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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불평말고 잘 배워둘 것인디"

'슬로시티' 담양 창평에서 쌀엿 만들고 있는 조진순씨

등록|2013.01.13 21:08 수정|2013.01.13 21:08

▲ '슬로시티' 담양 창평에서 요즘 쌀엿 만들기가 한창이다. 조진순 씨의 한옥에서 옥산댁(왼쪽)과 무월댁이 갱엿을 시기고 있다. ⓒ 이돈삼


"비가 올라고 하믄 찐득거려. 날 좋을 땐 꼬실꼬실 허고. 습기에 어찌나 민감한지. 여시가 따로 없어. 그래서 엿이여. 엿."

옥산댁 기복덕(78) 할머니의 말이다.

엿 만들기가 한창이다. 설날을 앞두고 대목을 맞았다. 엿은 아무 때나 만들지 않는다. 겨울 한 철에만 만든다. 오래 된 겨울철 주전부리다. 농가엔 농한기 소득을 가져다준다. 쏠쏠하다.

▲ 쌀엿 만들기가 한창인 담양 조진순 씨의 한옥 풍경. 조씨는 이 집에서 전통 방식으로 쌀엿을 만들고 된장도 담그고 있다. ⓒ 이돈삼


▲ 제월댁(왼쪽)이 엿가락을 만들고 사동댁은 엿가락을 치고 있다. ⓒ 이돈삼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는 전남 담양 창평. 오강리 양산마을 조진순(58) 씨의 한옥에서 엿을 만들고 있다. 옛 방식 그대로 하는 엿 만들기는 다섯 명이 한 조를 이룬다.

옥산댁 기씨 할머니와 무월댁 송정순(78) 할머니가 엿을 시기고 있다. 한 덩어리의 갱엿을 둘이서 잡고 밀고 당겨 늘이는 일을 '시긴다'고 한다. 엿 만들기가 절정을 이루는 단계다. 엿 속의 구멍도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엿을 시기는 솜씨가 '달인'급이다. 두 할머니는 10대 후반부터 엿 만들기를 해왔다고 했다. 경력이 60여 년 된다. 옥산댁은 손이 큰 편이다. 갱엿 큰 뭉텅이도 거뜬히 시긴다. 반면 무월댁은 적당한 뭉텅이를 반긴다.

끈적끈적한 갱엿 한 뭉텅이를 시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두 할머니는 가볍게 밀고 당긴다. 힘들어 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표정의 변화도 없다.

▲ 옥산댁 기복덕 할머니가 엿을 시기고 있다. 힘든 일인데도 표정의 변화가 없다. ⓒ 이돈삼


▲ 시긴 엿가락을 옥산댁이 가위로 자르고 있다. 일어서서 엿가락을 잡고 있는 이가 주인장 조진순 씨다. ⓒ 이돈삼


"힘들지 않으신지" 물었다.

"두 시간 정도는 갠찮아. 쉬지 않고 해도. 운동이지. 근디 두 시간을 넘기믄 힘들어. 그때부터는 일(노동)이여. 힘들어. 그렁께 오랫동안 못혀. 하루 죙일 할 수 없는 일이 이거여."

옥산댁의 말이다. 무월댁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까지 표정의 변화가 없던 할머니들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비친다.

▲ 시기고 가락을 만든 엿을 사동댁이 가락을 치고 있다. 먹기 편하도록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것이다. ⓒ 이돈삼


▲ 시기고 쳐서 만들어진 창평쌀엿. 옛 방식 그대로 만든 것이어서 입에도 달라붙지 않는다. ⓒ 이돈삼


이렇게 시긴 것을 가락으로 만드는 건은 제월댁 이정순(67) 할머니가 맡는다. 두툼하게 시긴 엿을 보기 좋게 늘이고 가늘게 다듬는 것이다.

가락을 치는 건 사동댁 박남순(78) 할머니의 몫이다. 엿가락을 적당한 크기로 끊는 일이다. 대충대충 치는 것 같은데도 크기가 일정하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 주인장 조진순 씨가 한 뭉텅이씩 감싸놓은 갱엿을 풀고 있다. 조 씨는 쌀엿을 만드는데 있어 보조이자 총감독이다. ⓒ 이돈삼


▲ 조진순 씨가 시기고 친 쌀엿을 펴서 말리고 있다. 조 씨는 어릴 적 할머니한테 배운 쌀엿 제조기술을 지금까지 써먹고 있다고 했다. ⓒ 이돈삼


사전 준비는 주인 조진순씨가 해놓는다. 밤새 가마솥에서 식혜를 고아 갱엿으로 만든다. 이 갱엿을 적당한 뭉치로 덜어 비닐에 감싸서 아랫목 이불에 넣어두는 것도 주인장의 일이다.

엿을 만드는 날엔 갱엿 뭉텅이를 아랫목에서 꺼내 엿을 시기는 두 할머니한테 내준다. 시긴 엿을 가락으로 만드는 제월댁한테 옮겨주는 것도 그녀의 역할이다. 끊은 엿을 이리저리 널어 말리는 것도 해야 한다. 온갖 일을 다 한다.

"난 보조여."

조씨의 말이다. 그렇다고 단순한 보조에 머물지 않는다. 엿 만드는 일을 총괄한다. 보조 겸 총감독인 셈이다.

▲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어진 창평쌀엿. 구멍이 송-송- 뚫린 쌀엿은 겨울철 훌륭한 주전부리 가운데 하나다. ⓒ 이돈삼


▲ 오후 내내 조진순 씨의 한옥에서 쌀엿을 만든 할머니들이 모여앉아 새참을 즐기고 있다. 새참으로 통닭과 감귤이 올라와 있다. ⓒ 이돈삼


이렇게 만든 쌀엿은 ㎏당 1만5000원에 팔린다. 판매처는 따로 없다. 홈페이지를 통해 직거래로 다 나간다. 조씨 집에서는 하루 80근의 엿을 만든다. 1근이 600g인 점을 감안하면 48㎏을 만드는 것이다. 쌀은 80㎏이 들어간다.

작년 겨울엔 이 집에서 쌀과 조청을 만드는데 쌀 40㎏들이 200포대를 썼다. 이번 겨울에도 그 정도를 쓸 것으로 보고 있다.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배왔어라. 엿을 맹글고 된장 담그는 것을 맞아 감서 배웠는디. 그때는 원망을 많이 했지라. 근디 지금까지 이렇게 써먹을 줄 누가 알았겄소. 이럴 줄 알았으믄 그때 불평 않고 잘 배워둘 것인디."

쑥스럽게 웃는 조씨에게서 농촌 아낙네의 순박함이 묻어난다.

▲ 조진순씨의 한옥과 장독대 풍경. 조씨는 '슬로시티' 담양 창평에서 전통 방식 그대로 쌀엿을 만들고 된장을 담그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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