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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에 곳감 사러 갔다가 나무 자전거도 봤다

[상주여행기 3] 사벌국의 긍지로 살아가는 상주인들

등록|2012.12.29 14:42 수정|2012.12.30 15:19
상주사람들은 상주가 예전 사벌국의 중심이었다는 긍지와 경상도에서 경주 다음으로 큰 고을이었다는 자긍심이 대단하다. 아울러 지금도 평야에 물이 많은 곡창지대로 대한민국 농업의 중심지면서 최고의 귀농지라고 유난스럽게 홍보하고 있다.

예전 상주를 중심으로 경북 북서부지역은 '사벌국(沙伐國)' 또는 사량벌국(沙梁伐國), 사불(沙弗)이라고도 불렸던 소국의 영토였다. 사벌국은 우리 역사에 두 차례 출현했던 작은 나라다.

상주시상주특산 곶감과 감식초 ⓒ 김수종


처음 사벌국은 삼국시대 이전에 존재했다. 상주지역은 이미 기원전 2세기∼기원 전 후에 청동기유물이 다수 출토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로, 일찍부터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형동검(細形銅劍), 동모(銅鉾)의 유물을 통하여 사량벌국은 서기전 1세기 이래 경주를 중심으로 하는 사로국과 대등한 교역관계를 전개하고 있었으며, 토착지배집단이 신라의 귀족으로 흡수되기까지 4∼5세기 이상 독자적인 정치권력으로 그 성장을 지속하고 있었다.

<삼국사기>에는 "첨해왕 때 신라에 복속된 사량벌국이 갑자기 배신하여 백제에 귀속하자, 우로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멸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멸망한 사벌국 영토에는 새로운 주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당초 평야가 넓고 강이 큰 곡창지대인 상주 땅에는 고래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청동기시대 유적도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다. 삼한시대에 진한이 경주의 사로국을 중심으로 독립하자 상주를 중심으로 하는 사벌국이 진한연맹 소속으로 들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 

상주시사벌왕릉 ⓒ 김수종


이후 사로국이 발전한 신라가 강대해져 충북과 강원도일대까지 세력을 뻗치게 되자 사벌국은 신라의 대 백제 병참기지로서 군사적인 지배를 받고 신라와 백제의 전쟁터로 시달림을 당하자 불만이 누적되었다가 나중에는 진한제국 소속의 소국들까지 신라에 지속적으로 합병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독립을 꾀하였다.

그래서 249년 첨해 이사금 1년에 사벌국이 신라에 반기를 들고 백제에 귀순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에 신라는 우로를 파견했고 사벌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두 번째 사벌국의 시작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아들 박언창이 사벌대군에 봉해져서 사벌주에 부임하면서부터다. 박언창의 임무는 사벌주를 초적 및 후고구려와 후백제의 마수에서 방어하는 것으로 성을 축조하고 제반군비를 강화하여 쳐들어오는 적과 대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향각지에서 군웅이 활개 하는 가운데 신라 본국과 연락이 두절되는 사태까지 발생하여 박언창은 자립해 사벌국을 선포하고 사벌면 일대에 왕성을 만드는 등 수도로 정비한 뒤 둔진산을 군사 주둔지로 수비의 완벽을 기했다.

그러나 929년 경순왕 원년에 후백제군이 대거 침공하자 사벌국은 격렬히 항쟁했지만 결국 건국 11년 만에 패망하고 말았고 이때에 박언창도 패사했다. 이때 죽은 박언창은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에 매장되었다.

사벌국 멸망 후 박언창의 아들 박욱이 고려왕조의 개국공신이 되었고 그 후에 그 후손인 박견을 중시조로 상산 박씨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사벌면 화달리에 사벌국의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왕릉을 보기위해 갔다. 이 왕릉은 둔진산 남쪽 기슭 화달리 삼층석탑 동북쪽에 있으며, 왕릉이라고 는 하나 정사에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누구의 묘인지 추정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 경명왕의 왕자로 사벌국의 왕이었던 박언창의 묘라는 전설이 전한다. 왕릉 옆에는 삼층석탑이 있고 그 옆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으며 서북 편에는 재실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옛 사벌국의 성이 병성산에 있고 이 성의 곁에 있는 언덕에 우뚝하게 솟은 고분이 있어 사벌왕릉이라 전해오고 있다"라고, <상주군읍지>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다만 위치가 "성의 북편 9리쯤 떨어진 곳"으로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출판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사벌면 화달리 달천부락에 사벌왕릉이라 칭하는 능의 전면에 상석, 망주석, 양마석, 등대석, 비석 등이 있다. 고분의 높이 9척 5촌, 직경 9간이며 사벌왕은 신라 경명왕의 아들로 상산 박씨의 비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작은 소국이었지만, 아직도 사벌국의 왕릉이 남아있다는 것에 이곳 상주사람들은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꼭 보고 가야할 유적지라고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상주시상주자전거박물관 ⓒ 김수종


왕릉을 살펴본 다음, 우리가 이동을 한 곳은 자전거도시 상주에만 있는 전국유일의 박물관인 '상주자전거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원래 남장동에 2002년 건립되었다가 지난 2010년 10월 이곳 도남동으로 확장 이전한 것이다.

상주자전거박물관 서커스자전거 ⓒ 김수종


자전거 전시실에는 자전거 60여대가 역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체험 전시실과 자전거 문화에 대해 소개하는 공감의 장, 상주 자전거 축제를 소개하는 축제의 장, 자전거와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는 결실의 장이 있다.

나는 이곳에서 바퀴까지 나무로 만들어진 200년 전의 초기 자전거에서부터 집배원이 타던 자전거, 막걸리배달자전거, 외발자전거, 서커스자전거까지 시대별로 자전거의 모양과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상주자전거박물관 나무 자전거, 200년 전의 모습이다 ⓒ 김수종


특히 내 눈을 자극한 것은 1813년 독일 사람인 드라이스가 만든 드라이스지네라는 이름의 자전거로 페달이 없고 왼발, 오른발 번갈아 가며 땅을 박차 움직이는 형태였다. 그래도 최고 시속이 15㎞로 사람보다 빨라 당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상주자전거박물관 1925년 상주에서 열린 경주대회에 참가한 엄복동 선수, 뒤편 왼쪽 ⓒ 김수종


또한 1925년 상주역전에 열렸던 '조선8도 전국자전거대회'에 참가했던 조선의 자전거 영웅 엄복동 선수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떳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 내려다 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간다" 라는 노래가 저절로 입속을 맴돌았다. 너무 귀한 사진이라 한 장 찍어 왔다.

상주자전거박물관 상주자전거박물관 전경 ⓒ 김수종


아울러 예전 TV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던 앞바퀴가 큰 자전거의 원형도 이곳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등 귀하고 특이하고 다양한 자전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해주는데 봄부터 가을까지 날씨가 좋은 때에는 잠시라도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박물관 주변과 강변을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박물관 내부의 주요시설은 지하 1층에 자전거대여소와 수장고, 기계실이 있고 지상 1층에는 기획전시장과 4D영상관, 지역농특산물 홍보코너가 그리고 지상 2층에는 상설전시장과 다목적 홀, 관리사무실 등이 들어서 있다.

상주자전거박물관 상주자전거박물관 앞, 자전거 조각이 설치된 다리 ⓒ 김수종


주변에는 상징조형물과 분수대, 산책로, 기타 공공 편의시설 등의 부대시설이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니 평야가 넓고 산이 거의 없으며 곡창지대인 상주가 전국 최고의 자전거 도시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던 것 같다.

상주자전거박물관 초기 나무 자전거 ⓒ 김수종


부유한 농촌 상주는 지역의 넉넉한 기반을 바탕으로 이미 100년 전부터 자전거가 도입되었다. 현재 상주의 자전거 보급대수는 가구당 2대를 넘어 전국 평균의 4배에 이른다. 자전거 이용률은 통상의 한국 대도시의 7배 이상이며, 자전거를 많이 타는 서유럽이나 일본과 맞먹는 수준으로 자전거를 애용하고 있는 곳이다.

상주자전거박물관 현대의 자전거 ⓒ 김수종


상주에서는 자전거박물관과 함께 자전거 조립공장과 전국 규모의 산악자전거대회가 매년 개최된다. 아울러 누구나 쉽게 자전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낙동강을 따라 동서남북으로 왕래가 편리하고 백두대간과 속리산 같은 관광자원이 풍부해서 산악과 도로, 명승지를 잇는 다채로운 코스가 있다.

상주자전거박물관 기념 촬영 ⓒ 김수종


곶감을 조금 사러 갔다가 짬을 내어 상주 시내를 주마간산으로 둘러보았다. 제사상에도 오르는 감은 후손들에게 큰 벼슬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널리 쓰이는 과일이며, 겨울철 비타민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번 겨울 역사와 문화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슬로시티 상주에서 곶감도 사고 자전거 타기나 트레킹을 즐기면서 사벌국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은 겨울여행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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