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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모순에 빠진 '드라마의 제왕', 돌파구가 필요해

[드라마리뷰] SBS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이 풀어야 할 숙제들

등록|2012.12.25 11:38 수정|2012.12.25 11:38

▲ SBS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 포스터 ⓒ sbs


드라마가 드라마를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곧 자기비판인 동시에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가령, PPL을 비판하는 드라마가 PPL 없이 제작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뻔한 멜로나 통속적인 설정을 거부한다며 당당히 외친 드라마 역시 자세히 뜯어보면 기존 드라마의 한계를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것은 어쩌면 현재 <드라마의 제왕>이 처한 현실이기도 하다. 극 초반 쪽대본과 생방송처럼 진행되는 촬영현장, PPL, 편성권을 둘러싼 로비 등 동정업계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블랙코미디로 담아낸 <드라마의 제왕>은 이제 자신들이 비판했던 그 부분에 있어 똑같은 잣대로 평가받는 위치에 놓였다.

문제는 안타깝게도 그 평가 점수가 그리 후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물론 <드라마의 제왕> 역시 그들이 비판했던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드라마이니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지나친 PPL이라든지, 혹은 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가 멜로에 집중되는 경향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지엽적인 부분들은 사실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제 3회만을 남겨둔 <드라마의 제왕>이 '자기모순'에 빠져 허우적대는 느낌을 보인다는 것이다.

▲ <드라마의 제왕>의 앤서니 김(김명민 분)과 이고은 작가(정려원 분) ⓒ SBS


진부한 우연의 남발, <드라마의 제왕> 마저?

우선, 24일 방영된 15회를 살펴보자.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이 드라마의 메인 멜로라 할 수 있는 앤서니 김(김명민 분)과 이고은(정려원 분)의 사랑이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 사이 멜로를 본격적으로 알린 '밥차' 에피소드만 놓고 보더라고, 산속에서 길을 잃은 채 차 시동이 꺼지고 결국 둘이 서로의 체온에 의존해 밤을 버텼다는 설정은 진부하다 못해 억지로 짜 맞춘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앤서니 김이 성민아(오지은 분)의 소개로 대기업 투자를 받게 된 이날 상황은 또 어떤가. 하필 앤서니가 약속장소로 향하던 그 시간에 이고은 작가가 감기몸살로 쓰러졌고, 또 하필이면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와중에 이유 없이 도로가 막힌다. 결국 투자는 물거품이 됐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사랑을 위해 성공을 포기하냐"며 일갈하던 앤서니 김이 이고은 작가를 위해 투자를 포기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지만, 지나치게 우연에 기댄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일까. 이날 방송에서는 이고은 작가를 위해 투자를 포기한 앤서니 김이나 앤서니를 짝사랑하며 남몰래 속 앓이를 하는 이고은 작가보다는, 촬영 현장에서 서로 티격태격하던 성민아와 강현민(최시원 분)이 훨씬 더 눈에 들어왔다. 보아하니 앞으로 강현민이 성민아를 좋아하게 되면서 둘 사이에도 새로운 멜로가 만들어질 것 같은데, 우연의 남발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멜로가 훨씬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멜로를 부각시키면 애초 기획의도와는 달리 드라마가 산으로 간다'고 지적했던 <드라마의 제왕>이 결국은 후반부 앤서니 김과 이고은 작가의 멜로에 집중하면서 힘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이게 바로 '자기모순'에 빠진 이 드라마가 풀어야할 첫 번째 숙제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송 말미 언급된 앤서니 김의 이상 징후는 이 드라마가 가진 자기모순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날 앤서니 김은 운전 도중 갑자기 시야가 흐려져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의사는 앤서니 김이 복용하는 우울증 치료제의 부작용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예고편을 보니 유전일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왜냐하면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 앞에서 앤서니의 시야가 또 한 번 흐려졌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기억상실증과 불치병은 모든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드라마의 제왕> 역시 기억상실증을 하나나의 에피소드로 그리며, 희화화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앤서니에게 앞이 보이지 않는 병을 안겨주다니. 기억상실증과 불치병은 다르니까 상관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드라마의 제왕>은 정년, 그들이 비판했던 뻔하고 뻔한 설정을 답습하려는 것일까? 이게 바로 '자기모순'에 빠진 이 드라마가 풀어야 할 두 번째 과제다.

자신의 감정 표현하는 앤서니, 볼 수 있을까

물론, 돌파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앤서니 김에게는 어머니와 같은 증상이 나타났을 뿐, 아직 그가 실명을 하게 될 거란 확증은 없다. 때문에 앤서니 김의 이 증상을 소재로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가령, 우울증 치료제를 끊어야만 회복될 수 있다고 진단을 받는다면, 앞으로 앤서니는 우울증 치료제를 끊기 위해 보다 솔직하게 자기감정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한 번도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발생한 우울증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우을증을 치료하고, 또 약도 끊을 수 있다. 만약 앤서니가 자신의 속마음에 충실해진다면 이고은 작가와의 멜로 역시 지금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전개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앤서니의 성격상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실명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개연성 있는 스토리로 발전시킬 수 있다. 어색한 듯, 그리고 내키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앤서니 김의 모습은 상상만으로 즐겁다.

비록 시청률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부디 <드라마의 제왕>이 '자기모순'을 극복하여 '잘 만들어진 드라마'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이카루스의 리뷰토피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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