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개성식 손만두 맛, '슴슴' 하네요

실향민의 손맛이 배어있는 개성만두와 칼국수

등록|2013.01.18 18:13 수정|2013.01.18 18:13

▲ 담백한고 깔끔한 맛의 개성 만둣국. ⓒ 나영준


경기도 파주시는 북한과 맞닿아 있는 '접경도시'다. 판문점과 임진각, 통일전망대 등을 떠올리면 멀게만 느껴질지 몰라도, 실상 서울에서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지척거리다. 

당연히 파주 전역에는 실향민과 그 2~3세들도 많다. 인간은 자신이 먹던 것에 대한 기억이 고집스럽기 마련. 그 자녀들 또한 부모의 입맛을 따라간다. 자연스레 파주 곳곳엔 간이 세지 않은 북한식 손맛이 숨결처럼 스며있다.

아쉬운 점은 파주 역시 현대화와 도시화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 한다는 것. 기업형 슈퍼마켓이 동네 점방을 밀어내고, 손맛 담긴 음식을 내놓던 음식점 자리엔 각종 프랜차이즈 업소들이 발을 들인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어딘가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입 안을 톡톡 쏘기 보단, 무언가 진득한 맛이 그리워지는 추운 계절이다. 한 잔 술로 한기를 녹이러 찾은 작은 가게에서 막연히 생각하던 그런 맛을 찾았다.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개성식 만두와 얼큰 칼국수다.

'그 맛이 그 맛'인 만두와는 차별화 된 개성식 만두

▲ 흔한 만두들과는 다른 개성만두. 심심한 듯 하지만, 뒤 맛이 개운하다. ⓒ 나영준


요즘 만들어지는 음식 중 만두만큼 몰개성화 된 것이 또 있을까. 여러 식품회사가 만들어내는 맛은 희한하게도 비슷하고, 또 그것을 받아쓰는 식당들의 맛도 대개가 표준화됐다. 간혹 질 좋은 것이라 해도 고기의 비중이 다소 높을 뿐. 기본적인 맛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파주시 금촌로터리 부근, '통 큰 포차'라고 쓰여 있어 영락없이 흔한 실내포장마차인 줄 알고 들어섰는데, 차림표 가장 위를 차지한 것은 '개성 손 만둣국'이다. 공장표 만두라면 진저리를 치는 일행 중 한사람이 "정말 개성식이냐"고 묻자, "개성이 고향인 어머님께 배운 그대로"라는 답이 돌아온다.

잠시 후 등장한 만둣국. 국물은 개운하다. 흔히 느끼는 '고향의 맛(?)'이 첨가되진 않았다. 해물육수를 썼다고 한다. 만두는 김치만두. 평양식처럼 크지는 않지만, 한 입에 넣을 정도는 아니다. 반으로 가른 후 간장을 쳐서 먹으라고 일러준다.

처음 든 맛은, 뭐랄까…. 북한식으로 표현하자면 '슴슴'하다. 한 종편채널 먹거리 음식 프로그램의 '제가 평소 먹어왔던 맛은 아닌데요'라는 멘트가 생각난다. 아무튼 자연에 가까운 향이 풍겨온다. 옆에 있던 부모님이 북한 출신인 지인은 '바로 이 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내가  개성식으로 만두한다는 곳은 이곳저곳 다 다녀봤는데, 제대로 된 가게가 없더라고. 그런데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사실 일반인들이 북한 맛이 어떤지도 모르니까 대충 만들어도 그만이거든."

개성식 만두는 오로지 김치만두라고 하는 주인에게 재료를 묻자, 다 일러줄 순 없고 김치와 숙주, 물기를 짜 낸 두부는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고 전한다.

깔끔, 담백, 개운의 삼박자는 개성 음식의 필수요소

▲ 개성칼국수 역시 매콤하지만 개운하다. 곁들이는 김치도 시원하다. ⓒ 나영준


그 사이 다소 싱거웠던 것 같은 만두가 슬며시 끌린다. 두 개가 세 개가 되어가고, 안주를 청하려던 계획을 바꿔 개성칼국수를 청한다. 직접 반죽하고 밀어낸 손칼국수라고 한다. 맑은 맛도 있지만, 술자리니 얼큰함을 택해본다. 1인분 주문도 흔쾌히 받아준다. 만둣국과 칼국수의 가격은 각각 6천 원, 이 정도면 합리적이다.

칼칼하고 시원하다. 면발의 질감도 좋다. 하지만 짜지는 않다. 문득 신장이 안 좋아 위험한 고비까지 갔던 친구가 "매운 것은 괜찮지만, 짠 음식이야말로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경고하던 것이 떠오른다.

아래지방으로 갈수록 다소 짭짤하고, 경기도 위쪽일수록 싱거워지는 것은 지리학이나 음식연구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은 이라도 아는 사실. 염도 높은 음식을 멀리하는 게 좋은 현태풍토와도 어울린다.

만두도 칼국수도 마음에 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빈대떡. 바삭하게 구워진 짙은 색의 전을 기대했는데, 얼핏 보기엔 덜 익힌 듯 노르스름한 빛깔이다. 의아하게 바라봤지만, 한 입 가져가자 신선함이 밀려든다. 숙주가 아삭하고 씻어낸 김치는 단내가 풍긴다. 씹는 맛이 좋아 물으니 찹쌀가루를 넣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기름범벅으로 튀겨지듯 구워 낸 빈대떡과는 완전히 다르다. 주인장은 결국 몸속으로 들어갈 음식인데, 기름을 과하게 쓸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다. 또 일부 업소는 먹음직스런 빛을 내기 위해 색소를 쓰기도 한다고.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만, 북한 쪽 음식에 맛들인 이들은 기름지거나 젓갈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안 좋아해요. 개성식 음식이요? 깔끔하고 담백하고 개운한 게 특징이죠."

착한 음식 열풍시대, 담백한 북녘음식은 어떨까

▲ 인상적이던 빈대떡. 기름이 많이 들지않아 매우 깔끔하고 신선하다. ⓒ 나영준


돌아서는 길. 입 안에 느끼함이 돌거나 거북한 트림이 올라오지 않는다. 주방을 들여다 본 것은 아니지만, 가게 안에 써 붙인 '재료나 음식에 색소나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듯하다.

한 프로그램의 영향 탓에 착한 음식, 착한 식당이 대세가 되는 시대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입맛이 착한 재료로 신선하게 만든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강하고 자극적이고 MSG로 대변되는 감칠맛에 지배받고 있는 것.

혹 매일 반복되는 자극적인 맛이 지겨워진다면, 가끔은 자연에 가깝게 만들어낸 전통의 북녘음식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지척에 있는 곳이지만, 평생을 가보지 못한 실향민들의 사무친 그리움이 혀끝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