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칼을 가진 나라, 다라국을 발견하다
[합천여행기1] 가야의 큰 축이었던 합천
지난 26~27일 양일간 친구들과 경남 합천에 다녀왔다. 내가 좋아하는 해인사와 합천박물관 등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했지만,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워 점심시간이 다 되어 합천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식사를 하기 위해 합천호 인근 대병면 회양리에 위치한 '황태촌'으로 갔다. 시원한 아귀황태전골과 매운 황태 찜을 먹으며 막걸리를 반주로 점심을 했다. 이곳의 아귀황태전골은 온갖 채소에 아귀와 황태 및 조개, 새우 등을 넣어 얼큰한 해물탕 같아 모두가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합천 출신으로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이 고향에 해준 공적(?) 가운데 하나인 합천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공부해볼 수 있는 '합천댐물문화관'으로 갔다. 합천댐은 상습침수지였던 합천에 오랫동안 계획으로만 있던 것을 전두환 정권 시절에 결단(?)을 내려 공사를 시작하여 지난 1988년에 완공된 것이다.
물이 맑고 깨끗해 붕어, 메기, 잉어를 비롯해 일급수에만 사는 민물고기 등이 서식하고 있어 천혜의 낚시터로 꼽히며 편의시설을 갖춘 종합관광단지가 있어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또한 댐에서 거창으로 이어지는 40여 킬로미터의 호반도로는 '합천호 백리벚꽃길'이라 하여 봄에는 벚꽃을 구경하는 인파가 몰리고 가을에는 단풍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이가 많은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아울러 최근 개설된 '합천호 둘레길'은 사계절 볼거리가 많은 합천호를 도보로 일주하는 코스로 산자락도 발 담그고 쉬어가는 멋진 호수 산책로다. 특히 이른 아침 산안개와 물안개가 몸을 섞는 운치 있는 풍경이 절묘하여 새벽부터 찾는 이가 많다.
합천호의 중심인 댐 바로 옆에 있는 합천호물문화관은 물과 사람을 주제로 물에 잠긴 수몰지구의 역사와 주변경관을 설명하는 전시관이다. 전시관을 살펴 본 다음 옥상전망대에 오르면 호수의 아름다움을 가깝게 볼 수 있어 무척 좋다.
최근 물문화관은 단순히 댐을 홍보하고 알리는 전시장에서 벗어나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갤러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음악, 댄스공연 등이 열리는 공연장으로 지역민들에게 다가서는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1층에 있는 4대강과 합천댐을 홍보하는 전시실은 대충 살펴보고, 2층의 자료실을 본 다음, 옥상이 있는 3층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우측에는 댐이 보이고 앞으로는 크고 넓은 호수의 전경이 좌측에는 관광단지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는 적당한 곳 같다.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니 점심에 마신 술이 다 깨고 좋다.
이어 우리가 이동을 한 곳은 합천지역 2천년의 역사를 담은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합천박물관(陜川博物館)'이다. 지난 2004년에 완공된 박물관은 애초 인근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고대 가야국의 일원이었던 '다라국(多羅國)'의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현재는 다라국 유물을 전시한 고고관 1, 2층과 함께 지난 3월에 완공되어 합천의 2천년 역사를 담은 역사관 건물이 나란히 사용되고 있다.
다라국은 가야연맹체의 소국 중의 하나로 기록에 등장한 것은 <양직공도(梁職貢圖)>와 <일본서기>에서다. 다라국 도성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쌍책면 다라리(多羅里)와 성산리 일대야산에는 1000여기의 옥전 고분군이 있다.
서기 400년 전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다라국은 부장유물로 보아 조형미가 뛰어나고 다른 가야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어 상당한 군사, 문화, 경제 수준을 갖춘 국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정치체제는 하한기(下旱岐)와 이수위(二首位)라는 관직이 있었으며, 경제는 마을 이름인 옥전(玉田)에서 보듯 옥이 많이 산출된 듯하다. 옥을 다듬는 숫돌이 발견되는 등 직접 옥구슬을 제작하였음도 알 수 있다. 옥전 고분군은 합천과 거창 지역을 유역권으로 하는 황강이 낙동강 본류와 합쳐지기 전 하류의 관문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신라식과 김해식이 목곽묘가 다수 확인되었다.
특히 M2호분에서는 2000여개가 넘는 구슬이 발견되었고, 23호분에서 출토된 관모는 맨 윗부분에 금동봉이 있어 국내에는 예가 없는 희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M3호에서는 최고 지배자의 상징인 용봉무늬와 봉황무늬, 용무늬가 새겨진 둥근 고리 큰칼이 4자루 출토 되었는데, 한 무덤에서 이렇게 많은 양이 발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투구는 총 13점이 출토되었는데 이중 A호분에서 나온 것은 전체를 금동제로 만들어 화려하게 한 것으로 평안북도 총오리 산성의 고구려 투구와 연관시켜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갑옷은 최고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5벌이 발견되었다. 이 가운데 68호분에서 발견된 철판 갑옷은 복천동 고분군 외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희귀한 갑옷으로, 같은 시기인 5세기 전반 일본의 갑옷과 함께 고대 갑옷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말투구는 동아시아에서는 복천동 고분 1점과 일본에서 발견된 2점만이 확인되었으나, 옥전 고분군에서 5점이 출토되었다. 그 밖에 각 지역의 최고 수장급 고분에서만 출토되는 기꽂이가 M3호분에서 2점이 출토되어 고구려 문화의 전파와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M3호분에서는 관 아래에 130여 개의 도끼를 깔았으며, 28호분에서는 칼을 관 아래에 깔아 무덤 주인의 부와 권위를 나타내는 독특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옥 제품 및, 금관, 금 귀걸이, 팔찌 등의 유물과 함께 토기와 금동제 관모, 각종 의기류, 고구려 풍 투구 등이 출토되었다.
이곳의 철제 유물은 단순히 철제품이 발견된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망치와 집게 등 철을 다루는 유물도 다수가 함께 나와 철기를 이곳에서 직접 생산 가공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서기 541년과 544년 일본과 두 차례의 교류가 있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과 로마에서 온 유리컵, 불교식의 연꽃무늬 목관장식, 금세공 기술 등을 통하여 다라국이 가야는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 중국의 남조, 인도, 서남아시아 등과도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도 있다.
또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실물 크기로 복원한 무덤과 도성의 미니어처, 다양한 영상자료 등이 갖추어져 있어 다라국의 역사가 숨겨진 고분 속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거대한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을 보고서 다라국을 '황금 칼의 나라'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아울러 지난봄에 새롭게 완공한 합천역사관에는 신석기, 청동기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합천의 역사를 알리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어 볼거리가 있다.
합천의 인물이 남명 조식 선생, 내암 정인홍을 비롯하여 향교와 서원, 지역의 대표적인 고건축, 사찰, 절터, 옛 지도, 우리 조상들의 얼이 담긴 민속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나란히 있는 대강당에서는 사회교육장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학술회의, 문화공연, 연수회 등이 열리며, 홍보영상물도 볼 수 있다.
또한 박물관 위쪽에는 발굴되거나 발굴 중인 옥전 고분군이 자리 잡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청동기, 삼한, 가야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삼가 고분의 재현된 모습과 대병면 대지리 무학대사의 출생지로 알려진 휴허지에서 출토된 삼층석탑이 복원되어 있다.
박물관 전체를 차근차근 둘러보면 반나절은 걸릴 것 같다. 옥전 고분을 형상화한 건물과 구조는 특이한 점이 많았다. 난 입구에 있는 등자와 말투구 등 많은 종류의 마구를 갖춘 말 동상에 보고는 깜짝 놀랐다. 가야의 소국이 이토록 대단한 전투 장비를 완비하고 있었다니, 대단하다.
정문 앞에 조성된 분수대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의 형상도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무시무시하게 보였는데, 말 동상까지 보고는 다라국이 보통 나라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관, 금 귀걸이, 칼, 마구, 갑옷, 유리 잔 등 박물관 안에 있는 550여점의 유물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며칠이라도 시간을 내어 다라국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만큼 관심이 가고 깊이 있게 연구하고 싶어졌다.
▲ 합천군점심 ⓒ 김수종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식사를 하기 위해 합천호 인근 대병면 회양리에 위치한 '황태촌'으로 갔다. 시원한 아귀황태전골과 매운 황태 찜을 먹으며 막걸리를 반주로 점심을 했다. 이곳의 아귀황태전골은 온갖 채소에 아귀와 황태 및 조개, 새우 등을 넣어 얼큰한 해물탕 같아 모두가 잘 먹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합천 출신으로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이 고향에 해준 공적(?) 가운데 하나인 합천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공부해볼 수 있는 '합천댐물문화관'으로 갔다. 합천댐은 상습침수지였던 합천에 오랫동안 계획으로만 있던 것을 전두환 정권 시절에 결단(?)을 내려 공사를 시작하여 지난 1988년에 완공된 것이다.
▲ 합천군합천댐물문화관 ⓒ 김수종
물이 맑고 깨끗해 붕어, 메기, 잉어를 비롯해 일급수에만 사는 민물고기 등이 서식하고 있어 천혜의 낚시터로 꼽히며 편의시설을 갖춘 종합관광단지가 있어 가족단위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또한 댐에서 거창으로 이어지는 40여 킬로미터의 호반도로는 '합천호 백리벚꽃길'이라 하여 봄에는 벚꽃을 구경하는 인파가 몰리고 가을에는 단풍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이가 많은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 합천군합천호 ⓒ 김수종
아울러 최근 개설된 '합천호 둘레길'은 사계절 볼거리가 많은 합천호를 도보로 일주하는 코스로 산자락도 발 담그고 쉬어가는 멋진 호수 산책로다. 특히 이른 아침 산안개와 물안개가 몸을 섞는 운치 있는 풍경이 절묘하여 새벽부터 찾는 이가 많다.
합천호의 중심인 댐 바로 옆에 있는 합천호물문화관은 물과 사람을 주제로 물에 잠긴 수몰지구의 역사와 주변경관을 설명하는 전시관이다. 전시관을 살펴 본 다음 옥상전망대에 오르면 호수의 아름다움을 가깝게 볼 수 있어 무척 좋다.
▲ 합천군합천호 ⓒ 김수종
최근 물문화관은 단순히 댐을 홍보하고 알리는 전시장에서 벗어나 지역 예술인들을 위한 갤러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음악, 댄스공연 등이 열리는 공연장으로 지역민들에게 다가서는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1층에 있는 4대강과 합천댐을 홍보하는 전시실은 대충 살펴보고, 2층의 자료실을 본 다음, 옥상이 있는 3층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우측에는 댐이 보이고 앞으로는 크고 넓은 호수의 전경이 좌측에는 관광단지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는 적당한 곳 같다.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니 점심에 마신 술이 다 깨고 좋다.
▲ 합천군합천호 ⓒ 김수종
이어 우리가 이동을 한 곳은 합천지역 2천년의 역사를 담은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합천박물관(陜川博物館)'이다. 지난 2004년에 완공된 박물관은 애초 인근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고대 가야국의 일원이었던 '다라국(多羅國)'의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현재는 다라국 유물을 전시한 고고관 1, 2층과 함께 지난 3월에 완공되어 합천의 2천년 역사를 담은 역사관 건물이 나란히 사용되고 있다.
▲ 합천박물관무덤 내부를 형상화하여 칼을 만들었다. ⓒ 김수종
다라국은 가야연맹체의 소국 중의 하나로 기록에 등장한 것은 <양직공도(梁職貢圖)>와 <일본서기>에서다. 다라국 도성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쌍책면 다라리(多羅里)와 성산리 일대야산에는 1000여기의 옥전 고분군이 있다.
서기 400년 전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다라국은 부장유물로 보아 조형미가 뛰어나고 다른 가야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한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어 상당한 군사, 문화, 경제 수준을 갖춘 국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 합천박물관다라국의 투구 ⓒ 김수종
정치체제는 하한기(下旱岐)와 이수위(二首位)라는 관직이 있었으며, 경제는 마을 이름인 옥전(玉田)에서 보듯 옥이 많이 산출된 듯하다. 옥을 다듬는 숫돌이 발견되는 등 직접 옥구슬을 제작하였음도 알 수 있다. 옥전 고분군은 합천과 거창 지역을 유역권으로 하는 황강이 낙동강 본류와 합쳐지기 전 하류의 관문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는 신라식과 김해식이 목곽묘가 다수 확인되었다.
▲ 합천박물관다라국의 금 귀걸이, 대단히 아름답다 ⓒ 김수종
특히 M2호분에서는 2000여개가 넘는 구슬이 발견되었고, 23호분에서 출토된 관모는 맨 윗부분에 금동봉이 있어 국내에는 예가 없는 희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M3호에서는 최고 지배자의 상징인 용봉무늬와 봉황무늬, 용무늬가 새겨진 둥근 고리 큰칼이 4자루 출토 되었는데, 한 무덤에서 이렇게 많은 양이 발견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투구는 총 13점이 출토되었는데 이중 A호분에서 나온 것은 전체를 금동제로 만들어 화려하게 한 것으로 평안북도 총오리 산성의 고구려 투구와 연관시켜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합천박물관다라국의 갑옷 ⓒ 김수종
갑옷은 최고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5벌이 발견되었다. 이 가운데 68호분에서 발견된 철판 갑옷은 복천동 고분군 외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희귀한 갑옷으로, 같은 시기인 5세기 전반 일본의 갑옷과 함께 고대 갑옷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말투구는 동아시아에서는 복천동 고분 1점과 일본에서 발견된 2점만이 확인되었으나, 옥전 고분군에서 5점이 출토되었다. 그 밖에 각 지역의 최고 수장급 고분에서만 출토되는 기꽂이가 M3호분에서 2점이 출토되어 고구려 문화의 전파와 영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합천박물관다락국 지배자의 무덤 속 부장품 ⓒ 김수종
M3호분에서는 관 아래에 130여 개의 도끼를 깔았으며, 28호분에서는 칼을 관 아래에 깔아 무덤 주인의 부와 권위를 나타내는 독특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다수의 옥 제품 및, 금관, 금 귀걸이, 팔찌 등의 유물과 함께 토기와 금동제 관모, 각종 의기류, 고구려 풍 투구 등이 출토되었다.
이곳의 철제 유물은 단순히 철제품이 발견된 이상의 의미가 있다. 망치와 집게 등 철을 다루는 유물도 다수가 함께 나와 철기를 이곳에서 직접 생산 가공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밖에도 서기 541년과 544년 일본과 두 차례의 교류가 있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과 로마에서 온 유리컵, 불교식의 연꽃무늬 목관장식, 금세공 기술 등을 통하여 다라국이 가야는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 중국의 남조, 인도, 서남아시아 등과도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도 있다.
▲ 합천박물관다라국의 보검 ⓒ 김수종
또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실물 크기로 복원한 무덤과 도성의 미니어처, 다양한 영상자료 등이 갖추어져 있어 다라국의 역사가 숨겨진 고분 속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거대한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을 보고서 다라국을 '황금 칼의 나라'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아울러 지난봄에 새롭게 완공한 합천역사관에는 신석기, 청동기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합천의 역사를 알리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어 볼거리가 있다.
합천의 인물이 남명 조식 선생, 내암 정인홍을 비롯하여 향교와 서원, 지역의 대표적인 고건축, 사찰, 절터, 옛 지도, 우리 조상들의 얼이 담긴 민속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나란히 있는 대강당에서는 사회교육장으로서의 역할과 함께 학술회의, 문화공연, 연수회 등이 열리며, 홍보영상물도 볼 수 있다.
▲ 합천박물관다라국의 보검, 황금 칼의 나라 다라국의 상징물 ⓒ 김수종
또한 박물관 위쪽에는 발굴되거나 발굴 중인 옥전 고분군이 자리 잡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청동기, 삼한, 가야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삼가 고분의 재현된 모습과 대병면 대지리 무학대사의 출생지로 알려진 휴허지에서 출토된 삼층석탑이 복원되어 있다.
박물관 전체를 차근차근 둘러보면 반나절은 걸릴 것 같다. 옥전 고분을 형상화한 건물과 구조는 특이한 점이 많았다. 난 입구에 있는 등자와 말투구 등 많은 종류의 마구를 갖춘 말 동상에 보고는 깜짝 놀랐다. 가야의 소국이 이토록 대단한 전투 장비를 완비하고 있었다니, 대단하다.
정문 앞에 조성된 분수대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의 형상도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무시무시하게 보였는데, 말 동상까지 보고는 다라국이 보통 나라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합천군합천박물관에서 다라국의 말을 타다 ⓒ 김수종
금관, 금 귀걸이, 칼, 마구, 갑옷, 유리 잔 등 박물관 안에 있는 550여점의 유물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며칠이라도 시간을 내어 다라국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만큼 관심이 가고 깊이 있게 연구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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