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경씨, 제가 당신에게 '치욕'을 줬군요
[주장] 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의 항의문
나는 지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약 4년여간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이하 '친일 재산조사위')에서 조사관으로 일했다. 조사관으로 업무를 마치고 나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난 4년간 친일 재산을 국가에 귀속하는 조사관으로서 업무를 잘 마쳤다는 인사였다.
그런데 그중 한 명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재야단체에서 나와 함께 일한 선배로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오래 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격려해주기 위해 전화했다고 짐작하고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첫 마디는 나를 경악케 했다. 그는 "친일 재산이라며 환수하는 것은 죄도 없는 그 후손들에게 연좌제를 적용하는 것인데 매우 잘못된 것이다. 노무현이가 이런 인권침해를 하면 인권운동을 한다는 네가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상황 파악이 안 된 나는 믿을 수 없는 그의 막말을 듣고 정말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라고 웃으며 되물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큰 목소리로 화를 내듯 "농담은 무슨 농담이냐? 너희들 때문에 죄도 없이 피눈물을 흘리는 그들 후손에게 사과해야 한다. 너희는 노무현 정부의 홍위병 같은 놈들이다"라고 거듭 말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참담한 그의 주장에 나는 달리 대꾸할 말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곧 바로 휴대폰에서 그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추후 확인해보니 그는 '뉴라이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 그의 역사 인식을 반박한다
그런데 이 같은 비슷한 논리의 말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지난 12월 27일이었다. 박근혜 당선인의 '정권(대통령직)인수위원회' 내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윤주경(53)씨의 발언이었다. 그는 1932년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항일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손녀딸로서, 박근혜 당선인이 인수위에 발탁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그런 그가 지난 12월 27일 종편 방송인 채널A에 나와 인터뷰한 발언을 들으며 나는 잊었던 그때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을 직접 거명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를 예로 들며 "일부에서 박근혜 후보를 친일파의 후예라고 하는데 윤봉길 의사의 후예로서 박근혜 당선인을 위해 일하는 게 불편하지 않냐"는 앵커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불편함은) 없다. 이정희 후보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진보의 최고 가치'는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후보가 가장 미워해야 할 것은 '연좌제'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후보는 박 당선인에게 연좌제를 적용했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지난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제정된 친일 재산조사위의 노력을 통해 국가에 귀속한 친일 재산을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지원하는 것을 두고 "치욕스러웠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앵커 :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들었다. 친일파나 그 후손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은 힘들게 살고 있다는 지적이 진보진영에서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윤주경 :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로 나라가 능력이 생기자 가장 먼저 한 일이 국가유공자 자녀들에게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보내줬다. 그 결과 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살 수 있었다. 진보진영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더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었어야 했지, 친일파들이 잘 사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참여정부에서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해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뭘 해주는 게 치욕스러웠다. 독립운동가 지원은 국가예산으로 해줘야 하는 것이지 그들(친일파 후손)도 부당하다고 하는 재산환수를 통해서 도와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나는 이 같은 윤주경씨의 발언을 통해 그때 나에게 막말을 던진 선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너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제대로 반박조차 하지 못한 그 말을 지금이라도 제대로 써야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친일파들의 변명... 과연 그럴까
윤주경씨는 크게 두 가지 지점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드러냈다. 먼저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해서 그 후손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연좌제'라고 말했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그는 이 정답을 그냥 일반화하여 규정함으로써 모든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해서 이를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이다. 그러나 친일 행위를 한 조상에 대해 그 후손이 이를 '옹호'하고 더 나아가 '미화'까지 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친일 재산조사위의 조사관으로 일한 4년여 동안 나는 적지 않은 친일파 후손들을 만났다. 그들 중에는 진실로 자신의 조상이 해 온 친일 행각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이미 매각한 친일 재산의 대금을 스스로 반환한 분들도 있다. 을사조약 당시 중추원 고문을 지낸 친일 행위자 고희경의 후손이 그들이다. 당시 <경향신문>이 사설을 통해 '귀감'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친일 후손들은 달랐다.
그들이 반박하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친일 행위는 당시 시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변명이었다. 일제가 주는 작위와 은사금을 거부할 경우 죽을지도 모르기에 할 수 없이 받은 것이라고 그들은 항변했다. 하지만 실제로 작위를 거부한 사람은 있었으나 일제가 죽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변명일 뿐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그것을 '반민족행위'라고 규정하고 있고, 규정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친일'이었다는 그들의 말을 인정한다면 만약 우리나라가 또 다시 누군가에게 국권을 빼앗기는 비극적인 시대에 직면할 경우 얼마든지 또 민족을 배반하고 일신의 안위를 위해 매국 행위를 해도 죄가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된다.
두 번째는 '친일 행위보다 더 큰 공이 있는데 이는 무시하고 친일파로만 매도한다'며 억울하다는 주장이었다. 예를 들어 학교를 짓고 저수지와 신작로를 만드는 등 백성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했기에 친일 행위만 부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저수지를 만들고 길을 닦은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행위였을 뿐이다. 경기도 안성의 박필병과 충남 공주의 김갑순 등 말로만 듣던 '만석지기 친일파'들이 바로 그 예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이었다. 그리고 그 물을 대기 위해서 그들은 저수지가 필요했으며 또 그렇게 생산된 많은 양의 곡식을 외부로 반출하기 위해서 역시 필요한 것은 길이었다. 이처럼 자신을 위해 저수지를 만들고 길을 닦은 그들이 이러한 행위를 모두 백성을 위해 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저수지와 길을 만든 후 소작농도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가로 이들은 '수세'를 냈다.
그런데 이러한 친일파의 변명을 우리나라의 위대한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의 후손, 윤주경씨에게 다시 듣는 상황은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오는 결론은 하나다. 자신의 조상이 '독립운동가'였다고 해서 그 후손 역시 무엇을 하든 칭찬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비난을 받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추앙을 받든 그 모든 공과는 사실 '그 조상의 언행'이기 때문이다.
친일파 후손이든 독립군 후손이든, 문제는 '오늘의 정신'
윤주경씨의 경력을 살펴봤다. 그가 박근혜 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에 참여하기 전 도대체 무슨 일을 해왔는지 궁금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그의 사회활동 경력은 크게 세 가지였다.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 이사, 월진회 이사, 독립기념관 이사였다. 그중 생소한 이름이 '월진회'였기에 확인해보니, 1929년 4월에 윤봉길 의사가 만든 조직으로서 '날로 앞으로 나아가고 달마다 전진한다'는 취지의 단체였다. 결국 따져보면 그는 할아버지인 윤봉길 의사와 관련된 일만 해온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정신'이다. 그들의 후손이 오늘날 어떻게 처신하냐에 따라 친일파 조상의 이름이 더 비난받을 수도 있고 또한 항일 독립운동가의 후손 역시 그들의 잘못으로 영광된 조상의 이름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 결국 과거의 조상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살아가고 있는 그 후손의 처신에 따라 비난도, 영광도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윤주경씨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치세'를 위해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 윤봉길 의사'의 이름을 팔고 있다. 미안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또는 경력과 전문성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하기보다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인 윤봉길 의사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윤봉길 의사의 손녀가 아니었다 해도 박근혜 당선인이 그를 인수위에 고위 인사로 포함시켰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지금 그에게 언론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친일파 후손 논란에 서 있는 박근혜 당선인을 돕고 있어 불편하지 않냐"고 묻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박근혜 당선인이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위 논란을 가리기 위해 순결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윤주경씨는 자신에게 맡겨진 '무언의 책임'을 다하려는 것인지 너무도 실망스러운 언행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노무현 참여정부가 친일파의 재산을 국가 귀속한 재원으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치욕스럽다'라고 표현하는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1977년에 지원을 시작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대학 무상교육'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나는 이러한 그의 발언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떤 사안을 두고 제각각 해석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어떤 것은 비난하고 또 어떤 것은 옹호하기 위해 편파적으로 해석하여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1948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강제 해체된 반민특위를 뒤늦게나마 다시 시작한 것이 친일 재산조사위였다고 우리는 자부했다.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힘들게 싸웠는지 그는 알고 있을까. 그런데 자신을 발탁해준 박근혜 당선인을 돕겠다는 취지로 이러한 성과마저 함부로 폄하하는 것을 보니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지만 너무 심각한 역사 인식의 허점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참담할 지경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나만,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와 내 가족의 미래보다 조국을 선택했습니다. 백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 윤봉길 의사 유서 가운데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일제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는 같은 해, 상하이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1932년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경 일본 가나자와 교외 미고우시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하셨다. 당시 나이 25세였다. 윤주경씨는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1959년에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의 육체적 DNA는 받았지만 그가 독립운동가의 정신적 DNA를 제대로 이어받았는지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역할로 윤봉길 의사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박근혜 당선인이 저를 부른 이유는 국민 대통합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애국심의 상징적 의미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저를 참여시켜 국민들에게 그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라는 취지로 저를 생각해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TV조선>에 출연한 윤주경씨는 "인수위에서 앞으로 맡을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의 주장처럼 그가 인수위에서 맡아야 할 역할이 '국민 대통합'이라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한 저울'이다. 자신에게 공직을 준 누군가를 위해 옹호하고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어떤 사실을 한없이 폄하하는 것은 통합이 아닌 '또 다른 분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신 안위를 버리고 조국을 선택한 할아버지 '윤봉길 의사'의 뜻을 훼손하는 일이 될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윤주경씨가 국가 귀속한 친일 재산을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한 재원으로 쓰겠다는 참여정부의 노력에 대해 '치욕스럽게 여겼다'는 발언은 매우 유감이다. 당시 친일 재산조사위의 조사관들은 우리의 노고가 '부러진' 민족정기를 조금이나마 바로 세우는 역할이라고 자부하며 혼신의 정성을 다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악착같이' 숨긴, 또는 누락된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찾고자 나를 비롯한 친일 재산조사위의 조사관들은 전국의 이름 모를 산과 들판을 4년간 헤매고 다녔다. 가시덤불 풀숲과 진흙 뻘밭을 마다하지 않았던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노고가, 윤주경씨의 표현에 의하면 '독립운동가를 치욕스럽게 한 것'이라고 하니 묘한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독립운동가 지원은 국가 예산으로 해줘야 하는 것이지 그들(친일파 후손)도 부당하다고 하는 재산 환수를 통해서 도와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는 그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 예산으로 독립운동가 후손을 지원하는 것은 괜찮고 정부가 귀속한 친일 재산으로 지원하는 것은 안 된다는 얘기다.
친일 상속 재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헌법 소원과 민사소송을 남발하며 끝까지 저항하던 친일 후손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그 발언이 너무 실망스럽다. 이미 국가 귀속한 재산이기에 친일 재산 역시 국가 예산이며 또한 그것으로만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돕겠다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친일파 후손이 제기한 친일 재산 환수가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 소원에 대해 당시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일부 위헌'이라며 소수 의견을 냈던 이동흡 전 재판관을 차기 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하여 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그의 발언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부디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큰 공직을 맡은 윤주경씨가 자신의 할아버지 윤봉길 의사의 빛나는 얼에 누가 되지 않도록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그중 한 명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재야단체에서 나와 함께 일한 선배로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오래 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격려해주기 위해 전화했다고 짐작하고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첫 마디는 나를 경악케 했다. 그는 "친일 재산이라며 환수하는 것은 죄도 없는 그 후손들에게 연좌제를 적용하는 것인데 매우 잘못된 것이다. 노무현이가 이런 인권침해를 하면 인권운동을 한다는 네가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상황 파악이 안 된 나는 믿을 수 없는 그의 막말을 듣고 정말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라고 웃으며 되물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큰 목소리로 화를 내듯 "농담은 무슨 농담이냐? 너희들 때문에 죄도 없이 피눈물을 흘리는 그들 후손에게 사과해야 한다. 너희는 노무현 정부의 홍위병 같은 놈들이다"라고 거듭 말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참담한 그의 주장에 나는 달리 대꾸할 말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곧 바로 휴대폰에서 그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추후 확인해보니 그는 '뉴라이트'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 그의 역사 인식을 반박한다
▲ 지난해 12월 27일 종편 채널A에 출연해 박근혜 당선인과의 인연 등에 대해 말하고 있는 윤주경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 윤 부위원장은 윤봉길 의사의 친손녀다. ⓒ 채널A 갈무리
그런데 이 같은 비슷한 논리의 말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지난 12월 27일이었다. 박근혜 당선인의 '정권(대통령직)인수위원회' 내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윤주경(53)씨의 발언이었다. 그는 1932년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진 항일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손녀딸로서, 박근혜 당선인이 인수위에 발탁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그런 그가 지난 12월 27일 종편 방송인 채널A에 나와 인터뷰한 발언을 들으며 나는 잊었던 그때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그는 대통령 후보자 토론회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을 직접 거명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를 예로 들며 "일부에서 박근혜 후보를 친일파의 후예라고 하는데 윤봉길 의사의 후예로서 박근혜 당선인을 위해 일하는 게 불편하지 않냐"는 앵커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불편함은) 없다. 이정희 후보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 '진보의 최고 가치'는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후보가 가장 미워해야 할 것은 '연좌제'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후보는 박 당선인에게 연좌제를 적용했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지난 노무현 참여정부 당시 제정된 친일 재산조사위의 노력을 통해 국가에 귀속한 친일 재산을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지원하는 것을 두고 "치욕스러웠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앵커 :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들었다. 친일파나 그 후손은 잘 먹고 잘 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은 힘들게 살고 있다는 지적이 진보진영에서 더러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윤주경 :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로 나라가 능력이 생기자 가장 먼저 한 일이 국가유공자 자녀들에게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보내줬다. 그 결과 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고 나름대로 살 수 있었다. 진보진영에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더 잘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었어야 했지, 친일파들이 잘 사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참여정부에서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해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뭘 해주는 게 치욕스러웠다. 독립운동가 지원은 국가예산으로 해줘야 하는 것이지 그들(친일파 후손)도 부당하다고 하는 재산환수를 통해서 도와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나는 이 같은 윤주경씨의 발언을 통해 그때 나에게 막말을 던진 선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너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제대로 반박조차 하지 못한 그 말을 지금이라도 제대로 써야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친일파들의 변명... 과연 그럴까
▲ 1932년 12월 19일 일본에서 처형된 윤봉길 의사의 순국 직후의 모습 ⓒ 자료사진
윤주경씨는 크게 두 가지 지점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드러냈다. 먼저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해서 그 후손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연좌제'라고 말했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그는 이 정답을 그냥 일반화하여 규정함으로써 모든 친일파와 그 후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해서 이를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이다. 그러나 친일 행위를 한 조상에 대해 그 후손이 이를 '옹호'하고 더 나아가 '미화'까지 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친일 재산조사위의 조사관으로 일한 4년여 동안 나는 적지 않은 친일파 후손들을 만났다. 그들 중에는 진실로 자신의 조상이 해 온 친일 행각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이미 매각한 친일 재산의 대금을 스스로 반환한 분들도 있다. 을사조약 당시 중추원 고문을 지낸 친일 행위자 고희경의 후손이 그들이다. 당시 <경향신문>이 사설을 통해 '귀감'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친일 후손들은 달랐다.
그들이 반박하는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친일 행위는 당시 시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변명이었다. 일제가 주는 작위와 은사금을 거부할 경우 죽을지도 모르기에 할 수 없이 받은 것이라고 그들은 항변했다. 하지만 실제로 작위를 거부한 사람은 있었으나 일제가 죽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변명일 뿐이다. 그렇기에 역사는 그것을 '반민족행위'라고 규정하고 있고, 규정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친일'이었다는 그들의 말을 인정한다면 만약 우리나라가 또 다시 누군가에게 국권을 빼앗기는 비극적인 시대에 직면할 경우 얼마든지 또 민족을 배반하고 일신의 안위를 위해 매국 행위를 해도 죄가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밖에 안 된다.
두 번째는 '친일 행위보다 더 큰 공이 있는데 이는 무시하고 친일파로만 매도한다'며 억울하다는 주장이었다. 예를 들어 학교를 짓고 저수지와 신작로를 만드는 등 백성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했기에 친일 행위만 부각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저수지를 만들고 길을 닦은 것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행위였을 뿐이다. 경기도 안성의 박필병과 충남 공주의 김갑순 등 말로만 듣던 '만석지기 친일파'들이 바로 그 예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이었다. 그리고 그 물을 대기 위해서 그들은 저수지가 필요했으며 또 그렇게 생산된 많은 양의 곡식을 외부로 반출하기 위해서 역시 필요한 것은 길이었다. 이처럼 자신을 위해 저수지를 만들고 길을 닦은 그들이 이러한 행위를 모두 백성을 위해 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저수지와 길을 만든 후 소작농도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가로 이들은 '수세'를 냈다.
그런데 이러한 친일파의 변명을 우리나라의 위대한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의 후손, 윤주경씨에게 다시 듣는 상황은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오는 결론은 하나다. 자신의 조상이 '독립운동가'였다고 해서 그 후손 역시 무엇을 하든 칭찬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친일파의 후손'이라고 비난을 받든,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추앙을 받든 그 모든 공과는 사실 '그 조상의 언행'이기 때문이다.
친일파 후손이든 독립군 후손이든, 문제는 '오늘의 정신'
▲ 용산구 효창원에 있는 '3의사 묘역'은 해방후 환국한 백범 김구 선생이 조성한 것으로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비석이 없는 왼쪽 끝은 안중근 의사의 가묘. ⓒ 정운현
윤주경씨의 경력을 살펴봤다. 그가 박근혜 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에 참여하기 전 도대체 무슨 일을 해왔는지 궁금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그의 사회활동 경력은 크게 세 가지였다.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 이사, 월진회 이사, 독립기념관 이사였다. 그중 생소한 이름이 '월진회'였기에 확인해보니, 1929년 4월에 윤봉길 의사가 만든 조직으로서 '날로 앞으로 나아가고 달마다 전진한다'는 취지의 단체였다. 결국 따져보면 그는 할아버지인 윤봉길 의사와 관련된 일만 해온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정신'이다. 그들의 후손이 오늘날 어떻게 처신하냐에 따라 친일파 조상의 이름이 더 비난받을 수도 있고 또한 항일 독립운동가의 후손 역시 그들의 잘못으로 영광된 조상의 이름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 결국 과거의 조상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살아가고 있는 그 후손의 처신에 따라 비난도, 영광도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윤주경씨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치세'를 위해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 윤봉길 의사'의 이름을 팔고 있다. 미안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또는 경력과 전문성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하기보다 독립운동가 할아버지인 윤봉길 의사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윤봉길 의사의 손녀가 아니었다 해도 박근혜 당선인이 그를 인수위에 고위 인사로 포함시켰을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지금 그에게 언론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친일파 후손 논란에 서 있는 박근혜 당선인을 돕고 있어 불편하지 않냐"고 묻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박근혜 당선인이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위 논란을 가리기 위해 순결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윤주경씨는 자신에게 맡겨진 '무언의 책임'을 다하려는 것인지 너무도 실망스러운 언행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노무현 참여정부가 친일파의 재산을 국가 귀속한 재원으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치욕스럽다'라고 표현하는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1977년에 지원을 시작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대학 무상교육'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나는 이러한 그의 발언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떤 사안을 두고 제각각 해석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어떤 것은 비난하고 또 어떤 것은 옹호하기 위해 편파적으로 해석하여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1948년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강제 해체된 반민특위를 뒤늦게나마 다시 시작한 것이 친일 재산조사위였다고 우리는 자부했다.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힘들게 싸웠는지 그는 알고 있을까. 그런데 자신을 발탁해준 박근혜 당선인을 돕겠다는 취지로 이러한 성과마저 함부로 폄하하는 것을 보니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지만 너무 심각한 역사 인식의 허점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참담할 지경이다.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나만,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와 내 가족의 미래보다 조국을 선택했습니다. 백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 윤봉길 의사 유서 가운데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일제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는 같은 해, 상하이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후 1932년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경 일본 가나자와 교외 미고우시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살형으로 순국하셨다. 당시 나이 25세였다. 윤주경씨는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1959년에 태어났다. 독립운동가의 육체적 DNA는 받았지만 그가 독립운동가의 정신적 DNA를 제대로 이어받았는지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역할로 윤봉길 의사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 2006년 8월 18일 친일파재산을 되찾기 위한 범정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현판식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박근혜 당선인이 저를 부른 이유는 국민 대통합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애국심의 상징적 의미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저를 참여시켜 국민들에게 그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라는 취지로 저를 생각해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TV조선>에 출연한 윤주경씨는 "인수위에서 앞으로 맡을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앵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의 주장처럼 그가 인수위에서 맡아야 할 역할이 '국민 대통합'이라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정한 저울'이다. 자신에게 공직을 준 누군가를 위해 옹호하고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어떤 사실을 한없이 폄하하는 것은 통합이 아닌 '또 다른 분열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일신 안위를 버리고 조국을 선택한 할아버지 '윤봉길 의사'의 뜻을 훼손하는 일이 될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윤주경씨가 국가 귀속한 친일 재산을 독립운동가 후손을 위한 재원으로 쓰겠다는 참여정부의 노력에 대해 '치욕스럽게 여겼다'는 발언은 매우 유감이다. 당시 친일 재산조사위의 조사관들은 우리의 노고가 '부러진' 민족정기를 조금이나마 바로 세우는 역할이라고 자부하며 혼신의 정성을 다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악착같이' 숨긴, 또는 누락된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찾고자 나를 비롯한 친일 재산조사위의 조사관들은 전국의 이름 모를 산과 들판을 4년간 헤매고 다녔다. 가시덤불 풀숲과 진흙 뻘밭을 마다하지 않았던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노고가, 윤주경씨의 표현에 의하면 '독립운동가를 치욕스럽게 한 것'이라고 하니 묘한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독립운동가 지원은 국가 예산으로 해줘야 하는 것이지 그들(친일파 후손)도 부당하다고 하는 재산 환수를 통해서 도와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는 그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 예산으로 독립운동가 후손을 지원하는 것은 괜찮고 정부가 귀속한 친일 재산으로 지원하는 것은 안 된다는 얘기다.
친일 상속 재산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헌법 소원과 민사소송을 남발하며 끝까지 저항하던 친일 후손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하는 그 발언이 너무 실망스럽다. 이미 국가 귀속한 재산이기에 친일 재산 역시 국가 예산이며 또한 그것으로만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돕겠다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친일파 후손이 제기한 친일 재산 환수가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 소원에 대해 당시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릴 당시 '일부 위헌'이라며 소수 의견을 냈던 이동흡 전 재판관을 차기 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하여 논란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그의 발언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부디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큰 공직을 맡은 윤주경씨가 자신의 할아버지 윤봉길 의사의 빛나는 얼에 누가 되지 않도록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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