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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매일 108배..."반값등록금 기대도 못합니다"

사립대들 '등심위' 난항... 학교측 "등록금 동결 아니면 소폭 인하 불가피"

등록|2013.01.31 18:14 수정|2013.01.31 18:14

▲ 고명우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지난 대선 때 정치권에서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이겠다고 나섰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저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 박현진

"지난 대선 때 정치권에서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이겠다고 나섰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저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

지난 28일 만난 고명우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등록금 심의위원회(아래 등심위) 현황을 묻자 어려움을 토로했다. 등심위는 2010년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도입, 2011년부터 시행됐다. 등록금 책정에 있어서 학교 구성원들의 목소리 반영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다.

등심위는 대학별로 7명 이상의 인원(학생대표, 학교대표, 외부전문가)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다. 학교별로 차이가 있지만 보통 봄 학기 개강을 앞둔 1월 즈음에 열린다. 현재는 등심위가 단순한 심의기구로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일부 대학에서는 등심위 결정이 번복되는 경우도 있다. 내년부터는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등심위에 '의결권'이 부여되어 결정사항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강대는 올해 등록금 책정을 앞두고 학생들과 학교가 대립하고 있다. 등심위 진행은 멈춰진 상태다. 학생들은 2% 수준의 인하, 학교는 동결로 의견차를 보이고 있다.

고명우 총학생회장은 이런 상황에 대해 "학교와 정부가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자가 반값등록금을 약속할 만큼, 정치권은 한 목소리로 대학생 등록금 부담완화를 내세웠다. 박근혜 당선인도 소득 하위 80%까지 '소득 연계 맞춤형 국가장학금' 지원을 통한 반값등록금 실천을 공약했다. 다수의 총학생회장들이 "등심위를 앞두고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고 말했을 정도다.

20개 사립대 중 11개 사립대, 등심위 난항

▲ 1월 31일 기준 서울소재 20개 사립대학 적립금 및 등록금 인하율 현황. ⓒ 박현진


학 학교별로 등심위가 한창 진행 중인 요즘, 각 대학들의 표정은 어떨까. <오마이뉴스>가 서울소재 20개 사립대의 등심위 현황을 확인한 결과, 11개 대학에서 등심위 진행이 마무리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등록금도 동결 혹은 1% 내외 인하율을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총학생회장들은 학교의 불성실한 태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학교의 재정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회계자료 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학교에서 제출을 거부하거나, 미루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경희대, 이화여대 등의 총학생회가 참여한 서울지역대학생연합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지난 21일 연 '등록금 인하 촉구 기자회견'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지적했다. 이들은 "많은 대학이 등록금 책정과 관련된 자료조차 내주지 않는 등 등심위에 성실히 임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명우 총학생회장도 "학교에서 회계자료가 없다고 제출을 한참이나 미뤘다"며 "계속 요구한 끝에서야 '가안'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학교 측 대표들이 반말을 하거나 회의 일정을 하루 전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간절한 등록금 인하 요구... 매일 108배 하는 학생들

▲ 동덕여대 본관 앞에서는 매일 오후 1시마다 학생들의 108배가 이어지고 있다. ⓒ 동덕여대 총학생회


동덕여자대학교 본관 앞에서는 매일 오후 1시마다 학생들의 108배가 이어지고 있다. 최경은 동덕여대 총학생회장은 "등록금 인하가 학생들에게는 간절한데 학교는 무심하다"며 "절실함을 표현하기 위해 등심위가 끝날 때까지 108배를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최경은 총학생회장도 학교가 등심위에 임하는 태도를 꼬집었다. 그는 "등심위가 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 것 같다"며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어느 학교나 상황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진행과정에서 불협화음은 있을 수 있지만 학생들과의 대화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며 "학교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최경은 총학생회장은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이 지난 수년 동안 등록금 때문에 싸웠는데 바뀌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었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재정상황이 좋지 않은 사립대도 있기 때문에 정부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처럼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이상, 매년 1~2월마다 등심위로 대학가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강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서강대 학부등록금을 2% 인하하는데 필요한 재원은 14억 원 수준이다. 고명우 총학생회장은 "2012년 기준으로 서강대 적립금이 700억 원을 웃돈다"며 "사립대 등록금 인하는 여건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서강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원하는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하려고 노력했다"며 "사용처가 한정된 적립금을 등록금 인하에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국가장학금 이외에도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최경은 동덕여대 총학생회장(맨 아래)과 학생들이 등록금 인하 요구를 담은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박현진


대부분의 사립대 관계자들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등록금 문제로 기사가 나가면 학교만 욕 먹는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립대 관계자는 정부의 역할 없이 사립대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에서 반값 등록금을 하겠다 말하지만 국가장학금 확충밖에 없지 않느냐"며 "등록금 인하를 하기에는 학교재정만으로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국가장학금 '유형2'의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부가 직접 혜택을 주는 '유형1'과 달리 '유형2'는 주체가 각 대학이다. 한국장학재단은 '유형2' 지원대상을 '대학 등록금 인하 또는 장학금 확충 등을 통한 자체 노력을 이행한 대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대학의 자체적인 등록금 인하나 장학금 확충 수준에 따라서 차등지원 하고 있는 것.  정부는 이러한 방식이 대학들의 등록금 인하를 유도할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실질적 혜택도 없는 그 정도 유인책은 사립대들에게 등록금 동결이나 소폭인하만 하라는 이야기"라며 "분명한 제도적인 장치, 재정지원 없이는 사립학교들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장학금만으로는 부족...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현재 국회에는 이른바 '반값등록금 법안'으로 불리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안,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이 법안들은 소득분위·계층 차별 없이 모든 대학생에게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낮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원확보(국내총생산 1% 수준)를 위해 교부금을 내국세의 6%에서 2017년 8.4% 수준까지 인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선희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 제정안 등을 통해서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대학생들은 늘 등록금 부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총학생회장은 "이제는 학생들도 지쳐서 학내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며 "정부는 등록금 낮춰주는데 쓰이는 돈이 '땅바닥에 버리는 돈'으로 보이는 모양이다"라고 비꼬았다. 학생도, 사립대조차도 정부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박현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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