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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계곡... 정말 살아있네~

[자동차로 돌아보는 미국 7] 무더운 날씨를 견딘 여행

등록|2013.01.20 21:22 수정|2013.01.21 10:19

▲ 죽음의 계곡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풍경 ⓒ 이강진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 South Rim)을 하루만 보고 떠나기가 아까워 텐트장에 가서 빈 자리를 알아보았으나 예상대로 자리가 없다. 이 넓은 들판에 텐트 하나 칠 곳이 없다니. 잘 곳을 찾아야 한다. 오늘밤 묵을 곳으로 이곳에서 가까운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Las Vegas)를 향해 길을 떠난다.

또다시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린다. 점심 먹을 시간이다. 고속도로 변에 표시된 맥도널드 광고를 따라가니 관광버스가 주차해 있는 맥도널드 식당이 나온다. 식당에 들어서니 중국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단체로 그랜드 캐니언을 관광하러 온 중국 사람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수선하고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라 그런지 중국어가 유난히 시끄럽다. 직원들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손님의 시중들기에 바쁘다. 중국 관광객들은 음료수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것을 악용해(?) 가지고 있는 병에 음료수를 채우기에 바쁘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햄버거 하나 받아들고 자리에 앉는다. 관광객이 떠나간 자리가 어수선하다. 직원들은 지쳤는지 치울 생각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른다. 중국인처럼 보이는 동양인 직원도 고개를 흔든다.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 경제 대국과 선진국은 같은 뜻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라스베이거스에 들어선다. 사막의 열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다. 여행객이 저렴한 가격에 쉴 수 있는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도시 한복판의 밤거리를 거닌다. 라스베이거스는 미국에서 밤에도 유일하게 거닐 수 있는 도시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도박의 도시답게 영화에서만 보던 대형 리무진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호화스러운 호텔도 많다. 도시 한복판에는 파리를 비롯해 유명한 도시를 복사해 만들어 놓고 관광객을 유인한다. 거리에서는 대형 분수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소비의 도시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골프장과 카지노를 가라고 했던가? 카지노의 도시 이곳에도 한국 사람을 위한 커다란 식당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에 해장국 등의 한글 메뉴를 적어놓고 손님을 부른다. 카지노와 해장국,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어색한 느낌이 든다.

화려한 도시에서 오랜만에 텐트가 아닌 호텔에서 샤워하고 길을 떠난다. 오늘 가는 목적지는 이름도 끔찍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다. 복잡한 도시 한복판을 벗어나니 새로 지은 집들이 즐비하다. 미국 부동산 시장이 붕괴한 후 '하우스 푸어'가 많이 생겨난 곳이 라스베이거스라는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난다. 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농사지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황량한 들판을 끝없이 운전한다. 계곡을 따라 계속 내려가니 자그마한 오두막에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라는 사인이 나온다. 미국에서 가장 덥다는 '죽음의 계곡 (Death Valley)'에 도착한 곳이다. 너무 더워서인지 돈을 받는 사람도 없다. 비치된 봉투에 돈을 넣어 함에 넣으면 된다.

전망대가 있는 곳에 차를 주차하고 관광객과 함께 언덕에 오른다. 죽음의 계곡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풀 한포기 없는 계곡의 연속이다. '죽음의 계곡'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조금 더 운전하니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멋진 호텔이 있다. 호텔을 지나 더 내려가니 관광객을 위한 가게와 숙소가 보인다. 차를 주차하고 밖으로 나오니 열풍과 따가운 햇볕이 온몸을 휘감는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걷는 동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적을 정도다. 용광로에 들어간 느낌이다. 이곳 이름도 '용광로 농장(Furnace Creek Ranch)'이라고 적어 놓았다.

▲ 너무 더운 곳이라 지명도 용광로 농장이라고 되어 있다 ⓒ 이강진


더워서 걸을 생각은 못하고 몇백 미터 되는 거리를 자동차로 천천히 둘러본다. 놀랍게도 골프장이 있다. 나도 골프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더운 곳에서 골프 칠 생각이 날까? 이 더위에 골프를 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호텔로 쓰는 자그마한 집이 줄을 서 있다. 모든 도로에 이름 짓기를 좋아하는 서양 사람답게 숙소를 지나가는 자그마한 길에도 '단테의 거리 (Dante's Drive)'라는 도로명이 적힌 팻말이 있다. 단테의 작품에 나오는 지옥을 생각하며 지었음이 분명하다.

한 청년이 숙소 앞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무엇이 이 청년을 이곳에 데리고 와 책을 읽게 하는 것일까? 단테의 신곡, 지옥편을 읽고 있다면 실감 나게 읽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찾아 들어선다. 현대식으로 멋있게 지은 건물이다. 무료로 인터넷도 제공된다. 단체로 온 일본 청년 10여 명이 이곳저곳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다. 기념품 가게가 있고, 영화관에서는 '죽음의 계곡'에 대한 소개를 영화로 보여주고 있다.

관광안내소에서 영화를 보면서 땀을 식힌 후 자동차로 근처에 갈 만한 곳을 알아본다. 이곳에 있는 지명이 독특하다. 지옥문 (Hell's gate), 악마의 골프장 (Devil's Golf Course), 불쾌한 물(Bad Water), 단테의 전망대(Dante's View) 등 흔히 관광지에서 사용하는 아름다운 지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고상한 이름이 있다면 예술가의 거리(Artist's Drive)라는 지명일 것이다.

관광안내소에서 가까운 '불쾌한 물'이라는 곳을 찾아 나선다. 도로 오른쪽으로는 더위에 찌들어 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 호수가 있고, 왼쪽으로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의 연속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해수면보다 85.5미터 낮은 곳이라고 적은 팻말이다. '해발'이라는 단어는 알지만, 해수면보다 낮은 곳은 어떻게 표현하나? 수심 85.5미터라고 해야 하나? 물은 보이지 않는데.

땅에는 소금 덩어리가 나름대로 패턴을 보이며 관광객을 맞는다. 많은 사람이 호수를 보려고 먼 길을 걷는다. 우리도 걸어 본다. 20미터나 걸었을까? 땀이 비 오듯 한다. 너무 더워 걸을 수가 없다. 중간에 포기하고 따가운 햇볕을 등에 지고 고행(?)하는 관광객을 카메라에 담는다. 서양 관광객은 정말 대단하다.

▲ 소금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펼쳐 있다 ⓒ 이강진


▲ 호수를 보려고 먼길을 걷는 관광객 ⓒ 이강진


돌아오는 길에 '예술가의 거리'라는 팻말을 보고 들어선다. 계곡 사이로 사진에서 본 듯한 사막에서만 볼 수 있는 들풀이 초록색 하나 없이 생기를 잃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화산재가 날아와 계곡을 덮었는지 산들도 생기가 없는 회색빛을 띠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몇 대가 서 있는 곳에 가보니 자그마한 동산 몇 개가 청록색과 황색 빛을 띠고 있다. 파스텔로 칠한 것 같다. '예술가의 거리'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를 알 것 같다.

다음 목적지로 길을 떠나는 도로 옆에 건물이 있다. 광산이 있던 곳이다. 미국에서 가장 덥다는,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죽음의 계곡'까지 내려와 지하자원을 캐어내 돈을 벌던 곳이다. 이것을 보고 미국 사람의 위대한 개척 정신이라고 칭송해야 할지, 아니면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라고 비하해야 할지 모르겠다.

'죽음의 계곡'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린다. 몇 시간을 운전하니 멀리 푸른 들판과 숲이 우거진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살아 있는 것과 함께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아프리카에서 삶을 선사하며 지냈던 슈바이처를 생각해 본다.

▲ 해면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서 그런지 미국에서 가장 더운 곳이라 한다. ⓒ 이강진


▲ 광산이 있던 곳을 관광지로 보존하고 있다. ⓒ 이강진


덧붙이는 글 지난 8월, 9월 초에 여행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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