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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열차 타고 향일암으로..."끝은 새로운 시작"

상심한 마음 동백꽃에 부리고 다시 시작하는 '새해'

등록|2013.01.02 12:37 수정|2013.01.02 14:36
새해 일출을 볼 장소는 남도의 여수로 잡았다. 연말 강력 사건에다 대선을 치르면서 상심한 마음을 향일암이 달래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여수엑스포역행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으니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객실이 만원이다. 저마다 묶은 짐과 새로운 희망을 담고 남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달이 뜬 듯하다.

남녘의 이른 벚꽃, 멋대로 부는 바람에/ 푸른 바다로 분분히 날려/ 저녁 예불 소리 문득 외로운데,/ (줄임)/ 여수 앞바다, 돌섬 꼭대기 바위틈에/ 이렇게 대롱대롱 매달려 살자는 것이냐/ 줄창 하늘만 바라보자는 것이냐

일출1향일암에서 바라본 일출 전 바다 모습 ⓒ 김현옥


용산역을 출발한 야간열차가 윤중호 시인의 시 <향일암(向日庵)>을 싣고 남녘으로 내달린다. 여수행 반도종단열차는 지리산을 휘돌고 섬진강을 에돌아 남해로 치닫는다. 작은 역까지 일일이 안부를 물으며 육자배기 가락으로 덜컹이다가 간혹 시김새처럼 울리는 기적소리도 구성지다.

꼬박 다섯시간을 넘게 내달려 오전 4시가 다 되어서야 여수엑스포역에 사람들을 풀어놓았다. 남도의 새벽 바람이 아직 차다. 임포행 오전 5시 30분 첫차를 타고 향일암으로 향했다. 돌산대교를 건너자 버스는 구불구불한 길을 이카루스마냥 거침없이 날아다닌다. 

그렇게 40여분을 달리니 임포다. 시인 곽재구는 <포구기행>에서 임포를 임을 기다리는 포구로 해석해놓았다. 마침 만해 한용운 선생이 잠시 머문 곳이라 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임을 기다리는 포구라. 임포에서 10여 분을 오르니 향일암 대웅전이다. 

하늘과 바다가 한마음으로 손잡고/ 우아악 힘껏 떠밀어/ 절벽 위에 올려 놓은 절/ 향일암/ (줄임)/ 날마다 떠오르는 해와 마주보며/ 바위 절벽에 붙어/ 빠끔히 문 열어놓은/ 산 조가비 같은 대웅전

일출2향일암 동백나무 숲에서 새해 첫 해가 밝아오는 모습 ⓒ 김현옥


신달자 시인은 <향일암>에서 "막 떠오르는 해가 날마다 부처님 앞에/ 먼저 문안드리면" 부처님이 되레 자비를 베풀어 한 주먹씩 해를 나누어준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절을 지어 해를 바라는 마음을 빌고, 해는 부처를 향해 절을 하니, 해와 절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곳이 바로 향일암이다.   

아직 초승달은 금오산 자락에 걸려 있는데 샛별이 닻처럼 머리맡에 박혀 있다. 검푸른 바다는 수평선 너머로 해를 기다리며 얼어붙은 듯 고요하다. 적막 적요 적멸 적념. 텅 비어 있어 가득한 상태란 이런 상태를 두고 말한 것이리라.

미세한 숨소리와 멀리 통통배 소리를 빼면 사위가 다 적요 속에 든 듯하다. "지속적으로 흘러내려 원천에서 상실된 물을 바다라고 부른다. 바다는 상실된 것의 집합"이라고 키냐르는 말한다. 일출을 보려 난간에 기댄 사람들이 태초의 양수같은 바다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 시선의 뒤에서 동백꽃, 가지를 찢는 소리가 적막을 깨는 듯하다.

그 아뜩한 올가미를 빠져나오려/ 짐승의 새끼처럼/ 다리를 모으고/ 세차게 머리로 가지를 찢고/ 나오는 동백꽃을 이리 가까이 와 보아요/ 향일암 매서운 겨울 바다 바람도/ 검푸른 잎사귀로/ 그 어린 꽃을 살짝 가려주네요

일출3향일암 관음전 우듬지 사이로 보이는 아침 햇살 ⓒ 김현옥


송찬호 시인은 <관음이라 불리는 어느 동백에 관한 회상>에서 동백을 "짐승을 닮은 꽃"이라 한다. 검푸른 바다 위로 머리를 들이대는 해와 검푸른 잎사귀 사이로 붉은 꽃을 피워올리는 동백의 떨림으로 바다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마침내 수평선 위로 검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하자 저 멀리 뱃고동 소리에 맞춰 심장의 박동소리가 요동친다. 바다는 물결을 출렁이며 어린 해를 하늘로 떠밀고, 동백은 가지를 뒤틀어 붉은 꽃을 땅으로 내린다. 관음전에 드니 바다는 자애의 햇살로 가득하고, 뜰에는 연민의 동백으로 붉게 물든다. 

일출4향일암 관음전 뜨락에서 바다를 꿈꾸는 네마리 거북 ⓒ 김현옥


향일암 관음전 뜨락에 거북처럼 엎드려 지난해 받았던 상처와 상실의 동백꽃을 천길 낭떠러지 아래 부리니, 어머니 같은 바다는 슬픔의 동백꽃을 쓸어모아 날마다 큰 꽃 하나 피워올리고 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 했으니, 해를 맞이한 사람들의 눈빛이 희망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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