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권영국 무죄, 경찰 유죄"...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쌍용차 조합원 불법체포 항의한 권영국 변호사 무죄 받기까지

등록|2013.02.07 18:24 수정|2013.02.07 18:24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사태 당시 조합원을 불법으로 체포하는 경찰에 항의하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된 권영국 변호사가 지난 1월 25일 무죄를 선고받은 반면, 권 변호사를 체포한 경찰관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불법체포감금죄로 징역형과 함께 자격정지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 사건은 변호사가 무죄를 선고받고, 경찰관이 유죄를 선고받은, 단순히 유죄냐 무죄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판결이 나오기까지 경찰과 검찰에 맞선 변호사들의 지난한 과정이 숨어 있었다.

<사라진 정의, 거꾸로 선 법>의 저자인 한웅 변호사는 이 판결에 대해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될 공권력 남용과 범죄행위에 대한 지극히 마땅하고 당연한 판결인데, 이를 용기 있는 선고라고 평을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라고 촌평할 정도니 말이다.

권영국 변호사에게 무슨 일 있었나?

사건은 이렇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따르면 2009년 6월 26일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 당시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병력은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공장을 점거한 채 퇴거에 불응하던 조합원 6명이 공장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저지하며 퇴거불응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마침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법률전문가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현장에 있던 민변 노동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사법연수원 31기)가 이런 상황을 목격했다. 이에 권 변호사는 경찰에게 변호사 신분증을 보이며 조합원들에게 체포이유를 고지하지 않고 체포하는 경찰에 '부당하다'고 항의하며 체포이유를 고지해줄 것과 체포된 조합원들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이를 묵살하고 오히려 자신들의 체포업무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권영국 변호사를 공무집행방해죄의 현행범으로 체포해 수원 서부경찰서로 강제 연행해 조사했다. 권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들을 통해 평택지원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6월 28일 자정을 넘겨 석방됐다. 체포된 지 36시간만이다.

검찰은 권영국 변호사에 대해 공무집행방해 혐의와 항의하는 과정에서 전경을 다치게 한 상해 혐의로 기소했으나, 1심인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3단독 윤진규 판사는 2011년 10월 권영국 변호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이 항소했으나, 수원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윤강렬 부장판사)는 지난 1월 25일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이 권 변호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경찰병력이 쌍용차 조합원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체포이유 등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은 채 노동자를 체포한 행위는 위법한 공무집행에 해당한다"며 "따라서 권영국 변호사가 위법한 공무집행에 항의하며 체포이유와 변호인 접견을 요구한 행위는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권 변호사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방패를 잡아당겨 전경의 손가락이 다치는 상해가 발생했더라도 이는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정당방위에 해당하므로 상해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공소사실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 과정에서 경찰은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을 체포하고 30~50분이 지나서야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민변(회장 장주영)은 당시 논평을 통해 "법원의 재판에 의해 경찰의 조합원들과 권영국 변호사에 대한 불법체포라는 사실이 명백히 확인됐다"며 "권 변호사에게 뒤집어씌운 공무집행방해와 상해 혐의에 대한 검찰의 항소가 기각됨으로써 검찰의 기소가 처음부터 억지였음이 확인됐다"고 검찰을 질타했다.

변호사 불법체포한 경찰에 불기소처분 했던 검찰 이번엔 무죄 구형

한편, 권영국 변호사는 석방 뒤 자신의 체포를 지시한 경기지방경찰청 기동단 소속 유OO 중대장 등 경찰관들을 불법체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들에 대해 '혐의 없음' 불기소처분을 했다.

이에 민변과 권영국 변호사는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고, 서울고법은 "권영국 변호사를 체포한 경찰관들을 불법체포죄와 직권남용죄로 공소제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재정신청은 검사가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렸을 때, 그 결정에 불복해 검사가 소속된 고등검찰청이나 그에 대응하는 고등법원에 그 결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달라는 제도다.

이렇게 권 변호사와 민변은 재정신청을 통해 서울고법으로부터 공소제기명령을 받아 유OO 중대장을 법정에 세웠으나, 앞서 '혐의 없음' 불기소처분을 했던 검찰은 법정에 선 피고인 유OO 중대장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이에 대해 민변은 "법원의 재판에 의해 경찰의 조합원들과 권영국 변호사에 대한 불법체포라는 사실이 명백히 확인됐음에도 검찰은 권 변호사를 체포한 경찰관들에 대한 서울고법의 재정신청 결정 사건에서 불법체포를 감행한 경찰관들에게 무죄를 구형하는 기괴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검찰의 무죄구형 태도는 재정신청제도를 무력화시키는 몰지각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검찰의 무죄 구형에도 불구하고, 수원지법 형사10단독 이상훈 판사는 6일 권영국 변호사를 체포해 연행한 경찰관 유OO씨(당시 경기지방경찰청 기동단 소속 중대장)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불법체포감금죄를 적용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이상훈 판사는 "피고인이 당시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전경대원들을 동원해 노조원들을 에워싸 이동을 제한하고, 체포 이후에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체포 이유를 고지한 것은 적법절차를 어긴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변호사 신분을 밝히고 불법체포에 항의하며 조합원 접견을 요청한 변호사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한 것은 적법한 절차의 본질을 손상시킨 것이며, 변호사인 피해자의 명예와 신체적 자유를 훼손했다"고 유죄 이유를 밝혔다.

민변 "경찰과 검찰이 변호인 접견교통권 농락하려 했으나, 법원에 의해 실패"

이들 판결에 대해 한웅 변호사(사법연수원 28기)는 7일 트위터에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될 공권력 남용과 범죄행위에 대한 지극히 마땅하고 당연한 판결인데, 이를 용기 있는 선고라고 평을 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라는 글을 올렸다.

한 변호사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이는 단순한 일반 형사사건이 아닌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과 관련, 7일 환영 논평을 낸 민변은 "검찰이 무죄 구형을 함으로써 재정신청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었지만,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전부 배척하고 유OO 경찰관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고 밝혔다.

민변은 "검찰과 경찰이 한 통속이 돼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피의자들에 대한 미란다원칙과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을 마음대로 농락하려 했으나 (법원에 의해)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검찰과 경찰을 질타했다.

이어 "경찰관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하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 사건은 유OO 경찰관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이 사건의 배경은 노동자들과 힘없는 서민, 그리고 정치적 반대자에 대해서는 공무집행을 이유로 무시하고 짓밟아버려도 된다는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 그 공권력의 오만한 태도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민변은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적법절차를 위반한 체포감금과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을 침해하는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가시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리고 불기소처분을 내린 검사에게 다시 공소유지를 맡기는 재정신청제도를 즉각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재화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기소한 검사 징계하라"

이번 판결과 관련, <분노하라, 정치검찰>의 저자인 이재화 변호사(사법연수원 28기)는 트위터에 "수원지법, 쌍용자동차 사태 당시 노조원 체포에 항의하는 권영국 변호사를 체포, 연행한 경찰관에 대해 징역형 선고"라며 "검찰, 재정신청 인용결정으로 마지못해 경찰관을 불구속기소한 후 무죄 구형했으나, 법원이 유죄판결로 불법 두둔한 검사에게 '빅엿' 먹였다"고 검찰을 힐난했다.

이 변호사는 "수원지법의 이번 판결은 검찰이 '체포 후 체포이유를 고지한 경찰관의 불법체포를 묵인해 준' 관행에 제동을 건 의미를 가진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대검찰청은 불법체포한 경찰관을 봐주고, 불법체포에 항의한 변호사를 기소한 검사에 대해 징계절차를 개시해야 한다"고 권영국 변호사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한 검사에 대한 징계를 촉구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경찰에게 충고했다. 그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바라는 경찰 여러분, 수사권 독립은 권력자에게 잘 보여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검찰보다 공정한 수사를 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쟁취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사건 수사'가 절호의 기회입니다. 철저히 수사하도록 촉구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a href="http://www.lawissue.co.kr"><B>[로이슈](www.lawissue.co.kr)</B></A>에도 실렸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