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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농성장에 염탐꾼이? "치사하지 않나요?"

농성 현장 훔쳐보던 낯선 남성, 어디론가 무전 때리자...

등록|2013.01.15 10:24 수정|2013.01.15 11:36
현대자동차에 10여 년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이유도 없이 정리해고 당한 이유는 비정규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 그리 냉정하던지요. 사측은 서둘러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정규직 노조는 이를 외면했습니다. 저는 2000년 7월 초부터 수동변속기를 만드는 공정에서 코피나게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에는 필요없어진 기계처럼 폐기 처분 되듯 잘려나갔습니다. 제가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004년부터 불법파견 논쟁이 시작됐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제가 정리해고 된 2010년 3월께, 현대차에서 불법파견 논쟁이 시작된지 6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너무 억울한 심정이었으나 누구에게도 하소연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2004년 현대차에서 불법파견 논쟁이 시작되면서 비정규직 노조가 생겼습니다. 불법파견 철폐투쟁의 불길은 활활 타올랐습니다. 정규직 노조도 합세하고 민주노총도 합세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3000여 명까지 늘어났습니다. 저도 함께 했습니다. 오로지 '정규직 전환', 그것만이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불안정한 고용·간접고용·비정규직이라는 딱지를 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겼습니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차별받고 차이 나던 급여가 정규직과 동일해지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수동변속기에는 저 홀로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했지만, 피곤할 줄 모르고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던가요. 현장 분위기가 급랭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희망이 다시 절망으로 변해버리는 일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2005년께 검찰에서 '현대차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입니다. 한여름에 잘자라던 나뭇잎이 갑자기 우수수 떨어지듯 노조 탈퇴서가 연일 수백장씩 날아들었습니다. 제게도 업자와 현대차는 지속적으로 압박을 가해왔습니다. 한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 노조 탈퇴를 하지않고 버티는 게 참으로 힘겨운 일임을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버젓이 정규직 노조가 강성 민주 노조라 불리는 데도 비정규직 노조활동을 지원하기에는 한계가 따르는 듯했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노동 운동의 현주소라는 것을 느낌으로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원청과 하청업자의 압박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순순히 정리해고를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혼자였기에 노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2010년 7월 22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이었고, 1공장 다니다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해고됐던 최병승씨가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좋은 기분은 고사하고 서운했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일찍 내가 현대차 다닐 때 판결이 났더라면, 내가 정리해고 당하기 전에 대법판결이 났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상당히 컸습니다.

다행히 변호사와 집단 상담하는 시간을 비정규직 노조에서 갖는다기에 가서 물어봤습니다. 변호사가 "부당해고로 인정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다시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기를 쓰고 철탑농성장에 달려갑니다. 오늘(15일)로 최병승·천의봉 두 노동자가 울산공장 명촌문 쪽에 있는 철탑에 올라간 지 91일입니다. 새해가 되자 현대차 울산공장은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범운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15일 일을 마치고 오후 6시께 찾아간 철탑 주변은 많이 적막해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2012년 2월 23일 대법판결.서울 대법원에서 최종판결이 난다고 해서 많은 조합원이 참석 했습니다. 왼쪽은 전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 이상수 씨, 오른쪽은 지금 철탑위에 올라가 농성중인 천의봉 사무국장. ⓒ 변창기


철탑농성장에는 집에도 못가고 철탑을 지키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습니다. 대부분 지난해 2월 23일 대법원 판결 이후 "대법 판결 이행하라"며 투쟁을 벌이던 이들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최병승씨의 대법 판결 승소에 기대와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나이로 보면 20년이나 젊은 그들은 아직 혈기가 왕성합니다. 그런 '뜨거운' 노동자들이 "이번에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말겠다"는 각오로 버티고 있습니다.

가끔 전국 단위나 지역단위 집회가 있는 날이면 진보정당이나 여성단체에서 떡국이나 국밥으로 저녁을 해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일에는 농성자들끼리 저녁식사를 해먹어야 합니다. 지난 14일, 어둠 속에서 농성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은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농성자 중에는 미혼자도 있고 기혼자도 있었습니다. 기혼자들은 집을 오가며 이따금 반찬도 챙겨옵니다. 미혼 농성자를 위해서 말입니다. 공장별로 순번을 정해 철탑농성장을 지키기도 하고, 열성 조합원은 스스로 천막에서 자며 현장을 지키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가정이 있는 여성 노동자도 있어 가끔 집에서 먹거리를 싸들고 와 철탑 농성자에게 주기도 합니다.

저는 저녁에만 잠시 들르기 때문에 현장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먹지 않습니다. 미안해서지요. 저는 집에 가서 먹으면 되거든요. 저는 그곳에서 한 시간 넘게 있다가 찬거리 준비가 다 돼 갈 무렵 슬그머니 옆으로 빠져 집으로 향합니다. 민폐가 될 것 같아 간다는 말도 없이 그냥 나오는 겁니다.

어두워진 농성장에 낯선 남성 하나

철탑농성 4일차.그날 집회를 내려다 보고 있는 최병승(아래), 천의봉(위) 씨. ⓒ 변창기


저는 철탑농성장에 있다가 집에 갈 때, 현수막으로 자연스럽게 가림막이 돼 있는 바깥 길로 나갑니다. 현대차 사측에서 보낸 감시자가 자주 출몰하기에 상황을 보려고 일부러 그렇게 갑니다. 철탑농성장이 있는 곳은 현대차에서 만든 대규모 주차장 안입니다. 그 주차장을 200여 미터 정도 직진해야 오른쪽으로 방향을 트는 곳이 나옵니다. 방향을 틀어 다시 300여 미터는 가야 버스를 탈 수 있는 큰길이 나옵니다.

한 100여 미터 갔을까요? 정체불명의 시커먼 겨울 점퍼를 입은 중년 남성이 어두운 길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 같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 같기도 했지만, 어두워서 잘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근데 이상했습니다. 노동자라면 철탑농성장 옆 현수막이 쳐진 안으로 걸어 철탑 쪽으로 갔을텐데 그는 현수막 바깥 길을 계속 걸어갔습니다.

저는 잠시 걷다가 나무로 된 울타리 뒤에 숨어 그를 지켜봤습니다. 그는 현수막 뒷길로 철탑 가까이 가더니 노동자들이 농성장을 지키며 모여 있는 곳을 기웃거렸습니다. 다시 10여 미터 철탑 쪽으로 걷다가 다시 그곳을 허리 굽혀 봤습니다. 현수막은 위 아래로 돼 있어 약간 위로 올리기만 하면 철탑 쪽 농성장이 잘 보입니다. 그는 농성장 쪽을 한참 동안 지켜보더니 제가 있는 쪽으로 왔습니다. 저는 다시 길을 가는 척 하면서 차량 뒤에 숨어 그를 지켜봤습니다.

"농성자들이 뭐 했더라 보고하겠죠... 치사하지 않나요?"

염탐꾼들...그들은 현수막 밖 주차장에서 현수막 속 비정규직 노동자를 염탐하고 있었습니다. ⓒ 변창기


그는 명촌 쪽문이 있는 주차장에 다다르자 어디론가 무전을 보냈습니다. 잠시 후 승합차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승합차에서 내린 누군가에게 조금 전 본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저번에도, 또 저번에도 저는 몇차례 집에 갈 때마다 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 사실을 노조간부에게 알렸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놔두세요. 매일 그래요. 현대차 노무팀에서 시켰죠, 뭐. 다 회사 쪽 경비들이거나 용역들입니다. 몇차례 잡아서 주의를 줘도 소용 없고요. 지난해에는 감시 사찰 문서를 입수해 기자회견으로 폭로까지 했잖아요. 지금도 그러겠죠, 뭐. 오늘은 몇시 몇분에 몇사람이 모여서 뭐도 먹고 뭐도 먹고 있더라... 뭐 이런 걸 다 보고하겠지요. 정말 치사하지 않나요?"

비정규직 노동자는 하도 당해서 이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투였습니다. 14일 그들을 본 시각을 확인하니 오후 7시 34분이었습니다. 현대차는 2012년 2월 23일 불법파견에 대한 최종 판결을 대법원으로부터 받았습니다. 2010년 7월 22일부터 치자면 대법원에서 현대차를 불법파견으로 인정한 지 2년 6개월이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올해 현대차는 노무총괄 김억조 보회장을 통해 1월 9일, 한 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최병승씨에게는 신규 채용으로 인사발령 냈다면서도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인사발령 내용도 보면 '배치 대기'로 돼 있어 정규직 채용에 대해 의구심을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그래도, 다시 희망입니다

지난해 7월 22일.전국에서 모인 노동자와 1박 희망난장 ⓒ 변창기


그에 앞서 2012년 12월 13일, 법학자 35명이 모여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불법파견 혐의로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저도 철탑농성장에서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간부가 보여줘 기자회견문도 볼 수 있었습니다. 참 정의로운 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파견법이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에서의 근로자파견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도 현대차는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된 근로자들을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파견근로자로 사용해 파견법 제5조 제5항 및 제7조 제3항을 위반하고 있다"고 고발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오죽했으면 법학자들까지 나섰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시작한 지 12년이 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미 지난 2000년 7월 초,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 들어가 일한 경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한 기간만 따져도 10여 년이고, 정리해고 당한 지는 3년이 다 돼갑니다. 노동부에서 불법파견 판정한 게 2004년이지만, 그때부터 계산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현대차는 1998년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2000년 6월께 정갑득 당시 현자노조 위원장과 현대차가 체결한 16.9% 합의 전부터 불법파견은 시작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고립돼 있습니다. 지난 1월 3일, 울산지방법원은 철탑농성을 중단하라는 고시문을 두 개나 세웠고, 8일에는 강제 철거를 시도했습니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는 지난해 말 '불법파견 특별교섭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91일 철탑농성이 이어지고 있는 현장에는 젊은 혈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눈치였습니다. 그들은 '쫄기는'커녕 오히려 고립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올해부터 나이가 오십줄에 들어섰습니다. 나이가 든 탓인지 농성장이 고립되는 것을 느끼면 기분이 가라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4일 농성장에서 본 젊은 노동자들의 활기찬 모습은 제 마음속 희망의 불꽃을 다시 타오르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현대차는 불법파견, 대법판결 이행하라!"전국,전세계 노동자 단결과 연대투쟁이 철탑농성장에겐 희망입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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