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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있는 여자' 박근혜 당선인의 '8년 전'

야당 대표 시절 "공직자 부동산투기 충격" 발언... 인사청문회 확대 주장

등록|2013.01.31 20:45 수정|2013.01.31 20:45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31일 서울 통의동 집무실에서 열린 전국 광역시도지사와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목에 두른 스카프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의 화합과 단합을 위해 협의회에서 마련했다. ⓒ 인수위사진기자단


"이번 고위공직자 인사 파문의 또 다른 충격은 모두가 불법적인 부동산 투기 의혹에 연루되었다는 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로 있던 2005년 4월 8일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한 말이다. 당시 고위공직자들이 도덕적인 문제로 줄줄이 사퇴하던 때였다. 그는 "'자산백지신탁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서 국회의원을 포함해 고위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재산을 불리는 일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며 "엄격한 공직자 윤리를 반드시 확립해 가겠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또한 "장관급 고위공직자가 줄줄이 불명예 퇴진하는 것을 봤다, 그토록 시스템을 강조해온 이 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인사시스템조차 작동되지 못했다"며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전 국무위원 등으로 확대하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8년 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 평가받는 박근혜 당선인의 입장은 달라졌다. 그는 30일 강원도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사퇴를 두고 "죄인처럼 혼내는 인사청문회로 인재를 데려다 쓰기 어렵다, 망신주기로 변질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1일에도 "신상문제는 비공개로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의 발언이 야당 대표 시절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김용준 전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어떠한 해명도 내놓지 못했다. 여기에 새누리당이 야당일 때 고위공직자 후보자들을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낙마시킨 것을 감안하면, 박 당선인의 발언은 이중 잣대를 보인 것으로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새누리당, 도덕적 문제로 DJ 정부 총리후보자 2명 낙마시켜

인사청문회는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0년 6월 시행됐다. 2000년 4월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된 당시 한나라당은 인사청문회에서 혹독한 검증을 별렀다. 2002년 7월 장상 국무총리서리(후보자)가 검증대에 섰다. 하지만 같은 달 29~30일에 있었던 인사청문회는 혹독했다. 한나라당은 장남 이중국적, 학력 부풀리기,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을 물고 늘어졌다.

결국 7월 31일 장상 국무총리 후보자 국회 임명동의안 투표는 부결됐다. 반대표를 던진 의원은 142명이었다. 100명의 의원만 찬성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125명인 것을 감안하면, 민주당에서도 반대표가 나온 것으로 분석됐다. 총리후보자로 지명된 지 21일 만의 일이었다.

당시 남경필 한나라당 대변인은 "공직자에게 행정능력 이상으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국민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한다, 정실에 따른 '깜짝쇼' 같은 DJ식 파행인사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며 "빠른 시간 내에 도덕성, 중립성, 전문성 등을 갖춘 신망 높은 인사를 다시 지명해야 할 줄 믿는다"고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이 그로부터 9일 뒤 장대환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다. 하지만 그 역시 장상 후보자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한나라당은 8월 26~27일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재산 신고 누락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결국 장대환 후보자 역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됨에 따라, 낙마 리스트에 올랐다.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는 임명동의안 투표 전 의원총회에서 "한나라당은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총리로 임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인사청문회 특위 간사 안택수 의원은 "우유부단한 풋내기 인사가 총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전효숙 헌재소장 후보자 발목잡기... 박근혜 당선인도 동참

▲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상정을 앞두고 2006년 11월 15일 오전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의장석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참여정부에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한 인사는 2명이다.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다. 이들이 낙마한 이유는 심각한 도덕적인 하자 때문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각각 전문성 부족과 절차상 하자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반대했다. 정략적인 반대였다는 평가가 많다.

한나라당은 2003년 9월 26일 국회에서 고려대 교수 출신의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시민단체들이 "직무수행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할 만한 사유와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을 정도로 눈에 띄는 하자가 없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윤 후보자가 인수위원회 출신인 점 등을 문제 삼았다.

당시 여당인 통합신당의 김근태 원내대표는 표결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운영은 행정부의 책임도 있지만 입법부의 책임이 없지 않은지 묻고 싶다"며 "'고등학교 때 왜 성적이 좋지 않았느냐', '왜 이혼했느냐'가 청문회 취지의 본질이냐, 국정운영을 엿 먹이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06년 8월 지명된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우, 당시 소수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을 점거하면서까지 반대했다. 가장 큰 반대 사유는 임명 절차였다. 청와대가 전효숙 후보자의 헌법재판소장 임기 6년을 보장하기 위해, 전 후보자로부터 헌법재판관 사직서를 받은 게 화근이었다.

9월 13일 청와대는 이병완 비서실장 이름으로 절차적 문제를 충실히 챙기지 못했다며 사과하고 절차를 바로잡았지만, 한나라당은 '코드 인사'라며 지명 철회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박근혜 당선인은 당시 대표 퇴임 후 첫 공개강연에서 "헌재가 헌법을 제대로 지킬 수 있겠는가, 지금은 만신창이가 됐다"면서 지명 철회 요구에 가세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급기야 11월 14일 국회 본회의장 의장 단상을 점거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은 굴복했고, 같은 달 27일 전효숙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생떼쓰기로 지명 철회를 이끌어낸 데에 비판이 거셌다.

전효숙 후보자는 한나라당을 겨냥해 "자신들의 요구대로 보정하여 진행한 절차까지도 원천무효라고 주장하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온갖 인신공격으로 후보자를 폄하해 사퇴를 집요하게 요구하다가 물리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했다"며 "헌정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은 절대로 용납 안 된다"는 입장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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