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어느 공직후보자를 보고
큰 고기는 중간 고기를 먹고, 중간 고기는 작은 고기를 먹다
▲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1월 2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도중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내 어린 시절 집안의 아저씨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면 주 메뉴가 배고팠던 얘기, 상급자나선임에게 매 맞은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혹 군대에서 휴가라도 나온 집안 아저씨가 있으면 친척들은 돈을 모아 귀대할 때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곤 했다. 그 이야기는 내가 군에 갈 무렵에도 통했다.
1960년대 말, 나는 학훈단 장교(ROTC7기)로 입대했는데 그 가장 큰 이유가 군에 가서 매를 맞지 않기 위함과 그 다음은 집에서 돈을 갖다 쓸 형편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은 야만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그 이전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수만 명의 굶어죽은 아사자와 얼어 죽은 동사자가 속출하자 그 주범을 총살까지 시켰겠는가. 그래도 잠시뿐 이 나라 군대는 줄곧 부패의 온상으로 백성 위에 군림했다.
나는 광주보병학교에서 16주 기초교육을 수료 후 더블 백을 메고 명령에 따라 갔다. 최후 종착지는 전방 보병사단 소총소대장 보직이었다. 첫날 소대원과 상견례를 나누고 울고 싶었다. 그야말로 돈도 백도 없는 팔도의 힘없는 소총소대원들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내가 근무한 부대는 중대 단위로 파견된 부대였다. 부대생활을 하며 지켜보니까 소대원보다는 중대 행정요원들이 그래도 그 세계에서는 특권층이었는데 그들의 애로도 무척 컸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중대장이 중대행정 근무비를 자기 주머니에 넣고 쓰기에 중대원들이 그때마다 그 돈을 달라고 하지 못하고 자기 주머닛돈을 털어 쓰거나 심지어 문서 수발하는 행정병들이 10킬로미터가 넘는 대대본부나 연대본부 문서 수령 길에도 걸어 다녔다.
그러자 중대행정요원 가운데 약은 놈은 소대원들을 갈취하기 시작했다. 소대원들의 휴가나 진급 장난이 주 미끼였다. 또 내가 근무하던 그 시절에는 월남파병이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돈에 환장한 놈들이 한탕해 오겠다고 서로 월남에 가겠다고 지원에 뒷돈을 썼고, 월남에서 전사자가 속출하자 후기에는 서로 파병되지 않겠다고 뒷돈을 썼다. 그래서 펜대 잡은 놈은 늘 이래저래 검은 돈을 챙겼다. 가장 신성해야 할 군대가 보통 썩은 집단이 아니었다. 그런 세상을 수십년 살고 보니 사실 우리나라 기성세대 사람들은 대부분 웬만한 부정에도 둔감하다.
▲ 전방 소총소대장 시절의 필자 ⓒ 박도
망국의 원인
이즈음 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개망신을 당하고도 사퇴하지 않고 '내 배 째라' 식으로 버티는 모양이다. 그의 도덕률과 잣대로는 자기 앞으로 나온 특정업무경비를 자기 통장에 넣고 썼기에 뭐 그리 대단한 부정이냐고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더욱이 여당 원내대표라는 자가 그 자를 성원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자기가 전 현직 대통령 그 누구보다도 더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모양이다. 하기는 틀린 말도 아닐지 모른다. 아직도 그의 재산은 그들보다 적으니까.
갑신 이후로 갑오에 이르는 10년의 사이는 그 악정이 날로 심하여 그야말로 큰 고기는 중간 고기를 먹고, 중간 고기는 작은 고기를 먹어 2천만 민중이 어육이 되고 말았다. 관부의 악정과 귀족의 학대에 울고 있는 민중이 이제는 참으로 그 생활을 보존할 수 없이 되었다. 살 수 없는 민중이 혁명 난을 일으킴은 자연의 추세였다.
위의 글은 이이화 한국사이야기 18권 158쪽 <한국말년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결국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망국의 주된 원인은 지도층의 부정부패 비리 때문이었다. 내가 경험한 바, 그때 중대장이 중대행정 근무비를 제 주머니에 넣고 쓰니까 중대 전체의 비리가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 중대장이 그해 사단 최우수 중대장으로 표창을 받았다. 여기에 대한민국 현대사에 비극이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고위직들은 대부분 그 중대장이나 지금의 여당 원내대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같은 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잣대는 아직도 대한제국시대에 머물고 있다. 나라가 기울어진 뒤 한 소리 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 강원도 한 별 볼 일 없는 촌노인이 그 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
"하늘 무서운 줄 알라."
백성들의 성난 돌팔매를 맞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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