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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땅 아프리카, 자립형 농업으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

가난한 시골마을을 통해 바라본 빈곤의 덫

등록|2013.01.17 14:00 수정|2013.01.17 14:00

▲ 11월 우기에 내리는 비를 기다리며 갈아놓은 밭. ⓒ 열매나눔


아프리카는 왜 가난한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여기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얽혀있고 이를 규명 또는 해결하고자 많은 경제학자들이 연구해왔다. 정치적, 역사적, 환경적, 민족적 요인까지 깊게 얽힌 빈곤의 굴레는 탄식을 절로 자아낸다. 근본적인 원인을 보자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은 국제원조. 우리는 이를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국제구호개발 단체들도 자각하고 있으며 발전적인 대안을 찾고자 '지역개발' 또는 '국제개발' 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는 국제기구나 논문이 아니라 아프리카 말라위의 작은 마을에 있다. 말라위는 자원이 많지 않아 1차산업에 머물고 있는 가난한 농업국가다. 그 중 구물리라지역은 전형적인 '가난한 시골마을'로 대륙적 빈곤의 악순환을 대변할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구물리라 지역에는 13개의 작은 마을에 총 1386가정, 6650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정보도 이곳에서 활동하는 국제자립개발 NGO 열매나눔(대표이사 김동호)에 의해 매우 최근에야 조사된 것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시골마을들은 주소도 없고, 주민등록도 되어있지 않다. 이들이 빈곤의 덫에서 벗어나 자립하려면 지역경제가 튼튼해져 경제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는 현재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주요산업인 농업이 먼저 바로 서야 한다는 말과 같다. 

구물리라 지역 농업의 현황과 문제점

▲ 하트 심볼을 닮은 말라위 구물리라 MVP 지도 ⓒ 열매나눔


▲ 구물리라 지역을 지나는 강이 있다는 말에 찾아간 리소카 강. 시내라 불러도 부족한 물길을 이곳에선 강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열매나눔이 관개 전문가 한경대학교 이남호 교수를 초청하여 유량을 측정하고 있다. ⓒ 열매나눔


구물리라의 모든 가정은 농사를 짓는다. 주요 농작물은 옥수수. 그 밖에 땅콩, 콩, 담배 등이 재배되기도 한다. 말라위는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이다. 그리고 기온 보다는 강우량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크게 건기와 우기로 나누고 있다. 우기는 11월, 건기는 5월에 시작된다.

이런 환경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11월이 시작되기 전부터 밭을 갈아놓고 파종할 준비를 한다. 일년에 한때 내리는 비를 기다리는 것. 비가 내리면 흙먼지만 날리던 마을에도 조금씩 파릇파릇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많은 구호단체들의 홍보영상 속엔 쩍쩍 갈라진 메마른 아프리카의 땅과 그 땅만큼 깡마른 사람들이 등장한다. 물이 없고 약이 없어서 이 사람들이 죽어 간다고 그리고 있지만 그 이면엔 환경뿐만 아니라 정보 불균형, 자본과 인프라 부족 등 뿌리깊은 원인이 존재한다.

환경에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 것이 농업인 만큼 연중 비가 고루 내리지 않고 우기에만 집중적으로 내린다는 것이 일단 문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 지구적 기상이변과 함께 아프리카의 건기와 우기 격차도 점점 극명해지고 있다. 우기에는 폭우가 내려 없는 재산마저 쓸어가고 건기에는 쉽게 불이 날 정도로 모든 것이 말라버린다. 또한 우기가 늦게 시작되거나 건기가 일찍 시작되는 등 농부가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이 점점 자주 발생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업용수를 관리할 수 있는 관개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아 농사는 1년에 한 번만 가능하다.

열매나눔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서 관개수로 전문가를 초청하여 저수시설 설치 가능성을 분석해 보았으나 기본 유량이 너무 적어 불가능하다는 결과만 얻었다. 놀라운 것은 주민들은 이곳을 강이라 부르고 있다는 것. 그만큼 흐르는 물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수익성 낮은 식용작물 위주의 재배

▲ 손으로 텃밭에 이랑을 내고 있는 아프리카 주민들. 열매나눔은 농기구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농기구 뱅크 시스템을 준비중이다. ⓒ 열매나눔


▲ 아이들이 먹는 것이 바로 시마. 옥수수가루를 쪄서 만든 것으로 말라위 농촌지역의 주식이다. 손으로 뭉쳐 주물러 먹으면 쫄깃해진다. ⓒ 열매나눔


옥수수는 척박한 땅에서도 참 잘 자라는 작물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에서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을 만하다. 이런 이유로 옥수수는 많은 사람이 심고 있으며 부가가치가 낮다. 말라위에서는 화폐단위로 콰차(Kwacha)를 사용하는데, 옥수수의 평균 시세는 40콰차 정도. 이 정도라도 받으면 나은 편이고 수확기(5월)가 되면 공급이 대폭 증가하니 시세는 20콰차까지 뚝 떨어진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은 왜 담배나 콩처럼 더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을 심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라고 열매나눔의 이명상 농업사업 담당 매니저는 말한다. 옥수수를 심으면 설령 수확물을 팔지 못할 경우에도 남은 것을 가족의 식량으로 삼을 수 있다. 당장 오늘 굶지는 않을테니 그나마 안심이다.

한국 사람 밥심으로 산다고 하듯 이곳 주민들에게는 옥수수가 삶 그 자체다. 헐값에 팔아야 하긴 하지만 늘 차를 몰고와서 옥수수를 사가는 중간 유통업자들이 있으니 팔기도 쉽다. 반면 콩과 담배는 재배하기가 까다로워 한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수확기만 기다리며 보릿고개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 가족들은 말 그대로 굶어 죽게 될 거라는 두려움. 이 두려움이 옥수수를 계속해서 재배하게 하는 것이다.

정보 부족과 낮은 시장 접근성

이 두려움은 '내가 맞서고 있는 것의 실체를 모른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곳 주민들은 생계와 연결된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얻지 못하고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에 컴퓨터며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마을 사람들은 농산물 유통과 관련된 그 어떤 정보도 없이 농사를 짓고 있다. 옥수수의 시세가 얼마인지, 누구에게 팔면 더 많이 받을 수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콩이나 담배는 얼마나 더 비싸게 팔 수 있는지, 콩 재배에 성공한 사람은 어떻게 했는지 알면 좋겠는데, 그런 정보를 얻으려면 멀리 떨어진 도시의 장터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거기까지 갈 교통편이 없다. 말라위는 현재 수도에도 대중교통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우마차를 빌릴 수는 있으나 너무 비싸 엄두도 못 낸다. 도시까지 힘들게 나가 더 비싸게 쳐준다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한들, 무거운 옥수수를 옮길 운송비가 없다. 문제는 이렇게 산 넘어 산이다.

눈에 보이는 문제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알 수 있었다는 농기구 부족. 농기구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을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는 괭이 하나뿐. 농사를 짓는데 필수적인 삽, 호미, 낫 등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농업활동은 비효율적이고 그 활동의 한계를 쉽게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의존형 농업, 가난의 악순환

▲ 아프리카 농촌지역의 의존형 농업으로 인한 빈곤의 악순환 사이클 ⓒ 열매나눔


이 모든 문제를 하나로 묶어 완성시키는 문제가 있다. 바로 외부로부터 오는 구제에의 의존이다.

사람들이 계속 굶어 죽으니 이 어찌 큰일이 아니겠는가?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급히 화학비료와 파종할 옥수수 씨를 마을에 나눠준다. 화학비료를 뿌린 옥수수는 쑥쑥 자라 그 해 풍년이 들고 마을 사람들은 보릿고개를 넘긴다. 다음 파종기가 시작 될 무렵, 올해는 누가 와서 화학비료와 종자 안주나 싶어진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돈으로 적은 양의 씨를 사서 뿌린다. 당연히 수확량이 반절로 줄어들고 보릿고개를 넘길 힘이 없는 아이들이 제일 먼저 영양실조로 쓰러진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또 다른 사람들이 마을에 몇 년 동안 화학비료를 지원한다. 그러나 그 몇 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리고 또 다시 농업과 생명을 의존할 누군가를 기다려야만 한다. 스스로 농업을 통해 자립할 힘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이런 가난한 마을들은 여전히 금융과 정보로부터 소외된 채 빈곤의 덫에 빠져 있다. 그러나 지난 세기와는 다르게 이런 작은 마을에서도 수도나 다른 나라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발전된 문물을 경험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이미 전통적인 생활방식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아프리카 대륙을 구할 희망이 일어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우림씨는 열매나눔 기획홍보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열매나눔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자립형 농업을 실현하기 위한 이 지역 주민들과 열매나눔의 전략 및 실행현황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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