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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찬·반 맞수 한목소리 "산업+통상은 안 돼"

산업통상자원부 개편안에 대한 우려 높아져

등록|2013.01.23 20:48 수정|2013.01.23 20:48

▲ 23일 박근혜 당선인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찾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을 전달한 후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철통보안'의 대통령직 인수위가 기습적으로 내놓은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해 '공론화 과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현 개편안대로는 통상기능이 파행을 겪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새로 들어설 박근혜 정부에서 현재의 지식경제부가 산업통상자원부로 바뀌면서 현재의 외교통상부가 갖고 있는 통상기능을 갖게 된다는 건 지난 18일 발표됐다. 그러나 22일 발표한 세부 개편안에서 외통부의 통상교섭권과 기재부의 FTA 후속대책기능까지 산통부로 넘어가게 되는 등 통상관련 업무가 모조리 산통부로 합쳐지는 계획은 적잖은 충격을 줬다.

특히 현재 통상교섭본부의 기능과 권한이 산업진흥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낸 송민순 전 의원은 2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15년 동안 뿌리를 내리고 과실을 맺고 있는 나무를 다른 데로 옮겨 심을 때에는 그에 따른 부작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통상교섭본부는 1998년 김대중정부 출범 때 통상산업부가 갖고 있던 통상기능이 외무부로 넘어가 외교통상부로 되면서 탄생했다. 우루과이라운드 당시 협상 품목·주제별로 농림수산부가 나섰다가, 통상산업부가 나섰다가, 외무부가 나섰다가 하는 대혼란을 겪으면서 전문성을 갖춘 전담부서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되면서 나타난 결과다.

"제조업 비중 낮은데, 박정희 시절처럼 하면 전문성↑?"

인수위는 통상교섭기능을 산업진흥과 함께 묶는 이유를 "통상교섭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통상교섭기능이 산업진흥과 합쳐진다고 해서 전문성이 높아지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23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담당하는 산업은 제조업인데, 요즘의 통상협정문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별로 크지 않다"며 "실제로 금액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와 EU, 미국, 중국 간의 무역을 봤을 때 제조업의 물품거래 교역규모보다 투자와 금융 등 자본거래의 규모가 훨씬 크다, 그런 면에서 산업 쪽에서 통상교섭을 감당할 차원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산업과 통상을 붙여놓은 것은 박정희 시대의 모델인데, 지금 한국 경제는 질적으로 구조적으로 달라져 있다"며 "GDP 규모로 보나 고용의 규모로 보나 제조업의 규모는 작아졌는데 이런 조건에서 과연 박정희 대통령 시절처럼 산업에다 통상을 갖다 붙이고 전문성을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외통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의 의견도 비슷하다. 김 의원은 지난 18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한 인터뷰에서 "최근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다른 나라하고 소위 합의사항의 이행 내지는 새로운 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보면 통상 이슈들이지, 제조업과 관련된 그런 이슈들은 좀체 잘 없다"고 했다.

한미FTA 협상을 진두지휘했던 김 의원과 협상 내용을 조목조목 비판했던 이 교수가 '통상+산업'이라는 인수위의 개편방향에 대해선 같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김 의원은 "이명박 정부 내내 어려웠던 문제가 쇠고기, 그런 게 크게 통상문제로 부각이 되지 않았냐"며 "그런 걸 보면 제조업을 담당하는 부서가 통상에 전문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금 대두되고 있는 현실과는 굉장히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 중심의 통상으론 사회갈등 봉합 어려워"

전문성이 더해지느냐에 대한 우려보다 심각한 건 산업 중심의 통상정책구조가 통상으로 인한 사회갈등을 봉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면, 상대국의 자동차 시장을 개방시키면서 한국의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딜'이 이뤄지면 자동차산업과 농업의 이해가 엇갈리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데, 제조업에 치우친 통상정책이 이를 봉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해영 교수는 "우리 사회는 흔히 '수출로 먹고 산다'고 하니까 통상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통상의 사회통합·조정기능이 굉장히 중요한데 통상을 산업에 갖다붙이면 사회통합적 기능이 살아날 수 없다"며 "개방으로 피해를 입는 농민이나 구조조정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이 통상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번 개편안은 이런 데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빠져 있다,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당장 쌀 관세화 유예가 2014년 만료되니 WTO와 협상을 해야 하는데, 이 협상이 농식품부 입장에선 사활이 걸린 문제이고, 농민들에게는 마지막 보루인데, 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장사가 안 되는 분야'일 뿐"이라며 "이번 개편안대로라면 앞으로의 통상정책은 경제주의로, 대기업 위주로 갈 수밖에 없고 MB정부가 하던 재벌위주의 정책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김종훈 의원도 "제조업이라면 지금 우리나라 경제에서는 상대적으로 사정이 좀 괜찮은 분야거든요, 그런데 이런 괜찮은 분야를 통괄하는 부서에서 농업, 축산분야 이런 쪽하고 종합해(서 취약한 분야를 양보해)버리면 결국 우리가 굉장히 취약한 분야 쪽에서의 갈등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도 산업통상자원부 개편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 의원은 "조직개편을 하려면 그동안 통상교섭본부가 한 활동이 뭐가 잘못됐는지에 대한 진단도 있어야 하고, 바꾸면 뭐가 나아질 것인지 분석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통상과 산업을 붙여놓는 건 개발도상국에서나 하는 일"이라며 이 사안에 대한 공론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다음주에 정부조직개편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낼 계획이다. 국회에 법이 제출되면 공론화 과정을 거치게 돼 있지만, 이 법안이 정상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새누리당 지도부와 오찬을 하며 "우리는 운명공동체"라면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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