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철물점 60년, 마인드는 글로벌
시골철물점 사장의 철물점 이야기
안성 일죽면에 가면 60년 내공의 시골철물점이 있다. 60년 세월만큼이나 신선한 철물점이야기를 만나보자.
60년 내공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H 건재 대표 이종은 씨에게 얼마나 했냐고 물었다. "92년도에 이어 받았으니까..... 어! 벌써 20년이 넘었다"며 본인도 놀란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달려온 게다.
60년 내공은 아버지 이환규씨로부터 비롯된다. 60여 년 전 아버지는 톱장이였다. 톱을 직접 만들어 팔았다. 장날 톱날도 갈아주었다. 당시엔 철물점이라 할 것도 없었다. 남의 집 처마 밑에 좌판을 벌인 게 다였다. 인근 시골 장날엔 장돌뱅이 톱장이를 했다. 덕분에 안성에서도 알아주는 톱장이였다. 나무로 땔감을 하던 시절, 서민들에게 톱은 필수품이었다.
그러다가 손님들이 "낫은? 호미는? 괭이는?"이라고 한 덕분에 품목도 늘어갔다. 2007년에 고인이 된 아버지는 평생 지역주민들의 철물을 팔며 살았다. 아버지는 시골에 살면서도 농사가 아닌 철물장사로 7남매를 훌륭히 키워냈다.
92년, 아버지의 병환과 대수술. 그것이 종은씨의 운명을 돌려놓았다. 원래 교사가 꿈이었던 그는 타지에서 관련학과를 나왔다. 아버지의 수술 후 본인의 꿈을 접었다. 귀촌해서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로 했다. 지금도 대학동기들은 "아니 네가 철물점을"이라며 놀란다고.
처음엔 오토바이로 배달을 다녔다. 그 시절, 손님이 오면 겁부터 덜컥 났다. 혹시나 자신이 모르는 걸 찾으면 어떡하나하고. 손님 오는 게 반가워야 함에도 두려웠다니. 그렇게 21년을 달려왔다. 아버지 38년, 아들 21년, 도합 59년의 역사가 이어져왔다.
아버지시대와 아들시대는 달랐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시골스타일로 철물점을 운영했다. 아들은 시대변화에 맞춰 계속 옷을 갈아입었다.
"나무가 땔감이던 가마솥시대, 연탄보일러시대, 석유보일러시대, 전기보일러시대, 태양열 시대까지. 연탄보일러시대 말기에서 석유보일러시대에 접어들 무렵,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았다"며 설명해주는 종은씨. "철물점을 보니 서민들의 에너지이용 변천사가 보인다"며 우리는 서로 웃었다.
"이 일을 해보니 백화점보다 더 계절에 민감하더라. 예컨대 겨울 되기 전에 그 시대에 유행하는 난방기구를 확보해놓아야 한다. 그 예측이 맞으면 다행인데, 틀리면 재고도 쌓이고 적자도 쌓인다"며 씁쓸해하는 종은씨. 그는 10년이 넘어가니 그제야 좀 보이더란다. 한 분야에서 최소한 10년은 해야 조금 알 거란다.
모든 게 기계화된 농촌에서 그와 관련된 철물도 수없이 많아졌다. 덕분에 밥벌이도 했지만, 위험부담도 많아졌다. 계속 변화되는 새 제품을 확보해야한다. 때를 놓치거나 지나면 재고가 된다. 재고품이 늘어나면 파산은 당연하다.
"20년을 했는데 요즘 이 일이 재밌다. 이제야 이 일이 익숙하고 편해서 그렇다"는 종은씨. 자신이 아는 건 빙산의 일각이란다. 아직도 철물에 관해 배울 게 많다는 마음가짐이 재미있다고 말한 것일 터.
시골철물점 직원 3명이 모두 정규직 사원
옛날 아버지로부터 이어 받은 낡은 가게에 비가 샜다. 그 비로 인해 철물이 젖었다. 그 많은 철물을 바깥에 늘어놓고 말렸다. 그 때 그만두고 싶었단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06년에 3층 건물을 지었다. 시골철물점으로선 획기적인 변화였다.
2013년, 현재 직원이 3명이다. 종은씨와 아내, 직원 3명이 하루 종일 바쁘다. 직원들은 모두 소위 정규직이다. 이젠 조그만 구멍가게의 차원을 넘어섰다.
직원들에겐 늘 "'먼빨제자'로 인사하자"고 주문한다. '먼저, 빨리, 제때, 자주 인사하자'는 거다. 친절은 우리의 재산이라며 강조한다. 인사만 잘해도 밥 먹고 살 거란다.
종은씨는 직원들에게 반말을 하는 법이 없다. 쉽게 대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팀워크의 기본이라는 걸 잘 안다. 퇴근 무렵 본 그들의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명의 직원이라도 '팀장, 주임'이라는 직함을 줌으로써 '직원 세워주기'도 놓치지 않는 듯했다.
한 물건을 놓고 심지어 5가지로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있다. 시골어르신들만의 언어로 물건을 찾기도 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 손님이 원하는 걸 대화해서 빨리 대령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선 직원끼리 서로 공유하는 건 기본이다.
이렇게 된 건 그에게 롤 모델이 있어서다. 증평, 광주, 곤지암 등 잘 된다는 철물점을 돌아본 결과였다. 이왕 할 거면 그 분야의 최고수들을 찾아 배우려했다. 지금도 직원들과 그런 곳을 견학하고 공부한다. 직원들과 비전을 공유한다.
그는 향후 10년 안에 '대기업의 철물점 진출'이 이루어질 거라고 본다. 대형마트들이 골목슈퍼를 잠식했 듯. 그 때를 대비해 틈새전략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시골장사가 아니라 글로벌 중소기업이라고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60년 내공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H 건재 대표 이종은 씨에게 얼마나 했냐고 물었다. "92년도에 이어 받았으니까..... 어! 벌써 20년이 넘었다"며 본인도 놀란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달려온 게다.
60년 내공은 아버지 이환규씨로부터 비롯된다. 60여 년 전 아버지는 톱장이였다. 톱을 직접 만들어 팔았다. 장날 톱날도 갈아주었다. 당시엔 철물점이라 할 것도 없었다. 남의 집 처마 밑에 좌판을 벌인 게 다였다. 인근 시골 장날엔 장돌뱅이 톱장이를 했다. 덕분에 안성에서도 알아주는 톱장이였다. 나무로 땔감을 하던 시절, 서민들에게 톱은 필수품이었다.
▲ 이종은대표시골철물점을 하면서 마인드는 글로벌인 이종은 씨. 현재 직원 3명이 모두 정규직 사원이다. 그들과 팀워크를 중요시하고 비전을 공유하며 시골에서 철물점을 하고 있다. ⓒ 송상호
그러다가 손님들이 "낫은? 호미는? 괭이는?"이라고 한 덕분에 품목도 늘어갔다. 2007년에 고인이 된 아버지는 평생 지역주민들의 철물을 팔며 살았다. 아버지는 시골에 살면서도 농사가 아닌 철물장사로 7남매를 훌륭히 키워냈다.
92년, 아버지의 병환과 대수술. 그것이 종은씨의 운명을 돌려놓았다. 원래 교사가 꿈이었던 그는 타지에서 관련학과를 나왔다. 아버지의 수술 후 본인의 꿈을 접었다. 귀촌해서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로 했다. 지금도 대학동기들은 "아니 네가 철물점을"이라며 놀란다고.
처음엔 오토바이로 배달을 다녔다. 그 시절, 손님이 오면 겁부터 덜컥 났다. 혹시나 자신이 모르는 걸 찾으면 어떡하나하고. 손님 오는 게 반가워야 함에도 두려웠다니. 그렇게 21년을 달려왔다. 아버지 38년, 아들 21년, 도합 59년의 역사가 이어져왔다.
아버지시대와 아들시대는 달랐다
▲ 이종은씨의 아버지 고 이규환씨의 모습이다. 수십 년 전 어느 여름날, 재래 형태의 철물점 앞에서 이규환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 이종은
아버지는 전형적인 시골스타일로 철물점을 운영했다. 아들은 시대변화에 맞춰 계속 옷을 갈아입었다.
"나무가 땔감이던 가마솥시대, 연탄보일러시대, 석유보일러시대, 전기보일러시대, 태양열 시대까지. 연탄보일러시대 말기에서 석유보일러시대에 접어들 무렵,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았다"며 설명해주는 종은씨. "철물점을 보니 서민들의 에너지이용 변천사가 보인다"며 우리는 서로 웃었다.
"이 일을 해보니 백화점보다 더 계절에 민감하더라. 예컨대 겨울 되기 전에 그 시대에 유행하는 난방기구를 확보해놓아야 한다. 그 예측이 맞으면 다행인데, 틀리면 재고도 쌓이고 적자도 쌓인다"며 씁쓸해하는 종은씨. 그는 10년이 넘어가니 그제야 좀 보이더란다. 한 분야에서 최소한 10년은 해야 조금 알 거란다.
모든 게 기계화된 농촌에서 그와 관련된 철물도 수없이 많아졌다. 덕분에 밥벌이도 했지만, 위험부담도 많아졌다. 계속 변화되는 새 제품을 확보해야한다. 때를 놓치거나 지나면 재고가 된다. 재고품이 늘어나면 파산은 당연하다.
"20년을 했는데 요즘 이 일이 재밌다. 이제야 이 일이 익숙하고 편해서 그렇다"는 종은씨. 자신이 아는 건 빙산의 일각이란다. 아직도 철물에 관해 배울 게 많다는 마음가짐이 재미있다고 말한 것일 터.
시골철물점 직원 3명이 모두 정규직 사원
옛날 아버지로부터 이어 받은 낡은 가게에 비가 샜다. 그 비로 인해 철물이 젖었다. 그 많은 철물을 바깥에 늘어놓고 말렸다. 그 때 그만두고 싶었단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2006년에 3층 건물을 지었다. 시골철물점으로선 획기적인 변화였다.
2013년, 현재 직원이 3명이다. 종은씨와 아내, 직원 3명이 하루 종일 바쁘다. 직원들은 모두 소위 정규직이다. 이젠 조그만 구멍가게의 차원을 넘어섰다.
직원들에겐 늘 "'먼빨제자'로 인사하자"고 주문한다. '먼저, 빨리, 제때, 자주 인사하자'는 거다. 친절은 우리의 재산이라며 강조한다. 인사만 잘해도 밥 먹고 살 거란다.
▲ 직원들과 함께이종은 씨는 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법이 없다. 상호 존중하는 것이 팀워크의 기본이란 걸 잘 안다. 의사소통, 상호공유, 고객친절 등의 분위기를 이어간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대원, 조정희, 정용석, 이종은 씨다. ⓒ 송상호
종은씨는 직원들에게 반말을 하는 법이 없다. 쉽게 대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팀워크의 기본이라는 걸 잘 안다. 퇴근 무렵 본 그들의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명의 직원이라도 '팀장, 주임'이라는 직함을 줌으로써 '직원 세워주기'도 놓치지 않는 듯했다.
한 물건을 놓고 심지어 5가지로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있다. 시골어르신들만의 언어로 물건을 찾기도 한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한다. 손님이 원하는 걸 대화해서 빨리 대령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선 직원끼리 서로 공유하는 건 기본이다.
이렇게 된 건 그에게 롤 모델이 있어서다. 증평, 광주, 곤지암 등 잘 된다는 철물점을 돌아본 결과였다. 이왕 할 거면 그 분야의 최고수들을 찾아 배우려했다. 지금도 직원들과 그런 곳을 견학하고 공부한다. 직원들과 비전을 공유한다.
그는 향후 10년 안에 '대기업의 철물점 진출'이 이루어질 거라고 본다. 대형마트들이 골목슈퍼를 잠식했 듯. 그 때를 대비해 틈새전략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시골장사가 아니라 글로벌 중소기업이라고 느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난 3일 안성 일죽면에 있는 시골철물점 H건재상에서 이종은 대표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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