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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파는 짬뽕은 다 나가사키 짬뽕"

[일본 가는 길 92] 나가사키 차이나타운, 신치 주카가이

등록|2013.01.29 10:17 수정|2013.01.29 11:04
나와 아내는 나가사키(長崎)의 아담한 노면전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평일 오후라 전차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고 전차 안의 나가사키 시민은 모두 조용히 앉아있다. 우리는 츠키마치(築町, つきまち) 전차 정류장에서 내려서 남쪽으로 조금 걸어갔다. 길을 물어볼 것도 없이 차이나타운은 눈앞에 금방 나타났다.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붉은 문 입구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츠키마치역이 역에서 내려 5분만 걸어가면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이 나온다. ⓒ 노시경


차이나타운의 동서남북 사방에 세워진 중화문 중 우리가 차이나타운에 들어선 문은 북문이다. 북쪽을 상징하는 용을 조각한 조각상이 중화문 앞에 세워져 있다.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은 요코하마(橫濱) 차이나타운, 고베(神戶) 차이나타운과 함께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이다. 일본 내 다른 차이나타운보다 규모는 조금 작지만, 이곳에는 나가사키를 고향으로 하는 유명한 먹거리들이 진을 치고 있다.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 중 규모는 작지만 먹거리는 풍부

차이나타운 북문차이나타운 4방향의 중화문 중 북문이며 차이나타운 관광의 출발점이다. ⓒ 노시경


차이나타운의 규모가 크지 않기에 우리는 간편하게 산책하듯이 둘러보기로 했다. 길 양쪽에는 붉은색 기둥들이 줄을 지어 서 있고, 붉은 기둥 위에는 밤에 야경을 밝히는 네온사인이 걸려있다. 좁은 골목길 안에는 중화요리점과 잡화점, 제과점 등 약 40개에 이르는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과거 일본에 진출한 중국인들이 모여 화려한 타운을 이루었던 거리는 예전만큼 번화하지는 않지만, 일본 속의 중국을 느껴보려는 인파는 꽤 많은 편이다. 길가에 모여 있는 중국 음식과 중국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한가함을 즐겼다.

중국 잡화점온갖 잡스러운 중국 기념품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이소룡 체육복도 있다. ⓒ 노시경


중국 느낌이 물씬 나는 잡화점의 중국 제품들은 원색의 색상이 매우 화려하지만 대개 촌스럽다. 홍콩 영화 속에서 이소룡이 입었던 노란색 체육복, 팬더 인형, 사자 탈춤 인형, 청나라 모자 등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가사키의 또 다른 이국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일본 속의 차이나타운에서 내가 찾아가는 곳은 명물 맛집들이다.

차이나타운 인파차이나타운은 과거만큼 화려하지는 못하나 아직도 많은 인파가 모여든다. ⓒ 노시경


가게 앞을 걷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쿠니즈츠미'라고도 불리는 '가쿠니만쥬(漁煮まんじゅう)'다. 향신료를 넣어 찜을 한 돼지고기, 둥포러우(东坡肉)를 하얀 찐빵 안에 넣은 중국식 버거다. 나가사키에서 탄생한 이 별미는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의 가게가 가장 맛이 있다고 소문이 나 있다.

'가쿠니만쥬'라는 중국식 버거, 여기서 안 먹으면 손해

가쿠니만쥬중국식 찐빵 안에 들어간 돼지고기가 별미이다. ⓒ 노시경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맛을 보았던 둥포러우는 기름기가 철철 넘쳐서 느끼해 보이지만, 일단 맛을 보면 계속 젓가락이 가게 되는 달콤함이 있다. 가쿠니만쥬를 한 입 베어 물자 돼지기름의 느끼함이 잠시 전해진 후 돼지고기의 절묘한 맛이 입속에 퍼진다. 둥포러우의 달콤함이 담백한 찐빵과 입 속에서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나는 웬만한 패스트푸드 햄버거보다 전통 있고 건강한 중국식 버거를 먹으며 차이나타운의 거리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차이나타운의 거리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나가사키 짬뽕(長崎 ちゃんぽん)을 파는 중화요리 집을 찾기 위함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을 찾는 주된 이유는 바로 나가사키 짬뽕을 맛보기 위함이다. 누구나 다 아는 나가사키 짬뽕이지만, 그 원조의 맛을 보기 위해 이 차이나타운에 여행자들이 몰리는 것이다.

나가사키 짬뽕은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에 모여 살던 화교들이 일본에서 공부하던 가난한 중국 유학생들을 위해 양 많고 저렴하게 만든 음식이다. 17세기에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던 에도막부(江戶幕府)는 외국과의 교역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예외적으로 중국, 네덜란드와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역을 허용했다. 일본과 중국과의 교역에 참여한 중국인들은 나가사키의 당인옥부(唐人屋敷) 거주지에 살다가 중국 선박 전용창고를 세우기 위해 바다를 메워 만든 신치에 옮겨 살면서 새로운 중국인 동네를 만들었다. 일본이 모든 나라에 문호를 개방한 이후 이곳 신치는 유명한 차이나타운이 되었다.

그런데 차이나타운에 수많은 중화요릿집들이 있어서 난감하다. 다들 맛있다고 소문난 집들이기에 어느 집 짬뽕이 맛있는지, 어느 짬뽕을 주문해야 할지 헷갈린다. 여러 블로그에서 맛있다고 강조한 맛집만 해도 북문 바로 앞의 쿄우카엔(京華園)과 가이라쿠엔(會樂園), 면발이 얇은 쇼슈우린(蘇州林), 가격이 저렴한 오주루(王鶴), 맛이 깔끔한 에이세이로(永盛樓) 등으로 너무 많다. 나는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듯한 식당으로 갔다. 나는 역사를 담은 짬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코잔로(江山樓)로 향했다.

나가사키 짬봉의 원조를 맛보기 위해 코잔로로 향했다

코잔로나가사키 짬뽕을 맛볼 수 있는 차이나타운 중화요리집이다. ⓒ 노시경


우리는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의 동문 쪽에 있는 코잔로를 찾았다. 가게 앞의 개방된 어항에 수많은 비단잉어가 헤엄치고 있는 멋진 중화요리집이다. 가게 입구 카운터에는 이 식당의 메뉴와 가게 사진을 붙여두고 가게의 역사를 열심히 자랑하고 있다. 쑥색 기모노를 입은 식당 여종업원들은 친절한 자세로 손님들을 정중히 맞아들이고 있다.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여러 짬뽕 메뉴를 둘러보았다. 메뉴판에는 다양한 짬뽕이 있는데 '나가사키 짬뽕'이라고 적힌 짬뽕은 없다. 나는 손님들에게 응대하기 위해 단정히 서 있는 한 여종업원에게 물었다.

"이 식당에서 나가사키 짬뽕을 먹을 수 있나요?"
"이곳에서 파는 짬뽕은 다 나가사키 짬뽕입니다."

생각해보니 이곳 코잔로뿐만 아니라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에서 파는 짬뽕은 다 나가사키 짬뽕인 것이다. 어찌 보면 웃기는 질문을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식당 내부는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대로 고급스러운 편이지만, 중화요릿집이 많은 서울에서 생활하는 우리들에게 놀라운 곳은 아니다. 점심시간의 코잔로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서 먹기로 유명한 곳인데,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시간은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서 편하게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팔보채풍부한 재료가 들어간 팔보채는 맛이 담백하다. ⓒ 노시경


나가사키 짬뽕국물이 걸쭉하고 해산물이 풍부하다. ⓒ 노시경


나가사키 짬뽕은 2명이 2개 주문하기에는 양이 많다고 들었기 때문에 나가사키 짬뽕 한 개와 함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팔보채를 주문했다. 잠시 뒤에 나온 나가사키 짬뽕에는 돼지 뼈로 우려낸 뽀얀 사골 국물에 각종 해산물과 숙주나물, 양배추 등 채소가 담뿍 들어 있다. 짬뽕의 면 위에 바다와 육지에서 나는 식재료들이 모두 모여 있는 듯하다. 식당의 음식 양이 많지 않은 일본이지만, 차이나타운의 짬뽕은 한 사람이 먹어도 남을 정도로 양은 푸짐하다. 나는 아내와 짬뽕, 팔보채를 함께 나눠 먹기 시작했다.

본고장에서 즐기는 나가사키 짬뽕은 어떤 맛일까? 먼저 스푼으로 국물을 떠 먹어 보았다. 진한 국물은 걸쭉한데 매콤하거나 얼큰하지는 않다. 국물에서는 약간 짜고 진한 해물 맛이 난다. 일본에서 먹어보는 국물이지만 약간 시원한 맛도 있다.

중국인 창고유적중국인들이 교역하던 물건들을 하역하던 창고유적이다. ⓒ 노시경


원래 나가사키 짬뽕이 나가사키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재료들을 이것저것 섞어서 넣고 끓였기 때문에 국물 위에는 다양한 식재료들이 쌓여 있다. 나가사키 앞바다에 가득한 해물이 짬뽕 위에 가득했다. 숙주나물과 양배추는 아삭아삭하고, 잘 삶아진 면발은 국내에서 먹는 면발과는 조금 다르게 쫄깃쫄깃하고 탱글탱글하다.

아내는 맛이 약간 느끼하다고 하지만 나는 너무 맛있게 먹었다. 약간 느끼하기는 하지만 그게 또 별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식당에서는 단무지 같은 간단한 반찬을 전혀 주지 않는다. 우리나라 중화요리 집에서 중화요리의 기름진 맛을 단무지나 김치로 달랬던 생각이 났다. 한국 중화요릿집 같은 반찬이 없으니 무언가 빠진 것 같다. 아! 정말로 나가사키 짬뽕에 김치만 있었으면 훨씬 더 맛있었을 것 같다. 나가사키 짬뽕의 걸쭉한 국물에 매콤한 김치를 더 하면 짬뽕의 풍미가 더 할 것이다.

맛집기행 마무리는 명물 아이스크림으로...

차이나타운 아이스크림맛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차이나타운을 산보했다. ⓒ 노시경


우리는 이 차이나타운에서의 맛집기행을 명물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나는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기로 했다. 나와 아내는 과거 중국 선박의 화물을 저장했던 창고 유적 앞에서 명물 아이스크림 가게를 만났다. 일본의 중학생들이 무리를 지어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있었다. 우리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수많은 아이스크림 주문에 가게 여주인이 쩔쩔매기 시작했다.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8종류나 팔고 있는데 다들 다른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니 가게 주인의 손이 바쁠 수밖에 없다. 일본 중학생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스크림이 나오는 순서대로 아이스크림을 조용히 받아가고 있었다. 성질 급한 내가 시계를 가리키며 언제 아이스크림이 나오느냐고 물었지만, 가게 여주인은 전혀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주변 풍광을 사진에 담으며 아이스크림을 기다렸다. 우리는 한참을 기다려 중학생들이 아이스크림을 다 받아간 후에 겨우 아이스크림을 건네받았다.

나는 아내와 맛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가하게 나가사키의 차이나타운을 걸었다. 왠지 우리나라의 상점가 앞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도쿄 같은 대도시와는 다른 한적하고 여유로움이 길 위에 있다.

이 도시가 왠지 정이 가는 것은 동서양 문화가 만나서 공존하고 일본 내에도 중국이 존재하는 다문화성 때문일까? 나가사키의 다문화 역사가 담긴 짬뽕 한 그릇을 맛있게 먹은 나는 이 도시의 스토리텔링에 만족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차이나타운의 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사회의 대로와 만났다. 나는 아내와 손을 잡고 나가사키의 다른 명소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이 여행기는 2012년 10.15일~10.18일의 일본 여행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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