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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스티브 테일러의 <제2의 시간>

등록|2013.01.25 14:23 수정|2013.01.25 14:45

▲ <제2의 시간> 표지 ⓒ 용오름

지난 연말 '멘붕'을 경험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지난 5년을 간신히 지나왔는데,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또 어떻게 보내나'라는 것이다. 최근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느낀 점도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 가나' 하는 것이었다. 똑같은 시간인데도 어떤 순간에는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가고, 어떤 순간에는 거북이처럼 지나간다.

왜 그럴까? 왜 순간순간 시간의 속도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과연 시간이란 무엇이며, 정말 시간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해답을 주는 책이 있다. 바로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심리학 교수 스티브 테일러가 쓴 <제2의 시간>이다. <제2의 시간>은 생활 속에서의 인식과 경험을 중심으로 시간을 분석한 '시간에 관한 심리분석서'이다.

그러나 단순히 인식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느끼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제2의 시간>은 시간에 대한 심리적 분석을 통해 본질적으로는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법을 탐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심리학은 물론 인류학, 물리학, 철학, 문학, 초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적 접근을 통해 시간에 대해 다각적으로 조망한다.

흔히 말하듯이 시간이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일차원적인 시간개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간은 늘일 수도 줄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시간을 초월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제2의 시간>은 기억에 불과한 과거, 예상에 불과한 미래 대신 온전히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기를 권한다.

시간은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지금 이 순간,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거나 혹은 너무 더디 흐른다고 시비 걸고 싶은가? 그렇다면 시간에 시비를 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돌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속도와 중력에 따라 우주의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증명처럼 심리적 시간 역시 정보처리 과정과 자아 상태에 따라 시간은 빨리 흐를 수도, 느리게 흐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심리적 시간을 '제2의 시간'이라 말하는데, 여기에는 5가지 법칙이 있다. 시간은 첫째, 나이가 들수록 빨리 흐른다. 둘째, 새로운 경험과 환경에 놓이면 천천히 흐른다. 셋째, 몰입하면 빨리 흐른다. 넷째, 몰입하지 못하면 천천히 흐른다. 다섯째, '의식하는 정신' 또는 평소의 자아가 사라지면 시간은 천천히 흐르거나 아예 멈춘다고 느끼는 것이다.

19세기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한 사람이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느끼는 일정 기간의 시간의 길이는 인생 자체의 총 길이에 따라 변한다고 했다. 즉 열 살 아이에게 1년은 살아온 삶의 10분의 1이고, 쉰 살 사람에게는 50분의 1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 아이에 비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영국의 심리학자 존 웨어든은 시간이 빨라진다는 생각은 기억이 만들어낸 과거의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의 시기는 기억 속에서 작아지는 반면, 많은 일이 일어났던 시기는 확대된다는 것이다. 결국 시간의 가속이란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경험에 대한 인식과 관련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직선적 관점의 시간개념을 버리는 것이 행복

오늘날 우리들은 '세상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며 세상과 함께 시간이 시작되었고 세상이 끝나면 시간도 끝난다'는 기독교적인 시간개념이 일반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개념은 지극히 일차원적이며, 역사적으로도 극히 일부만이 가진 개념이다.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시간을 이러한 직선적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은 2500만 년마다 윤회를 한다며 2500만 년 뒤에 다시 만나자는 말이 아련하게 가슴에 남았던 소설 <은비령>에서처럼 불교에서는 윤회를 통해 시간이 순환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남미의 마야족 역시 세상은 계속되는 순환에 따라 창조되고 멸망하기를 반복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 중에는 아예 시간이란 것을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나바호족과 호피족에게는 아예 시간이라는 단어가 없고, 과거형, 현재형, 미래형과 같은 동사의 시제 자체가 없다고 한다. 이들에게 시간은 그저 삶의 리듬의 일부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시간을 인식하지 않으니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과 일체가 되어 편안하게 살아간다. 반면에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는 서양식 시간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와 미래에 매여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도록 한다.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느라 정작 지금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잊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일원적 시간개념을 가진 유럽 사람들을 모노크론이라고 부른다. 모노크론은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해야 하고, 그 일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다음 할 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호피족, 나바호족과 같은 폴리크론은 어떤 일을 끝내야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순간순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시간에 구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원론적 시간개념을 탈피해서 내면을 변화시키고 정신세계를 재구성함으로써 끝없이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며, 강한 자아로 인한 분리된 느낌과 이중성이 없어져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해?

시간이 직선처럼 일원적으로 흐르지 않고 순환한다는 생각은 충분히 이해가능하다. 그런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는 주장은 어떤가? 쉽게 납득이 되는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떠올려보면 그리 어려운 개념만도 아닌 것 같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은 속도와 중력에 대해 상대성을 띠며 사건의 발생에는 정해진 순서가 없다고 했다. 즉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속도에 따라 시간차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 물리학에서는 우주가 4차원의 시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른다는 말 자체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모든 과거와 미래는 지금 여기 현재와 나란히 존재하고 있으며, 4차원의 시간과 공간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개념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교수인 로저 펜로즈는 '우리에게는 단지 정적으로 고정된 시공간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우주의 사건이 펼쳐질 뿐'이라고 말했다.

즉 시간이 흐른다는 가정과 시간은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와 미래로 나뉜다는 가정은 그 어떤 물리학 연구에서도 증명된 바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뒤로도 갈 수 있다고 믿는 물리학자도 많으며, 블랙홀과 같은 거대한 물질에 의해 우주의 구조가 산산조각 났을 때 생기는 시간과 공간의 통로, 즉 웜홀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오늘날 양자물리학에서는 사건의 흐름이 뒤에서 앞으로 흐를 수도 있다고 본다. 결국 시간의 흐름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적인 상태의 각 순간이 있고, 이 순간이 지나면 다른 순간이 오는 순서가 있기에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느낄 뿐이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곳은 오직 하나, 우리 '생각' 안에서일 뿐

칸트 역시 객관적인 시간이란 없으며, 시간은 정리된 삶을 위해 우리가 만들어낸 '분류법'에 불과하다고 말했는데, 즉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인식의 편리함'을 위한 도구로 개념화해 우리에게 짐을 지웠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는 곳은 오직 하나, 우리의 생각 안에서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시간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에 대한 인식은 의지에 따라 조절할 수 있기에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할 수도, 천천히 흐르게 할 수도 있고, 또 인생을 길게 살 수도, 짧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나 미래는 결국 존재하지 않는 추상이며 실제로는 오로지 하나의 시점인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시간이 오든 가든 아쉬워할 일이 전혀 없다. 분명한 것은 영원히 계속되며 끝나지 않는 현실은 오로지 현재 뿐이란 점이다.

현재는 한번 왔다가 섬광처럼 사라지는 덧없는 순간의 연속이 아니라 빛나고 의미 있는 순간의 지속이다. 따라서 지나가버린 과거에 매여 괴로워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허비할 시간은 없다. 우리가 속한 유일한 시간인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즐기며 최선을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시간정복자의 삶이다. 카르페 디엠!
덧붙이는 글 <제2의 시간> 스티브 테일러 씀, 정나리아 옮김, 용오름 펴냄, 2012년 12월,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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