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여자-독일 남자, 금기를 넘어선 사랑
[불혹 배낭여행기 ⑪] 행복, 부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 알바니아의 한적한 마을 배랏. 유유자적 흘러가는 강을 보며 편안하게 몸과 마음을 쉬기 좋은 곳이다. ⓒ 홍성식
▲ 너무나 조용해서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처럼 느껴지는 여름날 배랏의 오후. 이슬람예배당의 에잔 소리만이 정적을 깨운다. ⓒ 홍성식
티라나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4시간 남짓 남쪽으로 달렸다. 인구가 수천 명에 불과한 조용한 시골마을 배랏. 조그만 강이 마을을 가르며 소리 없이 흐르고, 야트막한 산 위에 계단식으로 지어진 집들.
네온사인도, 시끌벅적한 카페도 없는 깡촌. 고대엔 꽤 번성했던 도시라는데 당시의 영화는 산 위에 황량하게 남겨진 성곽만이 쓸쓸하게 증언하고 있을 뿐, 시내 중심가에도 인적이 드물어 유령마을 같았다. 무슬림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에잔(Ezan)만이 낡은 모스크 기둥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하루 5번 울려나오고.
그런데, 그런 적요함이 나쁘지 않았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저렴한 숙소는 그 마을에 딱 하나. '배랏 백패커스 호스텔'이었다. 덴마크와 잉글랜드, 핀란드와 체코, 독일과 호주, 캐나다와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이 20명 남짓은 금방 친해졌다.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독일과 크로아티아, 세르비아를 거쳐 배랏까지 왔다는 커플은 이제 겨우 열아홉. 놀랍게도 오로지 '히치하이크'로만 1000km가 넘는 길을 왔다고 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그리스까지 같은 방식으로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들려주는 그들의 젊음과 용기가 한없이 부러웠다.
국경을 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유럽에서 태어난 열아홉 소년과 소녀의 가슴엔 스스로 그어놓은 나라간 경계선이 없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슬리퍼 신고 옆 동네 놀러가듯 5~6개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는 것.
철조망으로 가로 막힌 북한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육로로 다른 나라를 갈 수 없는 우리. 1개월이 넘는 외국여행은 큰마음을 먹고 준비해야 가능한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은연중에 자리한 외국과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 혹은, 거리감은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배랏을 여행하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숙소인 배랏 백패커스. 찾아가는 골목길이 예쁘다. ⓒ 홍성식
▲ 배랏의 여름날 풍광. 한국의 어느 한갓진 시골마을 같다. ⓒ 홍성식
배랏, 사랑이 국경과 인종 따위를 못 넘을까
저물녘엔 배랏에 하나뿐인 조그만 광장을 서성였다. 더운 날씨 때문에 집에만 머물던 마을 사람들이 서늘한 강바람을 쐬러 나왔는지 조용하던 거리에 활기가 스며들었다.
광장 인근 허름한 찻집에 삼삼오오 모여 홍차와 커피를 마시는 알바니아 사람들. 담배 하나를 빼어 물고 그 광경을 구경하던 내게 10대 소년들 한 무리가 몰려와 말을 건다. 동양인을 보기가 쉽지 않은 곳이니 내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음이 분명했다. "어디서 왔느냐?", "뭘 하는 사람이냐?", "한국은 일본이랑 가까운 곳에 있냐" 등의 질문이 빠르고 두서없이 이어졌다.
붙임성 좋은 몇몇 소년들은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까지 취하고. 어떤 질문과 요구에도 웃으며 응대하는 내가 나쁘게 느껴지지 않아서였을까. 자기들이 먹던 소금 뿌린 해바라기씨와 견과류를 나눠줬다. 한국 고등학생들과 달리 표정엔 여유가 있고, 공부 압박과 스트레스에 찌든 모습이 아니라 얼굴 가득 웃음기를 머문 그네들이 보기 좋았다. 몸에 걸친 낡은 바지, 셔츠와는 상관없이.
▲ 텅빈 배랏의 광장. 해가 질 무렵이 되자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몰려나와 광장을 가득 메웠다. ⓒ 홍성식
그래, 가난하면 또 어떤가. 단지 부자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의 소소한 즐거움과 여유로운 웃음을 포기하고 있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찻집 의자에 나란히 앉은 한 쌍의 커플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독일 사내와 알바니아 여자로 연애를 시작한지 3년이 됐다고 했다. 아무래도 경제적 형편이 나은 독일 남자가 시간이 날 때마다 여자가 사는 알바니아로 찾아와 함께 여행을 다니곤 한단다.
독일 기독교도와 알바니아 이슬람교도의 사랑. 축복받기 힘든 조합이다. 특히 여자 쪽이 더 힘들 것이다. 이슬람의 원칙을 지향하는 무슬림국가에서는 다른 종교를 가진 남편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세히 묻지는 못했지만, 지난할 것이 분명한 그들의 연애와 사랑.
그러나, 연인을 바라보는 독일 남자의 눈길은 한없이 따스했고, 그의 어깨에 기대 뜨개질을 하던 알바니아 여자의 표정은 더없이 평화롭기만 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고금과 동서양을 불문하고 사랑은 그 어떤 금기와 제약도 넘어설 힘을 주는 것, 죽음은 물론 삶의 이유가 되는 사랑이 그깟 국경과 인종을 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들의 빛나는 사랑에 무언가 축복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둘에게 새삼 무슨 말이 필요할까. 맥주 한 병을 사내에게 건네는 것으로 내 마음을 알렸다.
늦은 밤.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내게도 저런 견딜 수 없는 간절한 사랑이 있었던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졌다. 답은 깨어난 아침까지도 들려오지 않았다.
▲ 배랏의 언덕 위에 지어진 오래된 건축물. ⓒ 홍성식
▲ 오래된 건축물 돌 틈에 낀 이끼를 보고 있으면 묘한 향수가 밀려왔다. ⓒ 홍성식
듀레스, 아드리아해에서의 혼잣말
마침내 열흘 남짓의 알바니아 여행이 끝나는 날. 10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운 커다란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드리아해에 접한 알바니아의 항구도시 듀레스에서 바다 건너 이탈리아 바리(Bari)로 향하는 페리. 모두가 걱정하던 여행이 아무런 사고 없이 끝나가고 있었다.
항구 보안검색대에선 여성 보안요원 서너 명이 모여 내 여권 사진과 실물을 비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당신이 마흔 살이 맞냐"고 물었다. 나를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말해준 이들은 생을 통틀어 거의 처음이었다. 그것마저도 기분이 좋았다. 출국 확인 도장을 찍어줄 때까지 그네들과 나는 마주 보고 웃었다.
부끄러움 많고 친절한 알바니아 사람들. 그들 속에서 지낸 날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했다.
이름난 유적지도, 높은 첨탑의 유명한 성당도, 멋들어진 휴양지도, 세련된 식당과 카페도 없는 나라. 그러나, 짧은 여행을 통해 나는 알바니아를 진정으로 좋아하게 됐다. 마피아가 득실댄다는 오해 속에서 가난한 삶을 이어가면서도 남에게 베풀어줄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 매료된 탓일 게다.
▲ 알바니아에서 바라본 아드리아해. 그 신비한 푸른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 홍성식
그래서였다. 이탈리아로 건너가는 배 위. 아드리아의 푸른 물빛을 바라보던 나는 석양 아래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만약 남은 생에서 다시 열정을 되살릴 사람을 만난다면, 배랏에서 본 그 연인들처럼 금기와 국경을 넘어 빛나는 사랑을 나눌 연인이 생긴다면 돌아올게 알바니아여. 그때까지 안녕."
덧붙여, 하나 더. 알바니아에 마피아는 없다. 거기엔 빈곤함 속에서 서로에게 기댄 착한 무슬림들이 산다. 그러니, 알바니아에 가거든 있지도 않은 마피아를 찾지 마라.
▲ 무너져가는 고성. 인적 없는 그곳에서 오래 전 번성했던 알바니아의 배랏을 떠올리는 일은 쓸쓸했다. ⓒ 홍성식
알바니아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팁 몇 가지
1. 깨끗하게 잘 정돈된 한국의 버스터미널과 합리적인 시스템이 정착된 서유럽의 국제버스터미널에 익숙한 여행자라면 알바니아에서 당황할 수도 있다. 중소도시는 물론, 수도인 티라나에도 버스터미널이란 게 아예 없다. 목적지에 따라 승차하는 장소가 각기 다르다. 승차장은 주로 길거리. 그러나, 당황할 필요는 없다. 배낭여행객이 묶는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프린트 해 나눠주는 무료지도에 정차 장소가 잘 표시돼 있다. 만약 지도를 구하지 못했다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걸 통해 알바니아인들의 친절을 확인하는 기쁨까지 누리게 될 것이다.
2. 알바니아 기차는 매우 낡았고 몹시 느리다. 베트남 기차의 평균 속력인 시속 50km에도 못 미친다. 한국의 KTX식 안락함을 기대한다면 실망이 클 수도 있다. 하지만, 낡고 느린 것에도 나름의 미학이 있는 법. 알바니아와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살을 보고 싶은 여행자에게 기차는 최선의 선택이다. 낡은 기차 안은 알바니아 꼬마들과 놀아주며 동심으로 돌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추천 구간은 수도인 티라나에서 아드리아 바다가 출렁이는 해변도시 듀레스까지.
3. 이슬람 문화와 유럽의 문화가 묘하게 뒤섞인 알바니아. 그 특성은 음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서민적인 식당에서 한 끼에 2유로(3000원) 이하인 부담 없는 식사를 해도 좋지만, 티라나 시내 곳곳에 산재한 레스토랑에서 알바니아식 정찬을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올리브 샐러드와 향신료가 독특한 주요리, 거기에 달콤한 디저트까지 주문해도 10유로(15000원) 안팎. 이국적 분위기에서 소박한 호사도 한번 즐겨보는 게 어떨지.
4. 모스크(이슬람예배당)에 들어가 보는 것도 흔히 할 수 없는 독특한 체험이다. 대부분의 모스크가 외지인에게도 개방돼 있고, 방문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코란을 독경하는 엄숙한 성직자와 만나게 된다면 잠시 세속에서 벗어나는 기분까지 덤으로 얻는다. 여행 시기가 여름이라면 수십 미터 높이의 천장 아래서 시원함까지 느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예계간지 <문학의오늘>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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