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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깨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대리기사 일화] 맨날 외박하는 아빠는 이제 그만

등록|2013.01.27 15:17 수정|2013.01.27 15:17
구리 인창동 새벽 5시 넘은 시간. 오늘도 서울 송파에서 안양 - 서울 노원구-면목동-남양주 진접읍- 구리 돌다리 그리고 이곳 인창동까지 숨가쁘게 달리고 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새벽 운행 마치고 하루 일을 마감, 집에 가려 합니다.

서울 버스를 타고 광진구 구의동 지나가는데 드르륵~(진동 소리 ^^), 내 스마트폰에
<구의 먹자골목 - 암사동 12K> 오더(지시)가 올라옵니다. 붙잡고 "콜(call)", 암사동으로 향합니다(12k는 운행비가 1만2천 원이라는 뜻입니다. 1k=1천원: 글쓴이 주).

지금 시간 6시 44분. 아, 우리 아들 깨기 전에 집에 들어가려 소망했건만, 잘못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빨랑 운행해야겠습니다.

▲ 우리 아들에게 외박만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습니다. 아들, 잠깨기 전에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의 돌잔치 사진. ⓒ 김종용


초등학교 3년생인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이 대리기사 일을 하면서 하루도 일찍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아들 잠자기 전, 비록 아빠 없이 잠을 자야하지만 아침에 깨어보니 아빠가 외박했다는 허전함을 안기기는 싫었습니다. 졸지에 아내를 대리기사 아내로 만들어 놓고, 독수공방시키는거야 팔자려니 하겠지만, 아침 시간도 못 맞춘다면 안될 것 같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합니다. 잘하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버스가 송파구 몽촌토성역에 닿았을 때 또 '드르륵.' <방이동 먹자골목 - 천호동 12K> 오더가 뜹니다. 본능적으로! "오더 콜" 했습니다. 이런...

손님을 태우고 천호동 내려주고 걸어서 버스 정거장으로 향합니다. 7시 50분, 오늘도 천상 틀렸습니다. 아, 나는 왜 이런 걸까요. 그깟 몇 푼 번다고  아침에 아빠 얼굴도 못 보는 아들 만들다니!

지금 시간 9시 18분. 집에 잠시 들른 후 동네 PC방입니다. 빨랑 집 컴퓨터 고쳐야 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계획부터 세워야 겠습니다. 그동안  아무런 계획도 없이 닥치는대로 일을 해왔습니다. 오늘도... 그러나 이제 계획을 세워야겠습니다. 하루 목표와 퇴근 시간을 정하고 그에 맞는 동선을 찾고 운행을 해야겠습니다.

우리 아들 깨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야 겠습니다. 아들에게 아빠가 맨날 외박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애써봐야 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각종 불법과 무도한 횡포가 판치는 대리판, 그 현실과 문제점, 대리기사 삶의 현장을 기사화하여 대리기사권익운동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 김종용 기자는 전국대리기사협회의 권익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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