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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구국여성봉사단에는 연좌제가 없었다?

[추적 발굴] 514쪽 자료에 나타난 구국여성봉사단의 실체

등록|2013.02.02 19:48 수정|2016.10.28 17:59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 관계에 연이어 물음표가 달리는 가운데, 최순실의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와 그의 가족, 그리고 박 대통령의 과거 행적에 관심이 쏠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해 예전에 내보낸 기사 중 몇 편을 "다시 보는 오마이뉴스" 로 싣습니다(2016.10.29~30) [편집자말]
"이날 3천여 단원들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애국적인 여성봉사활동을 벌여 평시에는 사회의 그늘에서 소외돼 온 사람들을 위해 생활의욕을 높여주어 국민총화를 도모하고 유사시에는 후방에서 전투요원의 보조역할을 하여 조국수호의 역군이 될 것을 다짐했다."


1976년 4월 29일 자 <경향신문>은 구국여성봉사단 발단식 기사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대한구국선교단(총재 최태민) 부설단체로 출발한 구국여성봉사단에 명예총재로 인연을 맺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듬해 12월 8일 사단법인 구국여성봉사단 총재로 취임했다.

당초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여성봉사활동'을 표명했던 구국여성봉사단은 1979년 5월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구국여성봉사단이 주요사업으로 추진해 온 '새마음 갖기 운동'이 국민의 정신순화를 목적으로 한 범국민운동의 성격으로 확산됨에 따라 온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기구로 확대·개편키 위해 취한 조치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월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을 통해 70년대 말 문화공보부 문화예술국 문화과에서 작성한 새마음봉사단 관련 문서를 입수했다. 514쪽에 달하는 이 자료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마음봉사단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임원 신원조사서에는 사상관, 성질소행까지 기록

1979년 7월 서울시경찰국장은 문화공보부 장관 앞으로 새마음봉사단 이사와 감사 등 임원 13명에 대한 신원조사서를 보냈다. 대외비로 분류된 이 신원조사서는 문화공보부장관의 요청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문서에는 조사대상자의 인적사항 외에 사상관, 성질소행, 상벌관계, 기타 등 4가지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이사 배아무개씨의 신원을 조회한 문서를 예로 들면 사상관 항목에는 '용의점 발견치 못함', 성질소행 항목은 '온순 단정한 편임', 상벌관계에는 폭행죄로 벌금 4만 원을 낸 사실과 횡령죄로 입건되어 기소중지 된 사실이 나와 있다. 그런데 이 문서는 본인은 물론 아버지의 형제, 4촌과 5촌의 좌익 활동 경력까지 기록돼 있어 공식·비공식적으로 통용되던 연좌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신원조사서1979년 7월 서울시경찰국장이 문화공보부 장관의 요청으로 작성한 새마음봉사단 임원 중 1명에 대한 신원조사서(회보)에는 과거 한국전쟁시기 좌익활동 경력이 기재돼 있다. ⓒ 김도균


13명의 신원조사 문서 중에는 한국전쟁 당시 의용군 응모를 종용하는 시를 낭독하고 북한군 찬양 벽보를 붙이는 등 부역혐의로 검거되어 군사재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던 임원 1명과 큰아버지, 4촌오빠, 아버지의 4촌형제 등 일가친척들 좌익 활동 경력이 기재된 임원 1명의 신원조사서가 포함돼 있다.

다만, 이 신원조사서에는 "상기내용은 신원정보의 제공일 뿐이며 임명이나 승인 등은 결정권자의 재량에 속한다"는 문구가 있어, 임원 취임 여부가 결정권자의 재량임을 밝히고 있다. 실제 이 두 명 모두 새마음봉사단 임원으로 취임했다.

1980년 8월 1일 자로 공식 폐지되기 전까지 취업이나 공직임용, 해외여행, 사관학교 진학 등을 제한했던 연좌제의 사슬에 고통받았던 많은 국민에게는 전형적인 '이중잣대'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최퇴운 -> 최태민 개명 흔적 남아 있는 토지·가옥 대장


▲ 1975년 6월 21일 배재고교 교정에서 열린 한국 구국십자군 창군식에 참석한 박근혜씨. 오른쪽에 안경을 쓴 이가 최태민씨다. ⓒ 연합뉴스


새마음봉사단의 기본재산 중에는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775번지 소재 토지와 건물이 포함돼 있다. 이 지번에는 1979년 8월~1982년 7월 사이 새마음봉사단이 운영했던 새마음종합병원이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토지대장과 가옥대장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토지대장에 따르면 이 땅의 소유권은 1976년 6월 18일 '재단법인 야소교 동양선교회 유지재단'에서 최퇴운(崔退雲)으로 넘어갔다. 이듬해인 1977년 6월 10일 소유권자의 성명은 최퇴운에서 최태민(崔太敏)으로 바뀌는데, 변동 원인은 '성명변경'으로 되어 있다. 가옥대장도 날짜의 차이가 있을 뿐, 소유주가 최퇴운에서 최태민으로 변경되었고 그 사유를 '개명'으로 적시하고 있다.

토지대장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775번지의 토지대장에 따르면 1976년 6월 18일 최퇴운이 이 토지의 소유권을 넘겨받았으며, 1977년 6월 10일 소유권자의 이름이 최퇴운에서 최태민으로 바뀐 것으로 나온다. ⓒ 김도균


최퇴운은 지난 70년대 말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이른바 '최태민 관계 자료'에 등장하는, 고 최태민 목사가 사용했다는 7개의 이름 중 하나다. 가옥대장에 소유주가 최퇴운으로 적시된 등기 일자가 1977년 5월 20일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때까지 최 목사의 호적상 이름은 '최퇴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앞선 1975년 5월 이후 언론 보도에서 대한구국선교단 총재, 대한구국의료단 총재로 소개된 최 목사의 이름이 최태민인 것을 보면 최 목사는 적어도 2년 이상 호적상의 이름과 다른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네이버에서 '최퇴운'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1965년 8월 17일 자 <경향신문>을 찾을 수 있다.

보관료 미끼로 3백만원 사기1965년 8월 17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보관미 미끼로 3백만원 사취’ 제하의 기사는 당시 ‘서울지검이 남이 맡긴 쌀 1100 가마를 자기 것으로 속여 8회에 걸쳐 359만원을 사취한 천일창고 회장 최퇴운(51)씨 등 2명을 업무상 횡령 및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보관미 미끼로 3백만 원 사취' 제하의 이 기사는 당시 '서울지검이 남이 맡긴 쌀 1100가마를 자기 것으로 속여 8회에 걸쳐 359만 원을 사취한 천일창고 회장 최퇴운(51)씨 등 2명을 업무상 횡령 및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와 관련 중앙정보부 작성 '최태민 관계 자료' 중 '학·경력 및 성향' 항목에는 아래와 같이 기술돼 있다.

65.1 천일창고(주) 회장
※ 65.2.15 서울지검에서 유가증권 위조혐의로 입건되자 도피(약 4년)


'유가증권 위조'와 '업무상 횡령 및 사기'의 차이가 있지만, 천일창고 회장 최퇴운과 최태민 목사는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새마음봉사단 총재 박근혜' -> '경로마을 이사장 박근혜'에게 기증된 재산

사단법인 새마음봉사단은 1980년 11월 22일 이사 9명이 모여 같은해 11월 30일 자로 해산할 것을 결의했다. 새마음봉사단이 문화공보부에 제출한 공문에는 "사회봉사 활동과 충·효·예 정신의 바탕을 둔 새마음갖기운동을 전개해 왔으나 동 사업이 현재 사회정화 운동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어 총회 결의에 따라 자진 해산코자 하는 것임"이라고 해산사유를 밝히고 있다.

새마음봉사단 해체 전후로 법인소유의 서울시 북아현동 775번지 소재 토지와 건물, 인천시 남구 주안동 1389-1번지 소재 토지와 건물, 자동차 5대, 전화 5대는 사회복지법인 경로마을·경로복지원에 기증된다. 그런데 당시 이 사회복지법인의 이사장은 박근혜 당선인이었다.

1979년 11월 17일 작성된 재산수증증명서에는 기증인은 '사단법인 새마음봉사단 총재 박근혜'로, 수증인으로는 '사회복지법인 경로마을 이사장 박근혜'로 적시되어 있다.

재산수증서1979년 11월 6일 작성된 재산수증증명서에는 기증인과 수증인이 각각 ‘사단법인 새마음봉사단 총재 박근혜’, ‘사회복지법인 경로마을 이사장 박근혜’로 적시되어 있다. ⓒ 김도균


구국여성봉사단 발단1976년 4월 29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구국여성봉사단 발단 기사.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런데 새마음봉사단의 재산을 기증받은 경로복지원에도 최태민 목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구국여성봉사단과 동일한 소재지(북아현동 775번지)에 주소를 두고 있던 경로복지원의 전신은 1977년 6월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경로마을이었으며, 최초의 이사장이 최태민 목사였던 것이다. 최 목사는 1980년 6월 임기만료로 퇴임할 때까지 이사직을 유지했다.

박 당선인은 1979년 2월부터 1987년 10월까지 경로마을과 경로복지원의 이사장직을 유지했다. 경로복지원은 박 당선인 퇴임 이듬해인 1988년 4월 명지대학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명지학원으로 넘어가 '사회복지법인 명지원'으로 명칭이 바꿔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박 대통령, 통일원장관 임명1975년 8월 18일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유상근 통일원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 연합뉴스


명지대학 설립자 고 유상근씨는 박정희 유신 체제에서 1975~1976년 국토통일원 장관을 지냈다. 그는 1976년 4월 29일 열린 구국여성봉사단 발단식에도 박 당선인과 함께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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