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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권 넘는 책들, 왜 원양어선에 팔려갔나

인터넷·스마트폰 영향으로 설 자리 잃은 책대여점

등록|2013.02.03 14:25 수정|2013.02.03 19:31

▲ 김아무개씨가 운영하는 행복한 책읽기. 다른 책 대여점이 폐업할 때도 그의 가게는 큰 문제가 없었다. 적어도 2007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 신나리


"요즘은 아무도 책을 안 훔쳐가요. 이제는 책이 하찮으니까 훔치지도 않는 거지."

19년째 책 대여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아무개씨의 말이다. 그는 1994년 처음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에 책 대여점 '행복한 책읽기'를 열었다. 화정동 화중초등학교 앞에서 시작한 가게는 2001년 덕양구 화중로 152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시작 당시 7평이었던 가게는 37평이 됐다. 그만큼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하루에 1800권 정도 빌려 갔다"며 "하루에 적어도 300명, 많을 때는 600명 정도 손님이 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르바이트생 2명을 고용하고 대여점을 지하까지 넓혔다. 지하 40평 지상 37평, 총 77평의 공간에 12만 권이 넘는 책이 있었다. 당시 '행복한 책 읽기' 2km 근방에는 이와 비슷한 책 대여점이 20여 곳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IMF든 뭐든 다 잘 넘겼어요. 이 근처에서 책 대여점으로는 1호여서 단골도 많았고..."

20곳에 달하던 대여점이 하나둘 사라졌다. 지금은 150m 근방에 한 곳과 '행복한 책읽기' 두 곳만이 남았다. 남들이 책 대여점 문을 닫을 때에도 '행복한 책읽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1997년부터 2007년까지는 그랬다. 물론 임대료 걱정이 없는 자신의 가게라는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2007년도 들어서는 그마저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안 됐다.

"살다 살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죠. 사람들이 정말 살기 어려워진 거예요. 몇백 원 하는 대여료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주머니에 돈이 없는 거죠."

"사람들, 책 안 읽어요... 재밌는게 더 많으니까"

▲ 행복한책읽기 주인 김아무개씨는 "예전에는요, 한 달에 두 명씩 꼬박꼬박 책을 훔쳐가는 애들을 잡았어요. 요즘은 아무도 책을 안 훔쳐가요. 이제는 책이 하찮은가 봅니다"라고 말했다. ⓒ 신나리


1994년 김씨는 한 권에 2000~2500원을 주고 만화책을 구입했다. 당시 대여료는 1박 2일에 300원, 소설책은 3박 4일을 기준으로 700원이였다. 지금 만화책의 구입가격은 4000~5000원이다. 현재 이 가게의 만화책 대여료는 1박 2일에 200원, 소설책은 3박 4일에 500원이다. 책 가격은 올랐고 대여료는 떨어졌지만 600명이었던 손님은 이제 절반도 되지 않는다.

"책을 안 읽어요. 책 말고도 재밌는 게 너무 많으니까. 처음에는 PC방에 밀렸고 그다음은 휴대전화에 밀리고... 예전에는요, 한 달에 두 명씩 꼬박꼬박 책을 훔쳐가는 애들을 잡았어요. 요즘은 아무도 책을 안 훔쳐가요. 이제는 책이 하찮은가 봅니다."

김씨는 책을 읽지 않는 문화와 인터넷·스마트폰의 등장 때문에 책 대여점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보고 있었다. 웹툰의 등장으로 만화는 무료라는 생각이 퍼져 굳이 돈을 주고 만화책을 빌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한 판타지·로맨스 소설처럼 빠르고 쉽게 읽히는 소설을 빼고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했다. 한 때 책으로 가득 찼던 김씨의 가게 지하는 이제 '자동차 부품업체'가 세 들어 있다. 지하 공간을 세주기 전, 1만 권이 넘는 책을 1톤 트럭에 실어 두 차례 원양어선에 팔았다. 오락거리 없이 2년씩 바다에 떠다니는 선원만이 책을 찾았다. 김씨는 머지 않아 가게를 정리할 예정이다.

예전에는 700권가량 대여됐는데, 지금은...

▲ 삼선교에서 12년째 책마트 도서대여점을 운영하는 송아무개씨의 상황도 행복한책읽기 김아무개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신나리


"하루에 50권도 안 빌려 가요."

삼선교에서 12년째 '책 마트 도서대여점'을 운영하는 송아무개씨의 상황도 김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송씨는 IMF 때 퇴직한 뒤 비닐납품회사·청소대행업체를 운영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2001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책 대여점을 열었다. 

"한 때는 전국에 책 대여점이 만 개가 넘었다니 말 다했죠. 대원이나 학산 출판사가 책 대여점에 그동안의 재고를 다 팔았다는데, 뭐..."

2001년 당시 삼선교 근처에는 송씨가 운영하는 '책 마트 도서대여점'을 포함해 총 9개의 도서 대여점이 있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가게는 곧 잘됐다. 책 대여점이야 주위에도 많았지만 손님도 많았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하루에 700~800권의 책을 빌려 갔다.

2003년이 지나자 하나둘씩 책 대여점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앞에 있던 곳들부터 문을 닫았다. 변화에 빠른 중·고등학생들은 책이 아닌 인터넷과 휴대전화에서 재미를 찾았다. 만화조차 책으로 읽는 대신에 컴퓨터로 봤다. 결국 삼선교·성북동을 합해 송씨의 가게 한 군데만이 살아남았다.

지난 28일 오후에 대여점을 찾은 유아무개(19)씨는 "요즘 애들 중에 만화책 보는 사람은 없다, 스마트폰으로 보면 된다"며 "나도 만화는 휴대전화로 보지만, 판타지 소설을 읽고 싶을 때 여기에 온다"고 말했다. 8개월 전에 삼선교 근처로 이사 왔다는 정아무개씨는 "이사 와서 책 대여점을 찾아서 반가웠다"며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도 꾸준히 책을 빌려봤는데 대여점들이 2~3년이 못 가서 없어졌다"고 회상했다.

"책 빌릴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까 멀리서도 와요. 근처에 한성대학교가 있는데, 집이 인천·광명인 학생들이 지하철에서 읽는다고 빌려 가요. 주변에 가게들이 장사가 안 되니까 시간 보낸다고 책을 빌리러 오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해도 하루에 30~40명, 50권을 못 넘어요."

대여점 6곳 중 하나는 폐업... "유통·소비 미약한 수준"

손님이 없으니 다른 것을 아끼는 수밖에 없다. 송씨는 아르바이트생 없이 낮 12시 30분부터 자정인 12시 30분까지 홀로 가게를 지킨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가게 문을 열어 놓는다. 매일 나오는 신간을 대신 구입해 배달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외부 업자 대신 스스로 매일 아침 책을 사러 간다.

2004년 대여비를 100원 올렸다가 손님이 30~40%가 줄어든 일을 경험한 이후로 만화책은 1박 2일에 300원, 소설은 3박 4일에 700원이라는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송씨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며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때 책 대여점이 없는 곳이 없었다.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고 돌려받으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일에 많은 사람들이 대여점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수업을 마친 중·고등학생들은 일과처럼 들락날락하던 때가 있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책 대여점 전화번호가 찍힌 책을 보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 '독서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 당시 전국에 약 1만2000개의 도서 대여점이 있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책 대여점의 6곳 중에 한 곳은 문을 닫았다. 문화체육관광부 '2012 콘텐츠산업 하반기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남아있는 도서 대여점의 수는 2000~3000개 정도. 문화체육관광부는 "2000년대 초반까지 활성화됐던 만화 대여점을 통한 유통과 소비는 현재 미약한 수준"이며 "대부분 폐업을 준비하고 있어 신간 유통은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덧붙이는 글 신나리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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