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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텃밭과 소박한 정원을 가꾸는 삶

귀촌에 대한 오해와 진실

등록|2012.12.27 12:08 수정|2012.12.27 12:08
숙지원을 가꾼 지 6년, 집을 지어 농촌 살림을 시작한 지도 4개월이 넘었다. 농촌에서 첫 겨울을 맞이한 지금 아내와 나는 현재의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물론 새로 지은 집에서 새 출발이라는 점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 텃밭 농사를 하면서 낯을 익힌 주변 환경과 마을이기에 안심하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 출퇴근하던 농부의 처지에서 이제 완전히 정착했다는 사실도 우리를 편안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아내와 나뿐 아니라 나이 든 어머니도 요즘 일요일에는 마을 교회에서, 평일에는 마을 회관에서 노인들과 어울려 스스럼없이 형님, 동생 하며 지내고 있으니 다행히 아닐 수 없다. 귀촌을 학문적으로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모른다. 귀촌은 내 귀향의 꿈을 담고, 아내와 나의 건강 회복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때문에 이론적으로 설명할 능력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 싸잡아 귀농 귀촌인들이 늘었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면서 과연 귀농과 귀촌은 같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또 우리 같은 경우는 귀농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귀촌이라고 하는지 다소애매할 때가 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우리는 생계형 농업을 위해 전업한 귀농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저 텃밭 농사와 전원생활을 겸한 귀촌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다.

봄의 숙지원집을 짓기 시작할 무렵에 잡은 장면이다. ⓒ 홍광석


요즘 숙지원은 농한기다. 전업농은 아니지만 약 1000평의 땅 중에서 약 3백 평 정도 텃밭을 일구어 각종 채소는 물론 마늘 고추 참깨 양파와 같은 양념거리, 감자 고구마 야콘 등 간식거리를 거의 자급할 정도로 생산하고 있으니 적은 농사는 아니라고 본다.

텃밭 외에 대지 약 200평을 제외하고 약 500평의 땅은 잔디밭과 꽃밭으로 가꾸고 주변에 자두 뽕 매실 등 유실수를 심었으니 웬만한 농사에 못지않은 일거리다. 그러니 전혀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다는 말은 거짓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농한기는 반가운 계절이라고 하겠다.

요즘 귀농 혹은 귀촌에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지난가을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묶어 <아내의 뜨락>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후 몇 차례 언론의 주목을 받은 덕에 실제 숙지원에도 그런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귀농 혹은 귀촌을 원하면서도 농촌 생활에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더러는 농촌에 대해 심하게 오해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모기나 뱀에 대한 걱정도 그런 것이지만, 농촌은 일이 고되고 농촌 사람들은 소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레 단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시장 목욕탕 미장원 등 편의 시설이 없다는 점을 들어 보기는 좋지만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문제 아이들 교육문제 등 때문에도 망설인다는 이야기도 했다.

여름의 숙지원 여름 어느날 하루 수확한 채소들을 잡은 그림 ⓒ 홍광석


그렇다. 여름에 김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달려드는 모기를 쫓는 일도 귀찮은 일이다.
스르륵 기어가는 뱀을 보는 일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고구마와 야콘을 심을 밭을 만드는 일 고추 모종을 옮기고 지주대를 세워 묶는 일, 감자를 캐는 일, 깨를 베어 터는 일들도 땀 없이 되는 일이 아니다.

100여 종의 꽃을 보기 위해 계절에 따라 꽃밭을 일구고 모종을 옮기는 일도 장난이 아니다.
농촌을 모르는 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며 금년 2월 말, 퇴직하기까지 만 5년 동안 직장에 근무하면서 그런 것을 보고 겪으며 텃밭 농사를 병행했다고 말하면 쉽게 믿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오히려 아내와 나의 건강은 좋아졌고, 마음은 편해졌으며 그래서 마침내 집을 짓고 아주 이사하기에 이른 것이라는 설명에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기들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나 역시 현재와 같은 우리나라 농업정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농사로 생활을 유지하겠다는 귀농을 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귀농하는 희망하는 분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농촌의 실정과 농업정책을 말하면서 많은 준비가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신중하게 결정하여 달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채소 정도를 자급하는 귀촌이라면 적극 검토해 보기를 권장한다. 

특히 은퇴자와 은퇴예정자들에게 권하는데, 요즘은 텃밭 농사를 희망하는 젊은이들에게도 귀촌이란 조금 다른 환경의 마을로 이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권하고 있다.

요즘은 도로 사정도 좋기 때문에 도시 직장이 그렇게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녀들의 교육 문제도 시골이 뒤처지지 않는다. 시골 고등학교는 농어촌 전형이라는 제도가 있어 대학 진학에도 유리한 경우가 많다. 도시 고등학교에서라면 지방의 2류 대학 가기도 어려웠던 성적의 아이가 농어촌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은 물론 서울 소재의 괜찮은 대학에 입학하는 사례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면단위 마을에도 기본적인 응급조치는 물론 도시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개인 병원도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시장이 멀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것도 5일장을 이용한다거나 농협마트를 이용하여 며칠 간의 찬거리를 사 둔다면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부가 뜻만 모은다면 농촌생활이 어렵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을의 숙지원 완공된 집의 모습. ⓒ 홍광석


귀촌했으나 정착에 실패하고 도시로 떠난 사람들 중에는 마을 주민들의 텃세 때문이라고 시골 사람들을 원망하는 글을 남긴 경우도 보았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젊은 사람들이 텃밭 농사와 꽃밭 가꾸는 일을 어렵게 여긴다면 그런 사람들이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농촌 마을 사람들과 불화로 농촌을 떠난 사람이 직장생활인들 제대로 적응하고 살 수 있을 것인가. 어디나 새로운 사람에 대한 텃세는 있기 마련이다.

우리 마을도 남평역을 끼고 있는 마을이라 인심이 순하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 역시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래도 그 수는 훨씬 더 많은 세상이다. 노인들만 남은 농촌 마을에서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좀 더 가까워진 이후에 마을 사람들은 일도 잘 못할 것 같은 사람, 더구나 여자는 병색이 완연하여 도저히 농사를 지을 사람으로 보였기에 투기꾼으로 봤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람이 앉았다가 간 자리에 남긴 흔적이 많을수록 약점도 많이 보이는 법이다. 약점이 많은 사람이 당당해질 수 없고 타인의 신뢰를 얻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지난 6년. 그런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과 부딪침 없이 살았다. 그리고 이제 마을 가운데 집을 짓고 마을 구성원으로 정착하여 무리 없이 산다. 집들이하면서 마을 분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더니 노인들은 우리에게 입주 축하금이라며 20만 원을 건넸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우리를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준 노인들의 마음을 보는 것 같아 고마웠다.

그간의 과정 일부의 이야기로 <아내의 뜨락>이라는 한 권의 책을 엮었는데 그것도 지나간 6년의 성과로 본다.

겨울의 숙지원 귀촌은 우리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숙지원의 설경을 보며 다시 살아온 날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악한 마음으로 추억을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홍광석


귀촌! 조금은 불편하고 힘든 삶이다. 하지만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가 있는 삶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과 함께 소박한 기쁨을 키우는 삶이다. 늘 새로운 창조를 배우며 땀 흘리는 노동의 즐거움을 실천하는 삶이다. 사계절 변하는 자연의 질서를 보며 경건하게 인생을 반추하고 선(善)한 길을 가는 삶이다. 한마디로 심신의 고달픔을 치유하는 삶이다.

농한기에 지난 6년 경험을 토대로 귀촌의 정치 경제 사회적 의미, 개인의 건강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정리해볼 작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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