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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민주진보진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주장] 유권자 지형도, 유권자 프로파일 바닥부터 다시 작성해야

등록|2012.12.22 17:05 수정|2012.12.22 17:05
선거결과가 아쉬웠던 만큼 여러가지 평가 쏟아지고 있다. 사방에서 책임론과 서로에 대한 공격이 난무한다. 책임질 사람들은 필요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서로에 대한 공격에는 "이길 수 있는 선거를 졌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정권교체 여론이 높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선거였다고 말할 수 있었나?

불과 한 해 전에 그런 희망을 가졌던가? 6개월 전에 그런 희망이 있었나? 한 달 전에 그런 희망이 있었나? 선거 전날인가 민주당의 이목희 기획본부장이 어느 방송에서 인지 희망이 생긴 것은 선거 2주 전의 1차 광화문 유세(소위 광화문 대첩) 때부터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정치 지형상 사실은 이기기 매우 어려운 선거를 시민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라고 생각해야 옳지 않을까?

대통령선거 구체적 결과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50대의 투표율 90%를 대부분 놀랍게 받아들이면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 또 전문가들을 통해서 50대의 보수화 경향에 대해서 모두들 이야기하고 있다. 분명히 이런 경향성이 있지만, 이번 선거의 결과로 이를 기정사실화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기정사실화하게 되면, 한 번의 투표결과가 인식을 통한 재규정화 과정을 거치게 되어서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유권자에 대한 성급한 결론은 금물

민주당과 야권의 수많은 전략가들께 다소 죄송한 이야기지만, 과연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팀이 제대로 된 유권자 지도(지형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단지 연령별, 지역별 성향과 이슈 만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가?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와 단일화를 통한 승리에 기대어 이를 소홀히한 것은 아닌가?

선거운동 마지막날 뜬금없이 등장한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를 보는 순간 의아한 느낌이 들었고, 선거에서 밀리다보니 과거지향적이고 자기 진영의 표를 결집하려는 전략이라고 생각되었지만, 결국 이 구호는 50대 유권자들의 마음을 가장 적절하게 공략한 구호임이 결과적으로 판면되었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과학에 의거한 선거운동을 한 반면,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감성과 세몰이에 의해 선거운동을 진행한 것이 여러 패인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제 선거결과가 눈앞에 드러나고 나니 여야와 진영을 막론한 모든 언론에서 50대의 보수화 경향에 대한 나름의 기사를 쏟아내고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전문가들이 나와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아직까지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더욱 성급한 결론을 바탕으로 50대는 보수적이다라고 단정하고 접근하게 되면, 정말 50대 유권자는 더욱 보수화하게 되고, 스스로 자신을 보수적이라고 재규정하면서 더욱 강하게 보수진영에 결합하게 될 것이다. 20대, 30대, 40대가 50대를 사적인 자리에서 일상생활의 환경에서 50대를 공격하게 되면 이들의 마음은 더욱 돌아설 것이다.

지금 쏟아지는 언론보도가 이런 결과를 더욱 초래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의 성향은 한 번의 투표로 굳어지는 것이 아니니 만큼, 자신들의 투표결과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지만 또 놀라고 있으며 아직 최종적인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이 유권자층에 대해 더욱 조심스런 접근이 요구된다.

특히 이 유권자층에 대해서 보수적이라고 단정하게 되면, 앞으로 민주당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이란 반복적인 우클릭, 중도화 전략외에는 없고, 이 경우 진보진영 전체를 감싸안았던 이 선거의 가장 큰 성과를 다시 허공에 흩뿌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성과가 소위 90년대 학번들 지금 30대 초중반에서 40대 초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들의 새로운 각성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IMF체제로 부터 시작해서 가장 어려운 20대와 30대를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통해서 시작한 이들은 자신들에 비해 모든 것을 누린 소위 386세대에 대해 뿌리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번 선거과정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재사회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성과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유권자 지형도, 유권자 프로파일을 작성해야

민주진보진영의 전략가들에게 지금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유권자 지형도, 유권자 프로파일을 바닥에서 부터 다시 작성하는 일이다(광고업계에서는 해마다 소비자들의 성향을 심층적으로 분석 조사해서 소비자 프로파일 보고서가 나온다). 이 유권자 지형도에서는 지금까지의 세대구분과 지역적 이념적 정향이 모두 유효한지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포커스 그룹 인터뷰와 여러 조사를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고 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때, 유권자 층을 2017년 대선에서 형성될 유권자 층을 기준으로 해서, 이를 세분화하고, 지금까지 나온 또 앞으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반응하는 정도를 검토해서 이를 상세하게 작성해야 한다. 한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나온 자료를 가지고 재검토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50대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2017년에 50대로 형성될 현재의 45세에서 55세 그룹을 대상으로 해서 유권자 연구를 상세하게 할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이 세대의 모든 유권자들이 단일한 하나의 덩어리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4천만 유권자가 단일한 하나의 덩어리일 수 없으며, 그것은 세대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유권자 연합을 지향해야

유권자 프로파일이 작성되면, 이에 따라 유권자 연합을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약이다. 공약은 유권자 연합을 지향하는 것이다. 계층과 지역과 다양한 성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3개 내외 핵심공약을 만들고 이를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을 통해서 확인한 후 2017년 선거에 임해야 한다.

한 두 가지의 의제를 통해 세몰이하는 선거는 이번으로 끝을 내야 한다. 유권자의 수는 과거에 비해 말할 수 없이 늘었으며, 그들의 생각과 필요는 하나로 묶어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화되고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다원적인 선거전략이 필요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전략적으로 실패했다고 말한다면 이 지점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여기까지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듯 하다.

오바마 캠프의 재선 승리를 근거로 인구구성의 변화를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구구성의 변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진입이 핵심변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고령화되면 보수화된다는 전제 앞에서 스스로 무너져서 소위 말하는 중도화 경쟁에 정치 지도자들이 나서게 되면, 구심점을 잃고 무너져 버릴 것이 자명하다.

TK와 호남에 대한 이해

민주당 뿐 아니라 민주진보진영 전체가 호남 유권자들에게 깊이 감사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도 호남 유권자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고 빚을 졌다. 지금 호남 유권자들은 다소 불안해 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자들은 이를 위로하고, 지켜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구경북과 호남을 지역주의라고 비판해서는 이를 이해할 방법도 없고, 접근할 방법도 없다. 대구경북과 호남은 이제 각각 새누리당(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정당 일체화(party identification)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두 지역은 대략 1970년 정도부터 시작해서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러 요인에 의해 일관된 투표성향을 보였다.

따라서 이제 대구에서 개혁적 성향을 가진 정치 지망생이라고 할지라도 새누리당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정치적 활동도 성공하기 어렵다. 호남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소 보수적이라고 해도 민주당에서 활동하지 않고서는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비난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지역이 등장하는 것을 꼭 민주주의에 대한 퇴행이라고 보고 비난해서는 곤란하다. 미국에서 공화당에만 투표하는 주(red state)와 민주당에만 투표하는 주(blue state)가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으로 민주당이 장악한 볼티모어 시 같은 경우에는 민주당 예비선거의 승자가 시장이 된다. 실제 선거는 일종의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영국에도 보수당에만 투표하는 지역과 노동당에만 투표하는 지역이 있다. 오랜 기간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가 선거 불과 일주일 전에 노동당 우세지역으로 옮겨서 출마한 전례가 있다.

정당 일체화가 된 지역에세는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일관된 투표성향이 진행될 것이다. 그에 비하면 다른 지역은 투표성향이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부산경남에서 다수 득표를 이루어내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40%에 가까운 득표를 이루게 된 것은 영남 전체의 선거 연합이 깨어지고 있다는 일종의 증거이다. 부산경남이 대구경북과 선거연합을 이루게 된 것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인 1990년 3당합당부터이고, 여기에 함께할 수 없었던 이 지역의 민주화 운동세력(노무현과 문재인을 포함하는)의 오랜 기간의 노력을 통해서 이제 그 선거연합이 느슨해지고 있다.

미래를 준비할 때

이제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모든 이슈와 정책 그리고 공약을 재검토하면 미래를 준비할 때다. 상처가 깊고 크면 클수록 상처를 치료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러나 그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고 나면, 그때 다시 앞으로 움직여 나갈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유독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 겨울 동안 다시 움직여 나갈 힘을 각자의 자리에서 얻게 되길 바란다. 분노와 상처 때문에 성급하게 무엇이든 예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밀어붙이지 말아야 한다. 이곳 저곳에서 적을 만들지 말고, 조용히 숨죽이면서 그러나 차분하게 미래를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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