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안철수 지원에도 돌아선 수도권, 패배의 '결정타'

'투표율 프레임' 함몰에 전략 실패 겹쳐... 문 후보 측 "머리 속이 하얗다"

등록|2012.12.20 01:23 수정|2012.12.28 12:55

▲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20일 밤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당사를 떠나며 당직자들과 포옹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18대 대통령 선거전은 보수 대 진보 1대1 구도로 치러졌다. 늦었지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는 이루어졌고 두 사람은 러닝메이트가 돼 전국을 누볐다. 단일화 과정에서 상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안 전 후보의 전폭 지원이 이뤄지면서 부동층으로 빠졌던 이들이 문 후보 쪽으로 돌아서는 '안철수 효과'도 일부 나타났다.

3차례 열린 TV토론에서도 문 후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보다 더 많은 득점을 했다. 특히 양자 맞장 토론으로 진행된 3차 토론이 그랬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정권교체 지지 여론은 시종일관 60%대를 유지했다. 이 정도면 문 후보의 패배 보다는 승리를 점치는 게 맞힐 확률이 높다.

19일 투표일을 앞두고 문 후보 측에서도 투표율이 70%를 넘으면 승리한다고 점쳤다. 실제 투표율은 문 후보 측 기대를 뛰어넘어 75.8%(잠정 집계)에 달했다. 하지만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5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승리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후 첫 과반 득표 당선 사례다.

문 후보 캠프에서 전략기획을 맡았던 이목희 기획본부장은 "투표율이 75.8%였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머리 속이 하얗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일어나"... 보수 결집이 더 강했다

실제 대선 결과에 근접했던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세대별 예상 득표율을 봐도 문 후보는 그동안의 여론조사보다 선전했다. 문 후보는 캐스팅 보트였던 40대에서 55.6%를 기록, 박 후보(44.1%)를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30대에서도 66.5%로 33.1%를 얻은 박 후보를 두 배 정도 앞섰고 20대 이하에서도 65.8%를 얻어 33.7%에 그친 박 후보를 32.1%포인트 앞섰다.

반면 여론조사에서 가장 취약한 세대로 꼽혔던 50대에서는 선방했다. 문 후보는 50대에서 37.4%를 기록해 박 후보(62.5%)에 크게 뒤졌지만 여론조사에서 30% 초반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면 예상보다 좋은 결과였다. 이는 2002년 대선 당시 승리한 노무현 후보가 이 세대에서 얻었던 39.8%에 거의 근접한 수치였다. 물론 60대 이상에서는 27.5%에 그쳐 박 후보(72.3%)에 크게 뒤졌지만 이는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대로였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20일 밤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을 축하하는 기자회견을 한 뒤 당사를 나서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문 후보의 우위가 점쳐졌던 여론조사의 세대별 지지율 보다 더 나은 출구조사 결과로도 문 후보가 이기지 못했다면 이유는 한 가지다. 양쪽 지지층의 결집도 차이다.

물론 투표율이 75.8%까지 오른 것은 문 후보 지지 성향이 강했던 20~30대의 투표율 상승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투표율이 높은 50대 유권자 비중도 10년 전 30%에서 40%로 늘었다. 50대 이상의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도 더 늘어났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마디로 보수의 결집력이 더 컸다는 이야기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번 선거처럼 (보수층이) 뭉친 적이 없었다"며 "특히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남쪽 정부'라고 하고 나서 (보수층에서는) 이번에 투표 안 하면 완전 나쁜 놈이 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투표율이 75.8%였는데 문 후보가 패했다는 것은 결국 전체 세대별 지지율을 비롯 전체 지지율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이야기"라며 "이제는 야권이 투표율 때문에 졌다는 이야기는 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 부소장은 "문 후보 측이 투표율 프레임에 발목이 잡혀, 지지율 보다는 투표율 올리기에 선거 운동의 초점을 맞춘 게 실책"이라고 말했다.

네거티브 함몰된 선거... 돌아선 수도권 부동층

지역적으로 따져보면 문 후보는 최대 승부처였던 수도권에서 사실상 졌다. 문 후보는 부산·경남에서 역대 어느 야권 후보 보다 높은 40%에 육박하는 득표를 했지만 수도권에서 부진으로 빛이 바랬다. 문 후보는 서울에서만 박 후보를 4%포인트 근소한 차로 이겼을 뿐 인천·경기에서 박 후보에 뒤져 열세를 보였다.

지난 4·11 총선에서 수도권 지역 정당 득표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로 분류되는 보수 성향(새누리당+자유선진당) 표는 467만여 표(44.4%)로 야권 지지표보다 42만표(4.4%) 적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 후보로서는 뼈아픈 결과다. 특히 안 전 후보의 지원을 등에 업고도 수도권의 표심은 오히려 총선 때보다 후퇴했다.

문 후보 캠프 핵심관계자는 "경기도는 우리가 이제까지 7~10% 이상 이긴 지역이고 투표율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며 "(박 후보 지지성향이 높은) 농촌 지역 (인구)가 20% 밖에 안 되는 경기도에서 진다면 (전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 원인에 대해서는 뾰족한 분석을 내놓지 못했다.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와 북방한계선(NLL) 논란 등 안보 이슈가 경기·인천 지경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오마이TV <대선올레>에 출연해 "안보 이슈는 먹히지 않았다고 본다"며 "만약 그랬다면 (천안함 침몰 사건이 벌어진) 2010년 지방선거 결과가 설명이 안 된다"고 밝혔다.

▲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 남소연


결국 수도권의 패배를 불러온 것은 문 후보 측 캠페인의 실패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먼저 선거 운동 과정에서 안 전 후보와 단일화 이슈에 매몰되면서 박근혜 후보와 1:1 구도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선거 전 초반에는 안철수에 끌려다닌다는 느낌을 줬고, 선거 전 후반에는 이정희 후보의 강공에 위치 선정이 애매하게 됐다. 문 후보가 제대로 된 인물 경쟁력을 보여 준 것은 이 후보 사퇴 후 양자 대결로 열린 3차 TV토론이었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초반 단일화 과정에서 시간을 지체하면서 문 후보를 부각할 시간이 부족했다"며 "문 후보의 상승세를 감안하면 사흘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오락가락 했던 메시지 전략... 총선 패배 반복한 민주당

메시지 전략도 역효과를 냈다. 선거 초반 박정희 유신독재를 공격하다 박정희 대 노무현의 구도가 형성되자 부랴부랴 정권심판론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후 박근혜 후보 일가 재산 의혹 등 네거티브가 선거 운동의 전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이는 부동층이 가장 많은 수도권을 공략하는데 최악의 전략이었다는 평가다.

특히 안 전 후보 사퇴 후 수도권에서 가장 많이 부동층이 늘었는데 민주당은 이들을 흡수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안철수의 퇴장'과 함께 부동층에 가장 민감한 이슈인 정치쇄신은 실종됐다. 대신 그 자리를 격한 네거티브 공방이 채웠다. 이는 오히려 안 전 후보로부터 "대선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을 불렀다. 결국 문 후보가 네거티브 금지령을 내린 후에 정책 대결로 전환을 시도했지만 선거 마지막까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아이패드 커닝 논란 등 네거티브는 계속됐다.

정한울 부소장은 "수도권의 투표율이 전국 평균보다 다소 낮은 것은 문 후보로 돌아섰던  수도권의 스윙보터(부동층)이 투표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문 후보가 인물 우위를 바탕으로 통합의 메시지를 던졌어야 했는데 네거티브 이슈에 함몰된 게 패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비전 제시 없는 정권심판론과 네거티브라는 총선의 패배 요인이 그대로 대선까지 반복된데다 선거 전략의 실패까지 겹쳐 최악의 패배를 당한 셈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물론 향후 야권 전체가 감당해야할 후폭풍이 만만치 않게 됐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