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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힘이 되는 세상 열망하지 않으면, 파시즘 도래...

대한민국잔혹사

등록|2013.02.03 10:45 수정|2013.02.03 10:49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 아무리 여러 번 들어도 실제로 한 번 보는 것보다는 못하다)이란 말이 있지만, 우리 옛말에 "서울 안 가 본 사람이 서울 가 본 사람을 이긴다"는 말도 있습니다. 며칠 전 지인들과 김용준 전 국무총리후보자 낙마 이유 중 하나인 두 아들 병역문제를 비판하면서 저는 우리도 이제 모병제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저를 제외한 세 사람이 모두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아직 모병제는 성급하다는 논리를 폈고,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토론하다가 다른 일행이 와서 더 이상 토론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병영국가', 황군장교 유산...

제가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를 지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폭력 문화가 군대에서 왔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편견과 단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87년 5월부터 1989년 9월까지 군복무를 하면서 경험한 것은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저보다 먼저 군복무를 한 분들은 더 심각한 폭력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저도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을 당했고, 동기 중에는 선임병에게 구타를 당해 중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군 폭력 문화는 일제잔재 중 하나입니다. 독재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17년 동안 '병영국가'로 통치한 이유 중 하나가 일본군과 황군장교로 살면서 몸에 물든 '폭력성'이 한 몫했습니다.

"후배들을 다잡기 위한 일본 군대의 폐습인 기합 문화. 이런 무조건 적인 폭력 문화는 박정희 통치 기간에도 역시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만화 박정희 1> 87쪽(백무현 글 ㅣ 박순찬 그림 ㅣ시대의 창 펴냄)

독재자 박정희를 칭송하는 이들은 그가 산업화와 경제개발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거뒀다는 논리를 폅니다. 하지만 이 빛나는 성과 뒤편에는 폭력이 폭력을 낳는 어둠이 자리하고 있음은 애써 외면하거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독재는 필요악이라고 주장합니다. 배불리게 했다는 이유로 폭력도 가능하다는 민주공화국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폭력은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성이 없습니다.

물론 지금은 독재자 박정희가 통치한 방식인 '병역체제'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더 교묘하고 은밀하게 국가는 폭력을 자행합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비판세력을 감옥에 가두어버렸지만, 이명박 정권은 '밥줄'을 끊었습니다. 용산참사는 아직 진행형이고,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 노동자는 죽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오히려 국민을 보호하기보다는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만들었습니다.

▲ 대한민국잔혹사 ⓒ 한겨레출판

이 같은 일이 이어지는 이유는 폭력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무지 때문입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한겨레 21>에 2년간 연재한 글을 모은 <대한민국 잔혹사>(한겨레출판)은 마르크 블로흐(Marc Bloch)가 말한 "과거에 대한 무지가 현재의 이해 부족을 초래한다"는 주장을 되샘질시켜주며 폭력을 반성하지 않으면 폭력은 반복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힘이 정의를 지배하고, 군림해온 대한민국 역사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폭력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파악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 과거사는 '잔혹사'였지만 현재와 미래는 잔혹사가 반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4·3 사건'여순 반란, 빨치산, 그리고 용산참사는 6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사건으로 전혀 관련성이 없는 것 같지만, 지은이 생각은 다릅니다.

이승만 정권이 양민을 '적'으로 규정한 것처럼 이명박 정권 역시 용산철거민들은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적'이었습니다.

4·3 사건' 양민과 용산참사 철거민은 공권력 '적'...

"망루에 올라가 강제 진압을 당하지 않으려고 화염병을 준비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생존을 위한 버티기를 국가와 국민에게 공격을 가하는 테러 세력의 폭력으로 간주한 사고방식이었다. 폭력 기구로 무장한 채 도심에서 버티는 농성자들은 이명박 정부에는 신속히 제거해야 할 '적'이었던 셈이다. 용산 참사는 한국전쟁 전후 시기와 마찬가지로 토벌의 논리, 공권력이 미치지 못한 후방 영역에 '적'을 그냥 둘 수 없다는 생각, 혹은 대항 폭력을 방치할 수 없다는 다급함과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용산 농성자들은 비록 정부를 공격하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가 위협이었다"(본문에서)

하지만 권력자로부터 폭행을 명령받은 자들은 "상관의 명령이므로 복종했을 뿐"(1951년 거창 학살 책임자 이종대), "나는 철저히 '상명하복' 원칙을 지켰고 조직을 위해 십자가를 졌다"(고문 기술자 이근안)면서 자신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변명한다고 지은이는 지적합니다. 즉, 국가와 권력이 명령했기 때문에 자신의 폭력은 정당하다는 논리입니다. '절대복종', '상명하복'이 인민의 자유와 인간존엄성 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논리는 결국 잔혹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은이는 "옳은 자를 강하게 하는 일은, 정치의 무대에 누가 서는가, 어떻게 정치를 하는가의 문제다"라며 "그러자면 우선 옳지 않으면서도 힘을 갖게 된 사람들의 이력과 연유를 만천하에 알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탄핵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해주는 일도 그만큼 중요하다. 관심, 앎, 연대, 공감은 옳음에 힘을 부여하는 무기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정치를 힘이 정의로 군림하게 된 한국 사회의 메커니즘 속에서 다시 읽어야 하고, 힘이 정의가 된 역사를 반추하면서 정의가 힘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열망해야 한다."(본문에서)

정의가 힘이 될 수 있는 세상 열망하지 않으면, 파시즘 도래...

정의가 힘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열망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1980년대로 돌아갈 수 있음을 지난 5년 동안 경험했습니다. 불의와 국가폭력에 저항하지 않으면 유신독재로 회구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유신헌법이 이렇듯 국가를 신성시하며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을 깡그리 무시하고도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라는 내용을 헌법에 집어넣은 사실이야말로 오늘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집어넣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즉 유신헌법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는 '자유+민주'가 아니라 '자유민주'이고 정확히 말하면 '자유(민주)'다. 이 '자유(민주)'는 공산 독재는 배격하나 반공 독재와 자본 독재, 더 나아가 파시즘까지 용인할 여지를 남긴다.(본문에서)

지난 30일은 20세기 '도살자'이자 가장 완벽한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오른지 꼭 80년(1932년)이 된 날입니다. 이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인권은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고, 자유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며, 민주주의는 스스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겨레>는 지난 31일 보도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또 "독재자가 독일사회의 다양성을 모두 쓸어버리는 데 고작 6개월이 걸렸다"며 "나치의 부상은 함께 한 독일 엘리트들과 이를 묵인한 사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영원히 경고가 돼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히틀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가능합니다. 박정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박정희식 통치행위를 그리워하는, 아니 거의 '종교성'을 지닌 존재로 추앙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히틀러와 박정희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양성이 없는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그것은 독재이자, 파시즘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100%대한민국', '국민대통합'을 강조하는 것이 심히 우려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민주주의에서 100%는 없습니다. 민주주의에서 대통합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대통합은 모두가 같은 생각, 모두가 같은 마음, 모두가 한 목표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김용준 전 후보자 검증을 "사적인 공격"이라고 분노한 것은 비판기능을 인정하지 않는 박 당선인의 정치인식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다양성은 비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을 탄압하고, 배척하면 독재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가 도래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국가권력 폭력을 넘어 자본권력 폭력 도래...

국가폭력을 넘어 자본권력 폭력이 그 도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지난 해 7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현대판 사병'이 등장한 사실이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컨택터스(CONTACTUS)'라는 용역업체입니다. 이 업체는 MBC, KEC, 유성기업 등 파업 현장뿐 아니라 여주 4대강, 제자교회를 비롯해 울산유치권, 마포공사장, 군산공사장, (천안)골프장, (용인)유치권, 재개발 총회 등 각종 분쟁 현장에 용역이 투입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국가권력이 아닌 자본권력의 폭력을 낱낱이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용역업체 직원 중에는 가난한 대학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은이는 이들 대학생 논리가 과거 우익 테러 조직이 주장한 논리와 비슷하다고 탄식합니다.

과거의 우익 테러 조직이나 오늘날 파업 현장에 투입되어 농성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용역 직원들의 행동의 동기는 거의 동일하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용역업체에 들어왔다는 한 대학생은 "긴급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살기 위해 봉을 휘두른다"라고 말하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떳떳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을 안 하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고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토로한다.(중략)예나 지금이나 우익 테러의 명분은 동일하다. 과거의 '공산당 때려잡기'가 오늘의 '종북 때려잡기'로 변했을 뿐이다. 우익 테러 세력이 이제 합법적으로 설치된 회사의 직원이라는 점이 과거와 달라진 점일까? 사설 테러 조직이 공권력을 대신하는 나라에서 국가란 도대체 무엇일까?(본문에서)

국가 폭력 철저히 반성과 성찰, 살림누리를 열어가...

그리고 올해 들어 <오마이뉴스>는 특별기획 '헌법 위에 군림하는 이마트'를 30일 현재 19번째 보도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잔혹사가 자본권력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제 할 일은 대한민국 잔혹사를 반성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잔혹사를 반성하면 폭력은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폭력으로 스러져간 이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잔혹사가 되풀이 하지 않도록 반성과 성찰을 몸에 녹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앞날은 잔혹함이 아니라 살림누리입니다.
덧붙이는 글 <대한민국 잔혹사> 김동춘 지음 ㅣ 한겨레 펴냄 ㅣ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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