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아내가 또 울었습니다
내년에는 아내의 아픔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26일 직장에서 가까운 곳을 잡아 1박2일 일정으로 워크숍을 했습니다. 도심을 벗어나서 시골의 맑은 공기를 쐬니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습니다. 숙소를 정하고 직장생활의 현안에 대해 다양한 교육을 받고 저녁을 먹게 됐습니다. 집에 문자는 보냈지만, 전화는 직접하지 않았기에 식당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집에 전화했습니다. 아내가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평소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전화 받으니 더 슬퍼지네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에 나는 순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 말에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간신히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저녁을 많이 먹을 거라는 한 마디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슬펐습니다. 아내는 어느 초등학교의 과학 보조로 올해 3월에 계약을 맺었는데 바로 26일이 출근한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나가서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은 했지만, 마음은 텅 빈 상태였을 겁니다. 그래서 나의 전화를 받고 울음을 터뜨린 것입니다.
동료들은 식당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정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 감정을 숨기고 동료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표정을 더욱더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조금씩 밥을 넘기긴 했지만, 머릿 속은 온통 아내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쯤 얼마나 울고 있을까요? 당장 다음날부터 나갈 곳이 없으니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딜 수가 있을까요? 다른 때도 힘들게 직장을 얻었는데 이번에도 그 고생을 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만약 온갖 노력은 했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아내는 결혼하고 나서 애들을 다 키우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6년이 됐습니다. 처음 4년 동안은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했고, 작년에는 한 초등학교에서 과학보조로 일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학교였는데 모두 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일찍 식당에서 나와 밖으로 나갔습니다. 바람을 많이 쐬고 싶었습니다. 문득 올해 초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아마 4~5군데 서류를 준비해서 냈던 것 같습니다. 4년 동안 경력이 있기에 어렵지 않게 그와 관련된 일자리를 구하리라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습니다. 간 곳마다 연락이 오지 않아 아내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졌습니다. 나도 시간이 되는 대로 아내와 같이 서류를 제출하러 다녔기에 그런 얼굴을 보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아내는 2월이 끝날 때까지 새로운 일자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거의 단념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다가 마침내 3월을 맞이했습니다. 2일에 나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출근준비를 마쳤습니다. 거울 앞에 앉아있는 아내에게 출근한다고 말하는데 아내가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바라보니 아내가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때도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어깨에 손만 잠깐 얹었다가 출근했습니다.
5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졸지에 일자리를 잃어서 출근하지 못하는 아내의 아픔이 출근하는 나의 발걸음을 마냥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만을 탓했습니다. 그날 하루 직장 생활은 당연히 힘들었습니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거울 앞에서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는 아내의 슬픈 모습만이 생각나서 밝은 모습으로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아내는 며칠 후에 한 초등학교가 되어서 다니게 됐습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얻은 직장이 계약이 끝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아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기 전까지 나는 그들의 아픔을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6년 동안 아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애환을 어느 정도 알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매년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으니 그들은 계약이 끝남과 동시에 또 다른 곳을 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운이 좋으면 일자리를 얻겠지만 어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요?
올해 비정규직 아내의 눈물을 두 번이나 봤습니다. 3월 2일 거울 앞에서 소리를 참으며 우는 모습을 봤고, 그리고 이번 12월 26일 저녁에 계약이 끝난 후 퇴근해서 나의 전화를 받고 우는 아내를 봤습니다.
비정규직 아내의 슬픔은, 아내의 눈물은 언제 끝날까요? 이 땅 노동자의 과반수가 비정규직이라는데 그들의 고통은 도대체 언제 그치게 되나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위정자들이 내년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줘서 더 이상 울지 않고 환한 모습으로 직장에 다닐 수 있게 만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내도 거기에 포함되기를 바람은 물론입니다.
"당신의 전화 받으니 더 슬퍼지네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에 나는 순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 말에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간신히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저녁을 많이 먹을 거라는 한 마디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슬펐습니다. 아내는 어느 초등학교의 과학 보조로 올해 3월에 계약을 맺었는데 바로 26일이 출근한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직장에 나가서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은 했지만, 마음은 텅 빈 상태였을 겁니다. 그래서 나의 전화를 받고 울음을 터뜨린 것입니다.
동료들은 식당에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정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 감정을 숨기고 동료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표정을 더욱더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조금씩 밥을 넘기긴 했지만, 머릿 속은 온통 아내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쯤 얼마나 울고 있을까요? 당장 다음날부터 나갈 곳이 없으니 그 아픔을 어떻게 견딜 수가 있을까요? 다른 때도 힘들게 직장을 얻었는데 이번에도 그 고생을 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만약 온갖 노력은 했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 KBS 2TV 드라마 <학교 2013>에서 승리고등학교의 골칫거리 2학년 2반의 담임을 맡은 기간제 교사 정인재(장나라 분). ⓒ KBS
아내는 결혼하고 나서 애들을 다 키우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6년이 됐습니다. 처음 4년 동안은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했고, 작년에는 한 초등학교에서 과학보조로 일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학교였는데 모두 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일찍 식당에서 나와 밖으로 나갔습니다. 바람을 많이 쐬고 싶었습니다. 문득 올해 초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아마 4~5군데 서류를 준비해서 냈던 것 같습니다. 4년 동안 경력이 있기에 어렵지 않게 그와 관련된 일자리를 구하리라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습니다. 간 곳마다 연락이 오지 않아 아내의 얼굴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졌습니다. 나도 시간이 되는 대로 아내와 같이 서류를 제출하러 다녔기에 그런 얼굴을 보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아내는 2월이 끝날 때까지 새로운 일자리를 얻지 못했습니다. 거의 단념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다가 마침내 3월을 맞이했습니다. 2일에 나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출근준비를 마쳤습니다. 거울 앞에 앉아있는 아내에게 출근한다고 말하는데 아내가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바라보니 아내가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때도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어깨에 손만 잠깐 얹었다가 출근했습니다.
5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졸지에 일자리를 잃어서 출근하지 못하는 아내의 아픔이 출근하는 나의 발걸음을 마냥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만을 탓했습니다. 그날 하루 직장 생활은 당연히 힘들었습니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거울 앞에서 출근하는 남편의 얼굴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울먹이는 아내의 슬픈 모습만이 생각나서 밝은 모습으로 즐겁게 직장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아내는 며칠 후에 한 초등학교가 되어서 다니게 됐습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얻은 직장이 계약이 끝났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아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기 전까지 나는 그들의 아픔을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6년 동안 아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애환을 어느 정도 알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매년 계약을 맺어야 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으니 그들은 계약이 끝남과 동시에 또 다른 곳을 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운이 좋으면 일자리를 얻겠지만 어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요?
올해 비정규직 아내의 눈물을 두 번이나 봤습니다. 3월 2일 거울 앞에서 소리를 참으며 우는 모습을 봤고, 그리고 이번 12월 26일 저녁에 계약이 끝난 후 퇴근해서 나의 전화를 받고 우는 아내를 봤습니다.
비정규직 아내의 슬픔은, 아내의 눈물은 언제 끝날까요? 이 땅 노동자의 과반수가 비정규직이라는데 그들의 고통은 도대체 언제 그치게 되나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위정자들이 내년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의 눈물을 닦아줘서 더 이상 울지 않고 환한 모습으로 직장에 다닐 수 있게 만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내도 거기에 포함되기를 바람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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