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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 용서와 치유의 과정을 보고 싶다

[드라마리뷰] 힐링, 과정도 중요.."한정우까지 죽어야 끝이 날까?"

등록|2012.12.28 11:49 수정|2012.12.28 11:50

▲ MBC <보고싶다> 윤은혜 ⓒ MBC


또 한 명이 죽었다. 굳이 댐에서 얼은 시체로 발견된 그의 이름을 남의중 이사라고 밝히지 않는 이유는 <보고싶다> 15회에서 죽어나간 그 사람이 꼭 남의중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이다. 그저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들처럼, 드라마에 등장한 만만한 그 누구라도 또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일각에서 우스갯소리로 대놓고 범죄 스릴러를 표방한 <싸인> 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말하다시피 '사회적 멜로'를 표방한 <보고싶다>는 한 회 걸러 한 명씩 죽어나간다. '사랑으로 이 세상을 치유하겠다고 덤비는 미친토끼'의 이야기를 보겠다고 채널을 돌린 사람들이 정작 마주치는 건 묻지고 따지지도 않고(?) 맘에 안들면 덥석덥석 죽여버리는 싸이코패스의 전횡이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수연)의 구원과 힐링을 주제로 내건 <보고싶다>는 드라마를 통해 감히 꺼내기 힘든 주제를 내걸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용감한 시도라 칭찬 받을 만하다. 더구나, 그 주체가 어린 시절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두고 저 혼자 도망간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그걸 제대로 된 어른이 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한 또 한 사람의 사건 당사자(정우)인 한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어른이라면 저래야 하지 라며 감동을 넘어 반성의 경계까지 오갈 수 있는 '힐링'을 이미 부분적으로 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15회까지 진행된 그리고 남은 회차가(연장이 없다는 발표를 믿고) 단 5회만 남았다는 전제 하에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을 눈 앞에 둔 <보고싶다>를 보고 있노라면 꼭 행복하지만은 않으니 어찌된 일일까?

무엇보다 아역을 제외한 성인 회차가 벌써 10회차에 도달했는데, 정작 드라마의 두 주인공의 관계의 진전이나 자각 정도가 더디다는데 문제가 있다. 시청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전체적인 윤곽을 정작 두 주인공만 모른 채 운명에 휘말려 들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니까. 분명 두 주인공은 키스까지 나눈 사이이긴 하지만 여전히 여주인공은 이수연과 조이의 경계에서 헤매고, 더불어 남주인공조차 연인과 친구 모드를 오락가락한다. '성폭행'이란 어려운 주제를 조심스레 다루다 보니 생긴 일이라고는 하지만 되돌아 보면 이들이 지난 10회 동안 무엇을 했는가? 자꾸 아득해지긴 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의 이별을 가져온 문제. 14년 뒤에 두 사람이 다시 재회하면 맞부닥쳐진 어린 시절의 상처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그들이 주도적이어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보고싶다>의 모든 문제는 늘 '해리보리슨(유승호)'로 부터 시작된다. 애초에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도 유승호의 집에서 미쉘 킴이 죽어서였고, 두 사람이 자신들의 과거의 사건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도 유승호가 하나씩 떡밥을 던져야 가능한 양상이다.

▲ 수목드라마 <보고싶다> 한 장면 ⓒ MBC


한정우야 형사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에서 가장 그 내밀한 속내가 친절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수연이 과거의 친구를 만나고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 서기까지의 과정이 상대적으로 불친절하다. 늘 해리와의 관계와 엮이면서 마치 14년을 자신을 사랑해준 남자와 새로 등장한 첫사랑 사이에 갈등하는 전형적인 삼관 관계의 한 축인 것마냥 보인다. 그것조차도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으로, 해리의 복수를 기본 축으로 진행되다 보니 수동적이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은 과거의 상처를 보다듬고 용서와 치유의 과정을 보고 싶은데, 매번드라마에서 마주치는 건 던져진 시체처럼 뜻밖의 사건들에 당황하게 된다. 내가 이 드라마를 잘못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이처럼 <보고싶다>가 지금 주고 있는 혼란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멜로라는 양식을 풀어가는 방식에서 오는 충돌이라 보여진다. <보고싶다>의 두 주인공 한정우와 이수연의 어린 시절의 사건은 분명 그 두 사람에게는 전면적이요, 보는 시청자들 역시 그것이 가장 드라마를 보는 큰 이유이지만 제작진이 그려낸 전체적인 사건에서 두 사람의 사건은 한정우와 강형준의 어머니가 벌인 원죄, 즉 어른 세대가 벌여논 일의 결과라는 종속적인 소재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두 사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가자니 어른 세대의 문제를 건드려야 하고, 거기에 그걸 주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강형준의 복수가 자꾸 두드러져 보이고 심하게는 두 사람은 장기판의 말처럼 그 사건을 따라가며 고민하고 자각하는 객체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꾸 이수연의 성폭행조차 그저 어른 세대의 갈등을 풀어낼 한 소재로 쓰인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조차 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과연 제작진이 풀어내고자 하는 이야기가 두 주인공의 힐링의 과정인지, 애초에 이수연의 사건이 생기게 만든 어른들의 욕망을 폭로하는 것인지. 이른바 '사회적 멜로'를 표방한 <보고싶다>가 가져오는 혼란은 드라마의 방점을 어디에 찍고자 하는가 하는데서 오는 혼돈의 결과가 아닐까. 게다가 어른들 세대의 욕망으로 인한 젊은 세대의 희생이라는 플롯은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으니, 더더욱 딜레마이다. 용감하게 우리 사회의 치부를 건드린 사회적 멜로가 정작 풀어내는 방식은 전형적이라니!

물론, 결국은 한정우와 이수연이 그 캐캐묵은 해원을 풀어내고 자신들의 묵혀둔 과제를 해결할 것이다. 하지만 15회까지 온 지금 과정에서 그런 두 사람의 고통이 충분히 드러나지도, 힐링의 과정도, 사랑조차도 늘 복수의 과정에 맞물려 단편적으로 진행되니 보는 시청자들의 갈증은 해갈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얼마전 인터뷰에서 주인공 한정우 역의 박유천이 언급한 '슬픈 결말'. 14,5회를 거쳐 복선처럼 한정우의 죽음이 암시되는 상황에서 과연 5회 동안, 시청자들이 만족할 만큼 충분히 이들의 사랑과 힐링이 충족될까? 15회 아직도 사랑을 시작도 해보지 않은 주인공들을 보며 애닳아 하는 시청자들이 14년 동안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여자만을 기다리며 제대로 된 어른이 되고자 애쓴 청년 한정우의 죽음을 개연성있게 받아들일런지 의문이다. 어린 시절 한번 놓친 손을 스물 아홉 죽음으로 반성하는 힐링을 수긍할 수 있을까. 다가올 한정우의 죽음을 예상하며 두 주인공의 14년만의 완성된 사랑을 지켜본다? 고통스럽다.

▲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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