩 '굿펀딩'(www.goodfunding.net) 홈페이지대선 뒤에 폐기되는 현수막으로 에코백 등을 만드는 사회적기업을 후원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 굿펀딩
신 대표에 따르면 이 사업에는 단지 돈이 오가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굿펀딩의 경우에는 돈이 안 모여서 실패하더라도 (관련 사업을) 봐주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의미가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수백 명이 투자를 했다면 마음 가짐이 다를 것 아닌가. 마찬가지로 투자자도 수익을 얻으려면 사업자가 잘 되게 하려고 홍보를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자발적인 홍보원이 수백, 수천 명 생기는 것이다."
"투자, 빌리기, 기부 알아서 하게 두자"
신 대표가 이야기하는 돈거래는 단순하다. 그는 "돈이 오가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빌려주기, 투자, 그냥 주기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에 주식이 대박이 터질 것 같은 사람은 주식을 놔두고 돈을 빌리는 게 낫다. 사업가가 개발하는 상품이 제품화되기까지 2년 걸릴 것 같으면 투자 받는 게 낫다"며 "우리는 사실 각자 상황에 따라 자금 조달방식을 다르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갚을 능력이 없는데 돈을 빌리려 하고, 빌리라고 제안하는 건 나쁜 짓이다"며 "능력 없으면 그냥 달라고 해야 한다. 이런 것까지 가능한 사이트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대부분 위대한 벤처기업들의 성공은 비지니스 모델에 있지 않았다. 구글을 만든 제임스 등의 창업자들은 자신이 개발한 서비스를 사람들이 좋아하고 필요로하는지에 집중했다"며 "서비스로 수익을 내는 건 그 다음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2008년 첫 거래가 발생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5년간, 팝펀딩은 가입비 이외에 수수료를 받지 않고 있다.
그는 "대출신청자들에 대한 검증을 더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하지만 (어차피 위험률은) 돈을 빌려줘봐야 알 수 있다. 돈을 빌려주면 필연적으로 리스크가 발생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세간의 우려와 반대로 팝펀딩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성실하게 돈을 갚고 있다. 신 대표는 "금융소외자들이 악착같이 돈을 갚는 모습을 보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며 "팝펀딩 대출자들은 여기서 실패하면 더는 갈 데가 없기 때문에 잘 갚는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이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확대되기 위해서 굿펀딩과 팝펀딩이 사회적기업인증을 받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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