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벌벌 떨어야 만날 수 있는 풍광
[포토에세이] 서리꽃... 북한산 겨울 숲
▲ 서리꽃떨어진 낙엽에 피어난 서리꽃이 날개같다. 그 날개로 하늘을 훨훨 날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 김민수
올 겨울들어 가장 춥다는 날, 북한산 자락과 인접한 곳에서 2013년 시무식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몇 년간 출퇴근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일찍 출근하면 종종 들르곤 하던 약수터, 그곳에서 시원한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일 수 있을까 싶어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헤치고 올랐습니다.
▲ 서리꽃하얀 눈꽃보다 더 하얀 서리꽃 ⓒ 김민수
약수터와 이어진 작은 계곡, 규모는 작지만 용천수인듯 꽁꽁 얼어붙지 않았습니다. 강추위에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들에 서리꽃이 피어났습니다. 흡사, 낙엽에 하얀 날개가 돋아난듯했습니다.
▲ 서리꽃서리꽃을 피우기 위해 밤새 조금씩 자랐을 것이다. ⓒ 김민수
저 하얀 날개로 날아갈 수 있을까? 저만큼의 날개를 만들려면 밤새워 조금씩 자랐을 것입니다. 상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작은 소경들을 마주하면서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 서리꽃저마다 하얀 날개를 달고 비상을 준비하는 듯하다. ⓒ 김민수
이런 행운같은 일들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겨울 꽤나 추운 날이 많았으니 이런 소경들이 매일 아침 반복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 어딘가에서는 이렇게 신비한 풍경들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아름다운 일들도 늘 있었겠지요. 단지, 내가 다른 곳에 눈이 팔려 그것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겠지요.
▲ 서리꽃하나가 더해저 더 아름다운 자연 ⓒ 김민수
그래도 오늘 여기에 서있고, 나는 그것을 보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감사하자 했습니다. 그들을 바라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도 감사하고, 설령 내가 그것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본듯 살아가자 했습니다.
▲ 서리꽃낙엽에서 하얀 날개가 돋아난듯 하였다. ⓒ 김민수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 삶, 내 일상을 깊이 바라보면, 조금만 천천히 걸어가면, 경쟁의 구도에서 잠시 벗어나기만 하면, 더 풍성한 삶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겠습니다.
▲ 서리꽃모든 것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끝이 아니었다. ⓒ 김민수
끝난 줄 알았는데, 이젠 흙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생각했는데 그 삶에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낙엽이 그렇게 말하는듯 했습니다. 그의 의지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냥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봅니다.
▲ 서리꽃엄동설한이 아니고서는 피어나지 않는 서리꽃 ⓒ 김민수
아무 일 없이, 별 볼일 없이 그날그날 연명하는 것 같아도 그 삶이 아름다워지는 날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노라면'이 아닐까요?
▲ 반영한 겨울에도 얼지 않는 용천수 ⓒ 김민수
▲ 반영겨울 계곡에서 반영된 풍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 김민수
용천수는 대략 10도 정도의 기온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지요. 그 용천수가 추운 날이면 모락모락 하얀 김을 내고, 그 김이 얼어붙어 서리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겨울 숲, 겨울 계곡에서 반영을 보는 일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행운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괜시리 기분이 좋아집니다. 추위에 벌벌 떨며 나왔는데, 그 추위가 아니었으면 만날 수 없는 풍광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좋다고 좋은 것만 아니고, 나쁘다고 나쁜 것만이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북한산 자락, 작은 약수터와 이어진 작은 계곡에서 1월 3일 담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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