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와트의 일출... "과연 신들의 땅!"
[세계문명기행 IV :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⑤] 앙코르의 하이라이트 '앙코르 와트'
▲ 앙코르 와트의 전경 ⓒ 위키피디아
이제 이번 기행의 사실상 하이라이트인 앙코르 와트에 가보자. 왜 이곳을 신비의 사원 혹은 세계 7대 불가사의라 하는지 몇 가지만 정리해 볼까 한다.
우선은 이 사원이 크다는 것이다. 이 사원을 건립하는데 이집트 최대의 피라미드인 기자의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사용된 석재의 양이 사용되었고, 7톤짜리 돌만 모두 1800개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이러한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그 당시의 기술로 만들었는지가 의문이다. 석재도 이 사원 부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40여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쿨렌산에서 가져왔다니 그 많은 돌덩이를 어떻게 운반해 상상을 초월하는 초대형 석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프놈 쿨렌의 채석장에서 수만 명의 전쟁포로나 노예를 동원해 바위를 깨고, 우차나 코끼리 혹은 운하로 그것들을 운반했다고는 하나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고도의 문명을 지닌, 아니 지금 생각해 보아도 최첨단의 문명을 가진 나라가 어떻게 순식간에 없어질 수가 있었을까.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던 제국의 수도가 감쪽같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힐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앞서 정리한 앙코르 문명의 미스터리를 상기해 보자. 앙코르 와트를 중심으로 한 앙코르 지역이 역사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은 전쟁에 의한 멸절이 아니라 수도를 버리고 사람들이 집단으로 이주했다고 하는 가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인류 최고의 문명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가설이 사실인지 어떤지 증명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의문이 인류의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아 세계인의 발걸음을 이곳 앙코르로 인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밖에는 달리할 수가 없다.
앙코르 와트, 크메르 건축 예술의 극치
앙코르 와트는 앙코르 유적군에서 가장 큰 개별 사원으로 크메르 건축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곳은 완벽한 좌우 대칭의 균형미, 극상의 미로서 조각과 부조 등을 볼 수 있는 명실공히 앙코르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건축 설계는 다른 사원과는 달리 서향이라는 것이 특징이고(그래서 이 사원의 주인이었던 수리야바르만 2세의 묘라고도 함) 바콩에서 볼 수 있는 사원 양식을 가장 결정적으로 발전시킨 모습이다.
우선 구조를 설명하면 이렇다. 해자를 둘러싼 최외벽(동서 1500미터, 남북 1300미터), 200여 미터의 해자를 가로지르는 신도, 그리고 신도가 끝나는 부분에 만들어진 중벽과 고프라(신도가 끝나는 부분에 만들어진 사원의 현관), 이어 다시 신도가 이어지고 마침내 사원의 제1 회랑을 만나고 이 회랑 넘어서 제2 회랑 사이에 중정이 있고, 몇 계단을 올라 제2회랑에 들어서면 또다시 조그만 중정이 있다.
이어 몇 계단을 올라가면 우리의 눈을 경악케 하는 구조물이 나온다. 사람이 올라가기 힘든 경사에 우뚝 선 중앙탑과 네 코너에 하나씩 있는 탑, 우리는 앙코르 와트의 상징인 5개의 탑을 만나게 된다.
밀림에서 떠오르는 장엄한 태양
▲ 앙코르 와트에서의 일출, 한 마디로 장관이다. ⓒ 박찬운
앙코르 와트 관람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앙코르 와트를 아는 사람들은 미명에는 일출을 보기 위해 간다. 내가 이곳을 찾은 9월 하순을 기준으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호텔에서 새벽 5시 반 정도에는 떠나야 한다. 나는 호텔 입구에서 일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대기 중인 툭툭(오토바이에 손님을 태울 수 있는 좌석을 만든 간이 택시)을 잡아타고 아침 공기를 뚫고 앙코르 와트 서문에 도착했다.
벌써 수백 명의 관광객이 일출을 보기 위해 신도를 걸어 저 멀리 보이는 3개의 탑문 고프라(고프라는 신도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 gateway을 말하는 것이니 탑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6시경 중앙 고프라를 지나 사원으로 들어가는 신도에서 감동적인 일출을 맞이했다.
사원의 본전에는 큰 탑이 다섯 개지만 중앙 탑문에서 보이는 신전의 탑은 세 개로 보인다. 그 탑 너머로 태양이 올라온다. 한마디로 신비감이 넘치는 장관이다.
▲ 앙코르 와트의 서문에서 보이는 신도와 3개의 탑문 고프라. ⓒ 박찬운
이제 본격적인 앙코르 와트를 관람해야 할 때인데, 언제가 좋은가. 두말할 것도 없이 오후다. 점심은 시엠립의 한가한 식당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호텔에 가서 잠시 샤워라도 한 다음 오후 2시가 넘어 앙코르 와트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왜 이 시간을 택해야 하느냐면 빛의 각도에 따라 앙코르 와트가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앙코르 와트는 다른 사원과 달리 서향이므로 오후가 되어야 햇빛을 제대로 받아 사원의 전체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늦은 오후면 그곳에서 일몰의 장관을 볼 수도 있고, 오후 5시경 관람이 끝나면 일몰의 포인트로 알려진 인근의 프롬 바켕으로 올라가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저 밀림 속으로 사라져 가는 태양을 배웅할 수도 있으니 오후의 관람이 이래저래 좋은 것이다.
먼저 앙코르 와트의 서문 입구에 도착하여 몇 계단을 오르면 저 멀리 3개의 탑문인 고프라가 보인다. 신도의 양옆은 나가의 몸통으로 만들어진 난간이 있는데, 이것과 바콩의 나가를 비교해 보기 바란다. 배를 땅바닥에 깔고 있는 바콩의 나가와 난간 위에 올라서 있는 앙코르 와트의 나가는 분명 같은 동물이지만 이미지는 다르다.
▲ 중앙 고프라 뒷벽의 압사라 ⓒ 박찬운
고프라에 들어서 사원의 본전으로 들어가는 신도를 밟기 전에 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고프라의 안쪽 벽에 새긴 천상의 여인이자 무용수인 압사라다. 이 압사라와 프레아 코나 바콩에서 본 압사라를 비교해 보자. 분명 다를 것이다. 이곳의 압사라는 무엇보다 장식이 치밀하고 여전히 가슴은 풍만함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그녀가 입은 옷을 보라. 다리의 윤곽이 분명한 것을 보면 그 옷은 필시 몸이 훤히 들어다 보이는 옷이리라. 이에 비해 프레아 코나 바콩, 그리고 프레 룹에서 보는 압사라는 다리 윤곽을 볼 수 없다. 옷감의 재질이 다르든지 부조 양식이 달라졌다는 증거다.
힌두 신화를 알아야 부조가 보인다
신도가 끝나는 부분에서 돌층계에 올라서면 제1회랑으로 들어서게 된다. 앙코르 와트의 관람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하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제1 회랑과 제3 회랑을 든다. 제1 회랑은 회랑 벽의 부조에서 12세기 크메르인들의 문화의 깊이와 세계관을 읽을 수 있고, 제3 회랑에서는 천상계의 수미산을 바라보는 극상의 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1 회랑에서 제3 회랑, 그리고 지성소가 모셔져 있는 중앙대탑의 세세한 묘사는 형언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책들이 묘사하고 있고 특히 최영도 변호사는 그 설명을 위해 아마도 비디오 테이프를 몇 번씩 돌려 보며 작성을 했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정확한 묘사를 하고 있다. 그분의 꼼꼼한 성격에 대해 다시 존경심을 표할 뿐이다.
나는 그 책을 들고 다니며 앙코르 와트의 구석구석을 확인하였다. 초심자들을 위해 꼭 봐야 할 곳 몇 곳을 지적해 보자. 제1 회랑의 벽면 부조는 4면에 걸쳐 총 길이가 520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부조이다. 사실 처음에는 '와' 하지만 몇 미터를 보고 나면 그것이 그것일 뿐 별다른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이 부분에서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먼저 벽면 부조를 보는 순서는 보통 서회랑의 중앙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돌게 된다. 편의상 위치를 표현하면 [서회랑 남익-남회랑 서익-남회랑 동익-동회랑 남익-동회랑 북익-북회랑 동익-북회랑 서익-서회랑 북익]이라고 할 수 있다.
▲ 동회랑 남익벽의 우유 바다 젓기 부조 ⓒ 박찬운
벽면 부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힌두의 신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도의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의 한 장면인 쿠룩세트라의 전투를 묘사한 서회랑 남익 부조, 인도의 창조 설화인 '우유 바다 젓기'를 묘사한 동회랑 남익 부조, 라마야나의 랑카의 전투를 묘사한 서회랑 북익 부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중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동회랑 남익의 '우유 바다 젓기'는 반드시 보기 바란다. 앙코르 와트의 벽면 부조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이 벽면 부조의 내용은 곧 보게 되는 앙코르 톰의 승리의 문을 들어서면 다시 떠오른다. 그 부조의 한 장면을 문 앞 양쪽에 거대한 석상을 설치해 표현했다. 그리고 이 '우유 바다 젓기'는 앙코르 와트 여기저기에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만은 알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인도의 창조 설화 중에서 '바가바타 푸라나'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서 신(선신과 악귀)들의 전쟁이 나온다.
이 끝없는 전쟁 중에 비쉬누가 중재하기 위해 하나의 제안을 했다고 한다. 모두 힘을 합쳐 젖의 바다를 저어서 불로장생의 암리타를 찾자고. 이에 동의한 양 진영의 신들은 1천 년 동안 젖의 바다를 저어 약을 찾기 시작하는데 이 과정에서 생겨난 거품 속에서 온갖 생명체들이 탄생한다. 부조의 상단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요정 압사라도 바로 이 '우유 바다 젓기'를 통해 탄생했다.
제1 회랑을 한 바퀴 돌면 서회랑의 중앙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안쪽 제2 회랑 쪽으로 올라가면 십자형 중회랑을 만난다. 이곳에는 수영장 모양의 못 4개가 있는데 참배자들이 중앙 성소로 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나는 못의 바닥으로 내려가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미 이곳은 지상에서 수십 미터 높이에 있는데 그 당시 기술이 얼마나 대단했기에 이 못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900년이 지난 오늘도 돌과 돌의 이음새가 너무도 정확하여 지금이라도 물을 채우면 바로 수영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배수시설은 어떻게 만들었으며 그 많은 물은 어떻게 끌어 올렸을까. 의문의 꼬리가 계속 이어졌다. 이 중회랑에서 하나 더 알아 둘 것은 회랑의 곳곳에 불상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원래 앙코르 와트는 힌두식 사원인데 후일 불교 사원으로 변모하였음을 이 불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천상의 요정 압사라의 풍만한 가슴
▲ 제2회랑 외벽의 압사라 부조. 압사라의 다리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다. 당시 무희들이 입은 옷은 아마도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재질로 만들었을 것이다. ⓒ 박찬운
제2 회랑은 제1 회랑과 달리 회랑 내 벽면 부조가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 꼭 보아야 할 것은 내정에 내려가서 회랑 쪽을 보며 회랑 바깥벽에 부조되어 있는 압사라다. 약 1500명이 넘는 아름다운 천상의 요정 압사라가 각양의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다.
풍만한 가슴을 지닌 압사라, 하늘거리는 치마를 입은 압라사, 특별히 각선미가 돋보이는 압사라 등등 하나하나 비교해 보는 것만 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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