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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괜찮아, 배추 무시는 얼어불거든"

전남 장흥 관산장에서 만난 야채에 담요 양보하고 있는 할머니

등록|2012.12.29 14:38 수정|2012.12.29 14:39

▲ 천관산 자락에 자리잡은 관산장. '정남진' 장흥에서 큰 장에 속한다. ⓒ 이돈삼


"요놈하고 요놈 이렇게 해서 3만 원에 줘."
"어머니 안 된다니까. 한 마리에 3만 원짜리를 어떻게 두 마리를 달라고 한다요? 절대 안 돼요. 요 적은 놈은 몰라도…."

시장 입구에서 팔뚝만 한 대구를 앞에 높고 젊은 주인과 할머니의 흥정이 한창이다. 좀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흥정이 끝났을까.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할머니가 검정 비닐 하나를 들고 발길을 돌린다.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서던 할머니가 몇 걸음 못 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아이고! 이 일을 어쩐다냐."

검정비닐이 터져 버린 모양이다. 비닐 속에 들어있던 대구가 컸던 모양이다. 그 옆으로 트럭 한 대가 들어와 멈춘다. 광어, 주꾸미 등 팔짝팔짝 뛰는 갯것들을 내리고 있다. 방금 바다에서 건져 온 것들이란다.

▲ 관산장 전경. 시골장터치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 이돈삼


▲ 관산장 풍경. 한 아주머니가 배추값을 묻고 있다. ⓒ 이돈삼


아직 동이 트기 전이지만 장터는 소란스럽다. 여기저기 지펴놓은 모닥불의 매캐한 연기도 자욱하다. 장꾼들은 어둠 속에서 짐을 풀어헤치며 장사 채비를 서두른다. 추운 날씨 탓일까. 벌써부터 소주잔을 기울이는 이들도 보인다.

천관산 자락, 장흥 관산읍사무소 주변에 서는 관산장 풍경이다. 지난 2010년 시설현대화 사업을 통해 새단장을 하고 '천관산관광시장'으로도 불리고 있다. 정남진 토요시장에서 값싸고 질 좋은 장흥한우를 맛볼 수 있다면, 이 장터는 싱싱한 해산물을 자랑한다.

관산장은 매 3일과 8일에 열린다. 관산장은 바다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상 싱싱한 해산물이 많이 나온다. 오늘(12월 23일)도 변함없이 시장 입구에 펼쳐진 어물전에서 장이 시작된다. 물꼬를 튼 것은 감태다. 어두워서 매생이로 착각했었다. 바다내음을 물씬 머금은 감태가 손님을 맞는다.

"매생이는 아직 일러. 여기 있는 것들은 다 감태여. 갯창에서 뜯어온 건디 싸게 줄께. 참지름에 묻혀 먹어봐. 좋아."

▲ 바다내음 머금은 감태. 관산장에서 만나는 별미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 제 철을 맞은 굴. 겨울의 참맛이다. ⓒ 이돈삼


마수걸이하지 못해 애가 탄다는 최복자 할머니가 길손의 발길을 붙잡는다. 굴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옆 마을 남포에서 키운 굴이다. 남포굴은 씨알이 자잘하다. 즉석에서 깐 굴 하나를 입안에 넣어본다.

짭조름한 맛과 함께 달보드레한 향이 입안에 금세 퍼진다. 한 그릇 가득 1만 원이다. 이리 퍼주면 남는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후하다. 그물망으로 팔기도 한다. 굴 한 덩이를 잡아들었다.

"떨이여! 1만 8000원 하는디, 선상한테는 1만 5000원에 줄게. 정력에도 무지 좋아."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면서 떨이란다. 입에 밴 모양이다. 감태와 굴 사이로 담요로 덮어 놓은 커다란 무더기가 시선을 끈다. 배추다. 시장 안에 배추와 무 등 농산물도 가득하다. 얼굴만 살짝 내놓은 할머니의 얼굴이 파랗다. 추위에 떨고 있는 것 같다. 많이 추운데 왜 몸에다 담요를 덮어쓰지 않고 배추에 씌워놓은 이유를 여쭤봤다.

"나는 추워도 참을 수 있는디. 배추나 무시는 얼어불거든. 그러믄 못쓰게 돼불어."

▲ 관산장 풍경. 추운 날씨에도 찾는 사람들이 많다. ⓒ 이돈삼


▲ 관산장 풍경. 야채를 팔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군불을 쬐고 있다. ⓒ 이돈삼


장 구경을 하다가 문득 낙지 생각이 난다. 관산장의 낙지가 유명하다는 걸 익히 들었던 터였다.

"관산장의 최고는 뭐니 뭐니 해도 낙지제. 신동마을 앞에 돌섬이 있는디 거기가 낙지 밭이여. 낙지철이면 도시로 나간 이들까지 내려와 잡는 당께. 요즘은 낙지가 비쌀 때여. 대신 고록(주꾸미)을 많이 찾제."

신재환 상인회장의 말이다. 실제 장터에서 낙지를 구경하기 힘들다. 장터를 이리저리 훑어도 보이는 건 주꾸미뿐이다.

"태풍이 불어갖고 바다가 뒤집혀서 요즘은 낙지가 별로 안 잡혀. 한 마리에 4000원이나 한당께. 누가 사 먹겄어? 지난달만 해도 1500원씩 했제. 1200원 할 때도 있었어. 낙지를 먹으려면 아무래도 봄까정 기달려야제. 그 때가 되면 허천나게 먹을 수 있을거여."

신 회장의 말을 뒤로 하고 장터를 어슬렁거린다. 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있다. 장이 한창인데 한 할머니가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회진에서 온 김정자 할머니다. 갯벌에서 뜯어온 감태를 다 판 모양이다. 옆 할머니의 바구니도 거의 다 비었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야 장터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신 회장의 말이 허투루 한 말이 아니었다. 시장 입구 어물전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관산장 풍경. 다양한 해산물이 많이 보이는 장터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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