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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빚쟁이들, 좀 당당해집시다

[서평] 제윤경, 이헌욱의 <약탈적 금융 사회>(2012, 부키)

등록|2013.01.25 14:54 수정|2013.01.26 15:20

▲ 제윤경, 이헌욱이 쓴 <약탈적 금융사회>(2012, 부키)의 표지. ⓒ 부키


영혼을 좀먹는 '빚'에 대처하는 지혜로운 이의 팁 몇 가지! 빌린 돈이 5천만 원 이하다. 그런데 지금 3개월 이자를 연체했다. 날마다 악마 같은 독촉 전화가 걸려 온다. 상환 독촉 통지서도 여기저기 들어오고 있다. 상환할 수 있는 여유나 앞으로 가능성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 어떻게 하나.

신용회복기금 채무 재조정 프로그램을 활용해 보자. 전화번호는 1588-1288번. 이자 잔액 감면과 원금의 8년 분할 상환, 그동안 성실하게 상환해 오고 있었던 경우에는 원금을 30%까지(기초수급자는 최대 51%까지) 감면해 준다.

연체 기간이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인 경우에는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프리 워크아웃이나 개인 워크아웃(공히 1600-5500번이다) 제도를 활용하면 좋다. 무담보 채권은 10년, 담보 채권은 20년까지 분할 상환할 수 있다. 연체 이자 감면과 약정 이자 30% 감면 혜택도 있다.

당신은 빚쟁이인가? 그렇다면 이 책 <약탈적 금융사회>를 반드시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나 또한 빚쟁이기 때문에 이 책을 사서 두 번이나 보았다. 그 결과 이제 빚에 대한 내 관점은 거의 99.9% 바뀌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일반 가정이 은행 등에 진 빚은 가계 부채 총액은 900조 원을 넘어섰다. 가계 빚 1000조 원 시대가 코앞이다. 빚의 역습이 머지 않았다고 여기저기서 경고하는 이유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4월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는 그 가계 부채의 심각성을 잘 보여 준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0가구 중 1가구는 '과다채무가구'로 나타났다. 가구의 경제 상황을 초과하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구는 소득의 40% 이상을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 금융 부채 가구의 비율도 전체 가구 중 56.2%에 이른다. 이들 가구의 절반 이상(50.9%)은 그 빚을 부동산을 구입하는 데 썼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이들 빚쟁이들 중에서 부동산을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한 주택 투기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이들 가운데에는 최근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깡통 주택의 주인들이 많을 것이다. 바야흐로 하우스푸어 150만 명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자, 우리는 돈에 눈 먼(?) 그 많은 영혼을 비난만 해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들에 따르면 '절반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빚은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 사이의 상호 관계에 기초한 상호 작용적 성격을 갖는다. 일방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빌린 돈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원금이나 이자 연체 등), 그 책임을 따질 때 일방적으로 어느 한 편만 따져서는 안 된다.

빚이 문제 덩어리가 되는 데에는 그 개인뿐만 아니라 금용 기관 자신이나 이를 부추기는 언론의 책임의 크다. (여기서 개인의 책임은 따지지 말기로 하자. 관련된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책의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빚은 '내 탓'이라는 의식은 지금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금융 기관의 책임을 가장 크게 물어야 한다.

은행은 예금자가 맡긴 돈으로 자금 중개업을 하는 기관이다. 자기 돈으로 장사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은행이 채무자에게 빌려준 돈이 문제가 되었을 대, 애초에 과도하게 빌려 준 은행에 훨씬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는 은행들의 책임은 그 어떤 경우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은행이 돈을 빌려가는 개인의 부실을 몰랐다면, 그것은 무능과 과실 책임에 해당한다. 개인의 부실이나 파산의 가능성을 알고도 담보나 신용이 있다는 핑계로 돈을 빌려줬다면 이것은 도덕적인 해이이자 직무 유기다. 그것은 돈을 매개로 돈을 빼앗는 약탈적 대출일 뿐이다. 미국에서 2008년의 금융 위기 이후 상환 능력 이상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을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fding)로 규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은행이 '약탈적 대출'에 목을 매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다. 이문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예대 마진(턱없이 낮은 예금 금리와 과도하게 높은 대출 금리 사이의 차이를 통해 은행들이 수익을 올린다는 말은 하루이틀 듣는 얘기가 아니다. 대출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은행쪽에 떨어지는 파이가 커지니 소비자 신용 사업(대출)에 사활을 거는 것이다.

실상 소비자 신용은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할수록 증가한다. 소비자 신용이 증가하면 기업은 대량 생산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다. 신용을 통해 미래 소득을 끌어다 쓰는 거대 소비자 집단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경기 활성화로 나라 전체의 경제 규모를 키우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소비자 신용의 확대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잘 따져보면, 기은행이나 기업과 같은 다른 부문과 달리 소비자 부문에 돌아가는 효용성은 별로 크지 않다. 미래 소득을 앞당겨서 쓰는 과정에서 단기적인 효용성이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미래 소비 여력은 줄어들고, 이자와 수수료 등의 부대 금융 비용이 발생해 가계 재정에 마이너스 요인이 생겨난다.

당장에 필요한 물건을 카드로 팍팍 긁어 사는 것이 심리적인 만족감을 줄 소지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경제 이익의 측면에서는 신용을 통한 소비 생활이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저축을 해서 목돈을 만들어 소비하는 것이 대체로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바쁜 세상에 언제 저축을 해서 쓰냐며 비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예금 이자도 제로에 가까운 세상에 저축처럼 불합리하고 비경제적인 경제 활동이 어디 있느냐며 나무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인 합리성을 자랑한다. 빚도 재산이라는 왜곡된 경제관을 공공연히 퍼뜨린다.

하지만 경제 활동을 우리는 항상 합리적으로만 선택하고 결정하는가.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그렇게 말할지 몰라도 현실 속의 우리는 거의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지름신'의 강림 속에서 충동과 격정으로 물건을 살 때가 많다. 그것은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심층의 심리와 감성을 자극하는 최첨단의 광고 덕분일 때가 많다. 기업이 수억 원의 비용을 치르면서 최고의 광고 모델을 쓰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의 비합리성을 자극하는 데가 또 있다. 언론이다. 당신은 예의 '빚도 자산'이라는 프레임을 들어봤을 것이다. 당신은 이 프레임을 처음에 어디에서 만났는가.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렇다면 단언하건대 그 친구는 언론을 통해서 이 프레임을 만났을 것이다.

빚, 피할 수 없다면 현명하게 - 좋은 빚, 나쁜 빚(<머니투데이> 2008년 3월 14일)
'좋은 빚' 활용해 수익률 높여라(<한국경제> 2006년 4월 12일)
좋은 빚, 나쁜 빚?(<조선일보> 2006년 5월 1일)
빚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자산(<머니투데이> 2005년 11월 21일) [이상 124쪽에서 인용]

언론이 당대의 최신 재테크에 무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빚을 권하는 사회 구조 이면의 동기와 배경 또한 함게 착실히 말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대한민국 언론에서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는 애시당초 힘들다. 언론사 자체가 은행이나 기업, 정부의 입맛을 알아서 대변하는 곳이 아닌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개인이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채무에 대한 의식부터 바꾸는 일이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빚은 쌍방 간의 상호 작용이다. 악성 채무는 모두 '내 탓'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금융 회사가 유포하는 '내 탓' 프레임에 맞설 수 있는 자기 나름의 논리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빚은 결코 '100% 내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이 은행에 맞설 수 있는 논리적인 방어 기술을 마음껏 얻어내기 바란다. 나는 이미 그 기술을, 두 번이나 되는 독서를 통해 나름대로 확보하였음을 밝힌다.
덧붙이는 글 제윤경 ․ 이헌욱 지음(2012), <약탈적 금융사회>(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부키. 263쪽. 값 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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