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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최초의 하버드법대 교수, '석지영의 세계'

[서평] 석지영의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등록|2013.01.30 18:20 수정|2013.01.30 18:20

책겉그림〈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 북하우스

2006년 한국계 최초로 하버드법대 교수에 임용된 이가 있다. 그리고 4년만인 2010년, 교수단 심사를 만장일치로 통과하여 아시아여성 최초로 하버드법대 종신교수로 뽑힌 이가 있다. 모두 동일인이다. 바로 석지영이 그녀다.

그녀가 쓴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송연수 옮김)는 그녀가 하버드법대 종신교수로 발탁되기까지의 인생여정을 보여준다. 만 6살 때 동생과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뉴욕으로 옮겨와서 살게 된 배경을 비롯해, 발레를 배운 이야기들, 법에 홀릭하게 된 과정들을 모두 담고 있다. 아울러 한국의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한 격려도 아끼지 않는다.

"단 한 마디의 말도 이해할 수 없는 낯선 환경에 갑자기 떠밀려 들어갔을 때 느낀 극한의 공포를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언어는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끈이었다. 이제 그 끈이 끊어지자 나는 혼란에 빠졌다. 공통의 언어라는 울타리에서 떨려났다는 외로움은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35쪽)

영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퀸즈 자메이카에 위치한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으니 어찌 황당하지 않았으랴.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친구를 사귀는 것은 고사하고, 화장실조차 맘대로 갈 수 없는 형편이었을 것이다. 다들 수업시간에 웃고 떠들어도 모두지 웃지 못할 진풍경을 자아냈을 것이다. 그야말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녀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수면부족으로 헛것들이 보였던 것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마냥 나쁜 쪽으로만 흘러간 건 아니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도피성을 만들어갔다. 이른바 공동도서관에서의 책 읽기가 그것이다. 책읽기는 그녀에게 포근한 피난처였다고 밝힌다.

물론 그의 내성적인 면은 그곳에서만 활개를 친 건 아니었다. 그녀가 피아노와 바이올린과 발레를 배운 것, 그것은 모두 친구들과의 사귐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한 이유였다. 물론 천신만고 끝에 SAB의 발레단에 입단할 자격을 부여받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그 꿈마저 좌절되고 만다. 그 일은 그녀에게 두고두고 상처로 남았다.

"내가 SAB를 그만둔 것은 고등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훌륭한 성적을 올린다는 중요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다. 단련과 노력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체제는 그저 나에겐 맞지 않았다. 숙제도 하지 않았고 과제물도 읽어 가지 않았다. 리포트도 제때 내지 않았다. 시험 준비는 끔찍할 정도로 안 되어 있었다."(103쪽)

어찌보면 우울증과 같은 고통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낮에는 잠만 자고 싶고 밤에는 학과 과정이 아닌 다른 책에 몰두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간섭하고 통제하려 했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잔소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어떻게 법과 친해질 수 있을까? 그녀가 생기발랄한 대학생으로 돌변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야말로 예일대의 대학생활에서 얻는 자유로 인함이었다. 그 시절부터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스승이 그녀가 쓴 논문을 보고서 극찬을 했을 때 그녀는 뜨거운 학구열로 달아오른다. 그야말로 180도가 달라진 것이다.

"조언을 반길 준비가 된 학생에게, 특별한 스승이 적절한 시기에 선사하는 격려의 힘은 매우 강력할 수 있다. 거의 하룻밤 사이에 나는 수업에 신경을 쓰고 도서관에서 예습을 하는 학생으로 변했다. 밤이 하얗게 새도록 책을 읽으며 가졌던 죄책감 어린 즐거움은 그 해에 체계적인 문학공부로 자연스럽게 변모했다.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다는 감동적인 느낌은 텍스트에 대한 생각과 글쓰기로 이어졌다."(141쪽)

그녀에게 있어서 위대한 터닝 포인트가 된 게 바로 이 지점이지 않았을까? 흙속에서 진주를 캐내도록 격려해 준 그 스승과의 만남 말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녀는 옥스퍼드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1999년 하버드에 입학한 뒤에는 법학을 따로 전공했던 것이다.

언어 때문에 어린 시절엔 도서관 이용자로만, 십대 시절엔 발레 수련생으로 온 몸을 던져야 했던 그녀. 이제는 숱한 연구와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고 있다는 그녀. 이제는 하루가 시작되면 책상에 앉아 여러 가지 글과 생각들을 훑으며 세심하게 일을 하게 될 시간들이 기다려진다는 그녀. 과연 그녀는 대한민국의 젊은 학생들에게 뭐라고 조언을 할까?

"나는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떤 것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고 자신의 마음을 끈다면, 그것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라. 만약 나를 아침에 벌떡 일어나게 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하라. 어떤 부모들은 이런 질문도 할 것이다. 우리 아이가 영화나 야구에만 열광하면 어쩌죠? 그것 또한 열정이다. 열정의 정확한 내용보다는 열정이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262쪽)

이는 엄마와 겪은 갈등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그 시절의 아픔을 토로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자라나는 한국의 중고등 학생들은 자신과 같은 길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진정한 격려이기도 할 것이다. 뭔가 가슴 벅차오르는 일이라면, 꿈속에서도 그 일이 생각나는 일이라면, 기꺼이 그 일에 매진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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