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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다는 이유로 맞던 아이, 친부모를 찾습니다

생업 내팽개치고 33년 만에 한국 찾은 김영부씨의 사연

등록|2012.12.18 17:09 수정|2012.12.18 17:09

▲ 해외 입양은 입양인 인생 전반에, 또 입양인과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도 큰 상처를 남기고 부정적 영향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 김지현


미국 입양 엄마이며 작가인 낸시 베리어는 그녀의 저서 <원초적 상처>에서 '친모와의 결별은 입양인의 자아에 원초적인 상처를 남긴다'고 말한다. 그녀는 입양인이 받는 '원초적 상처'가 신체·감정·심리 그리고 정신적인 상처이며 근본적이고 매우 깊은 고통을 일으키는 상처라고 진단한다. 그는 입양인들이 받는 원초적 상처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입양아와 생모 사이의 단절은 입양아의 자아의식과 상실감의 표출, 기본적인 불신, 불안과 우울증, 감정 및 행동의 문제, 그리고 의미 있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악영향을 끼치는 최초의 또는 자기애적 상처의 원인이 된다. (중략) 정신적 외상은 아이에게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아이는 아주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이상 엄마로부터 결코 떨어져서는 안 된다. 친모와의 이별로 인해 생기는 상처는 입양아의 인생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원초적 상처> 본문 중에서)

그렇다. 친모와의 이별은 입양인 인생 전반에, 또 입양인과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도 큰 상처를 남기고 부정적 영향을 남기기 때문에 나는 해외 입양을 극구 반대한다.

해외 입양인 다수가 미국이나 유럽, 즉 서구로 입양돼 보내진다. 그런데 문제는 소수 황인종 어린이가 압도적으로 많은 다수 백인들 사이에서 살 때 큰 고통을 겪는다는 데 있다.

특별히 사춘기 때 백인 학생들은, 극히 드문 경우가 아니면, 황인 학생과 데이트를 피한다. 감수성이 가장 예민한 시기에 그래서 황인 학생은 선척적인 피부 색깔로 인해 아무 죄도 없이 극도의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정체성 위기와 우울증에 시달린다. 그리고 결국 해외 입양인의 열등감·정서 불안은 이들의 대인관계 등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해외 입양, 결코 인륜적인 행위가 아니다

▲ 인터뷰 중인 김영부씨(왼쪽) ⓒ 한혜림


그래서 해외 입양은 결코 인륜적인 행위나 선한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인간 심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와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반인륜적 행위라고 단언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난 18일, '뿌리의 집'에서 스위스 입양인 김영부씨를 만났다.

김영부씨는 1971년 10월 8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후 1975년 8월 2일 오후 4시께 그는 부산 부산진구 범천2동 1298번지 인근을 순찰하던 한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당시 그가 입고 있던 옷 속에는 생년월일과 이름이 적힌 쪽지가 들어 있었다. 쪽지에는 '1971년 10월 8일 출생, 이름 김영부'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 그는 남광복지관을 통해 그 다음해인 1976년 스위스로 입양 보내졌다.

비록 그는 어려서 한국에서 4년이나 살았지만 한국이나 친부모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현상은 해외 입양인 들에게 종종 일어나는데, 고통에 대한 기억이 아주 심할 때 자기도 모르게 기억상실에 걸리는 현상이다. 기억상실은 오히려 기억이 주는 고통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일종의 생존 메커니즘인 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림으로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영부씨는 스위스 중부지방의 보수적이고 부유한 가정으로 입양 보내졌다. 스위스에서 9년을 산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에 의하면 스위스에서는 보통 누구를 만나려면 한두 달 전에 약속해서 일정을 잡아야 하는 사회라고 한다. 한국처럼 퇴근 한 시간 전에 전화해서 지인에게 '오늘 술 한 잔 하자!"라고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 이 말은 스위스 사회가 인간관계의 폭이, 특히 우리나라와 비교해, 넓어지기가 상당히 어려운 사회임을 말해준다. 물론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다.

김도현 목사에 따르면 김영부씨가 자란 지역은 스위스 중부의 보수적이고 부유한 지역. 김영부씨가 살던 동네와 학교에서 동양인은 그 혼자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홀로 시간을 보내는 적이 많았다고. 황인종인 그가 백인 마을에서 어려서부터 혼자 자랐기 때문에 인종차별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컸다고 유추할 수 있다.

양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린 김영부씨

▲ 김영부씨 입양서류 ⓒ 김영부 제공


김영부씨 양아버지는 스위스 회사의 성공한 기업인으로 집은 부유했다. 그는 양어머니와 백인 여동생과 함께 자랐다. 그러나 그의 양아버지는 아주 권위적이었고 몸도 건장했다고 한다. 그의 양아버지는 때때로 김영부씨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물론 스위스에서는 아동 폭력이 불법 행위다. 하지만 양아버지는 김영부씨가 너무 조용하다며 폭력을 가했다고 한다.

나이 어린 아기 혹은 소년이 너무 조용하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맞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원래 영아나 유소년은 잠자지 않는 시간 내내 조금도 조용한 법이 없는 것이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김영부씨가 친모에게서 버려지고 입양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상처를 입고 우울증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영아 혹은 유소년 우울증. 국제간의 입양이 아동에게는 행복이기 전에 일종의 폭력에 다름 아닌 것을 여기에서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 양어머니의 몸은 아주 허약했다고 한다. 그의 양어머니는 젊은 나이에 심장병·신장병·합병증에 걸린 후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불구자가 됐다. 양어머니가 불구자가 된 뒤 양아버지는 더욱 거칠어지고 폭력적이 됐다. 그래서 김영부씨는 건장한 체구의 힘이 강한 양아버지를 항상 두려워했다. 그래서 양부가 집에 있는 주말이나 휴일이 제일 싫었단다. 그런 날, 그는 방안에 콕 박혀서 쥐 죽은 듯 지냈다고.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는 양부의 폭력에 대항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16살 때인 1987년부터 쿵푸를 배우기 시작했다. 쿵푸를 배우고 얼마 지난 후부터 양아버지의 폭력이 마침내 중단됐다. 2002년까지 쿵푸를 배운 그는 현재 쿵푸 4단이다.

20살, 가출하다

▲ 김영부씨 ⓒ 김영부 제공

김영부씨가 20살이 되던 해인 1991년. 그는 양부모가 미워서 가출했다. 6개월 동안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고 야외에서 캠핑을 하거나 친구 집을 전전하며 지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며 그럭저럭 돈을 모아 혼자 지낼만한 공간을 마련했다.

김영부씨 백인 여동생은 5년 전 자기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스위스인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행복하고 부유하게 잘살고 있다.

스위스에서 마케팅 기획자로 일하던 김영부씨는 2009년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무작정 친부모를 찾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후 부산에 도착해 자신이 발견됐다는 장소(현재 교통부 사거리 인근)와 보육원을 33년 만에 다시 찾았다. 그는 당시 아주 묘한 감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9년부터 지금까지 김영부씨는 자기가 태어난 부산에서 3년간 살고 있다. 그는 3년 전부터 부산에 살면서 친부모님을 애타게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 소식은 없다. 김영부씨는 친부모님이 어디엔가 살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더 늙기 전에 부모님을 찾지 않으면 훗날 후회할 것이 분명하기에 지금 열심히 친부모님을 찾고 있다. 그가 서울이 아닌 부산에 살고 있는 이유도 부산의 한 길거리에서 혹시나 친부모님과 마주할 날이 있을까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친부모님이 잘 있는지, 건강한지 너무 궁금하다.

"한국은 이제 가난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아이들이 친부모님과 함께 자랄 수 있도록 입양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한국은 미혼모에 대한 복지 정책이 너무 열악합니다. 미혼모가 직장과 자녀 양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다른 모든 선진국들처럼 한국의 복지 정책은 더욱 강화돼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미혼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하루 속히 버려야 합니다."(김영부씨)

김영부씨는 "1976년으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그래서 자기의 삶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다면 결코 해외 입양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부모님이 저를 키울 수 없었을 정도로 가난하셨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차라리 굶어 죽는 것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부유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라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듣자 내 딸이 일전에 내게 해준 말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아빠와 지옥에서 함께 사는 것이 아빠 없이 천국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해요."
덧붙이는 글 김영부씨를 알아보시는 분은 '뿌리의 집'(02-3210-2451)으로 연락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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