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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생 키우는 맞벌이 엄마, 잠 좀 편히 잡시다

0~5세 무상보육 예산안 통과되어도 우리 아인 갈 곳이 없어요

등록|2013.01.06 12:12 수정|2013.01.07 14:55
요즘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맞벌이 부부이고 이제 4살, 3살이 된 연년생의 엄마라 하루하루가 피곤이 충만하여도 이상하게 자려고 누우면 눈만 감았을 뿐 쉽사리 잠들지를 못한다.

옆집이 시끄러운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보채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남편이 코를 좀 골긴 하지만 같이 산 지 여러 해, 이제 익숙해졌으니 그 이유때문도 아니다. 눈을 감아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워 이건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나에게 잠 못 이룰 고민이 생긴 것이다.

선천적으로 느긋한 성격인 나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잠을 자지 못한다거나 밥맛이 없다거나 하지 않는다. 20대 시절 불같은 사랑이 최후를 맞이하여도 절대 잠을 자지 못한 적은 없으니 이쯤이면 스트레스 지수가 낮은 편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랬던 내가 요즘은 왜 이렇게 잠 못 이루는 걸까.

선천적으로 느긋한 내가 잠 못 드는 까닭

▲ 시립어린이집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아무 걱정없이 맡길 수 있을 텐데…. ⓒ 이정환


생각해보니 내가 30년이 좀 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잠 못 이룬 적이 세 번 정도 있었던 듯하다. 그 첫 번째는 5년 쯤 전이었던 것 같다.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시작된 서울살이. 처음에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돈으로 전세살이를 시작했는데 2년마다 꼬박꼬박 오르는 전세값때문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가 집에 가려면 등산을 하다시피 해야 했던 용산, 그 달동네의 집 계약기간이 끝날 때 쯤이었다.

어김없이 전세값은 올랐고 역시나 천만 원이 넘는 돈을 요구하는 주인에게 이사를 하겠다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 나는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어떡하지? 걱정하고 있던 중 시골에서 딸을 만나러 엄마가 올라오셨고, 나는 엄마에게 노골적으로 손 벌리기가 미안해 엄마 앞에서 살짝 연기를 했다. 자려고 같이 누워서는 잘 수 없는양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결국 다음날 아침 엄마는 눈을 뜨자마자 잘 잤냐는 인사를 뒤로하고 이 말부터 꺼냈다.

"얼마면 되냐?"

물론 약간의 연기가 섞였으니 진정 잠을 못 이룬 것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30% 정도의 진심도 섞여 있었으니 내 성격에 이 정도면 충분히 잠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 두번째는 결혼 후 첫째가 태어났던 2010년 여름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자연분만이 아닌 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수술비와 입원비로 예상했던 병원비보다 세 배 가까이 지출하게 된 것. 직업의 특성상 수입이 좋지 못했던 상황에 의외의 지출은 우리집 통장의 잔고를 0원으로 만들어버렸다.

일주일후 퇴원해 집으로 왔지만 당장의 생활비가 없으니 앞길이 막막했다. 내일부터 당장 무얼 먹고 사나? 정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천만 다행으로 시엄마가 남편 앞으로 들어놓은 연금보험에서 5년마다 지급되는 돈을 받지 않고 미뤄두었던 것이 있다며 150만 원을 주셨다. 우리는 그 돈으로 한 달을 살아내었다. 지금 생각해도 좀 아찔 했던 순간이었다.

돌 전에 대기자 명단에 올려놨는데, 40개월에도 감감 무소식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1월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거거래소 내 KRX 푸르니 어린이집을 방문해 한 어린이로부터 "대통령이 되면 뭐가 좋아요"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그리고 그 세 번째가 바로 지금이다. 나는 어제도 그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 근처 시립어린이 집에서 2013년도 입학생 발표가 마무리 되어가던 12월 말. 그때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 전화기만 바라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내년에 4살이 되는 첫째 아이는 시립 어린이집에 입학하지 못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은 아파트 단지에 집 하나를 빌려 운영하는 민간어린이집이다. 이곳은 영유아 전문이라 4살까지만 보육이 가능하다. 다섯 살이 되는 내년부터는 다른 어린이집을 다녀야 하는데 7세까지 보육하는 어린이집은 국공립을 빼면 그리 많지 않다.

집 근처에 다행히 시립 어린이집이 있어 첫째가 태어나고 몇 달 후부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가 0세 반에 들어가지 못해 좀 실망했었다. 그러나 만 3세(4세가 되는 해) 반부터는 한 반의 보육인원이 좀 늘어나기 때문에 이번에는 혹시 되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 연령 이후로는 거의 자리가 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시립어린이집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아무 걱정없이 맡길 수 있을텐데 …. 결국 첫째는 첫 번째 입시(?)전쟁에서 낙오하고 말았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결국 우리 아이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지금 어린이집에서 졸업을 한다. 그리고 나면 유치원을 알아봐야 한다. 유치원 역시 자리가 많은 것이 아니라 다닐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유치원은 교육시간은 오후 2시까지다. 내가 퇴근하는 6시까지시간을 채우려면 학원 수업 한두 개는 끼워 넣어야 한다. 이제 겨우 40개월 된 아이에게 학원이라니. 우리 아이가 당장 내년부터 겪게 될 일을 생각하니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0세에서 5세까지 무상보육 예산이 통과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공약을 지켰음을 과시하기도 하고 또 한쪽에서는 곧 보육대란이 일어날 것이라 경고하기도 한다. 나 역시 대책없는 무상보육 정책이 오래 갈 것이라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무상보육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한다면 진짜 무상보육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단순히 보육비만 지원해 주는 것이 무상보육은 아니다. 모든 아이들이 아무 걱정없이 보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부모들이 아이 걱정없이 자신의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무상보육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어린이집의 양과 질의 개선이 시급하다.

이 역시 어린이집 숫자를 늘리기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어린이집에 대한 지원도 무상보육의 일환이어야 한다. 일단 어린이집 선생님이 할 만한 직업이어야 어린이집도 많이 생길 것이고 선생님이 행복하면 우리 아이들도 행복해질 것 아닌가. 우리나라 보육 시스템의 근본부터 다시 들여다 봐야 하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이유들은 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선거 때만 되면 전세값 잡겠다고, 의료비 잡겠다고 무상보육하겠다고 그럴싸하게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 졸속으로 흐지부지 끝났다. 무상보육 역시 이렇게 대책없이 질러대다 예산만탓하며 그만 두게 될지 모른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보기만 좋은 복지가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는, 그래서 느리더라도 탄탄한 기초가 있는 복지정책이다. 나에게는 정말 무상보육이 무엇인지, 정말 무상의료가 무엇인지, 정말 복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내가 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잠자리를 만들어 줄 그런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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