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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진정만 8년째... 대법 판결은 도대체 언제?"

한국지엠 비정규직 해고자 진환씨 "투쟁 계속"... 사측, 2010년 2심서 유죄 선고받아

등록|2013.02.08 17:15 수정|2013.02.08 17:57
"불법파견 진정한 지 8년이 지났다. 대법원 상고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대법원에 항의 전화를 해도 말끔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비정규직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

한국지엠(옛 GM대우)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해고됐던 진환(38)씨가 설날 전에 억울함을 털어놨다. 그는 2005년 해고된 뒤부터 줄곧 한국지엠 창원공장 앞에서 펼침막을 들고 1인시위를 하거나 선전전을 수시로 벌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과 함께 관심을 끈 사업장은 한국지엠이었다. 한국지엠의 불법파견 논란은 2005년부터 시작됐다. 한국지엠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엠대우창원비정규직지회를 결성, 그해 1월 26일 노동부 창원지청에 불법파견 진정을 했다.

판결 기일조차 잡히지 않아... "모른다"는 답변만 들었다

▲ 옛 지엠대우(현 한국지엠) 창원공장 도급업체에 소속되어 일했던 비정규직 진환(38)씨는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한국지엠의 '불법파견' 관련 선고가 빨리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윤성효


노동부는 한국지엠 창원공장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해 2005년 4월 13일 창원지방검찰청에 사건을 송치했다. 당시 한국지엠 창원공장에는 6개 도급(하청·협력)업체에 843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검찰도 불법파견이라 봤다. 창원지검은 2006년 12월 데이비드 닉 라일리 전 사장과 6개 도급업체 사장을 파견법 위반으로 구약식(벌금) 처분했다. 그런데 사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법적 싸움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1심은 '무죄'라 했지만 2심에서 결과가 뒤집어졌다. 창원지방법원 형사4단독(판사 손호관)은 2009년 6월 닉 라일리 전 사장을 포함한 7명 모두 무죄 선고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인 창원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허홍만)는 닉 라일리 전 사장(벌금 700만 원), 6명의 도급업체 사장(각 벌금 400~200만 원)에 대해 모두 유죄 선고했다.

이에 사측은 상고했다. 대법원에는 2011년 1월 3일 사건이 접수됐다. 대법원 제1부(대법관 양창수)가 맡고 있는데 대법원 사건진행내용을 보면, 같은 해 1월 소송위임장과 상고이유서가 제출됐고 그해 3월 '열람·복사신청 제출'과 '주소보정 제출'이 있었다. 또 2011년 11월 4일 도급업체 사장 1명이 출국가능확인요청서를 제출한 뒤로, 진행된 내용은 없다.

상고이유서 제출 후 2년이 지났지만 아직 판결 기일조차 잡히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들은 답답하다. 진환씨는 2012년과 올해 1월까지, 총 두 차례 대법원에 전화로 문의하기도 했다. "언제 대법원 판결이 나오느냐"고 물었지만, 대법원으로부터 "아직 모른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대법원 서무 담당자와 두 차례 전화통화를 했다. 담당자는 '대법관 소관이라 아직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불구속 사건이라 기간 제한이 없다.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계속 항의하니까 그는 '서면으로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하더라."

매주 수요일 출근 선전전 벌이기도

진환씨는 요즘도 '불법파견 인정하라'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앞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출근 선전전을 벌이고, 한때는 펼침막을 들고 서 있기도 했다. 한국지엠 관계자들과 충돌도 생겼다.

"출근 선전전는 2년이 넘었고, 선전물 배포는 5년 정도 됐다. 처음에는 회사 사람들이 막으면서 몸싸움도 했다. 펼침막을 들고 서 있었는데 충돌했던 것이다. 펼침막이 파손을 입어 회사 사람들을 형사 고발하기도 했다. 회사는 저한테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는데, 나중에 무혐의 처리됐다. 요즘은 계속하니까 회사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진환씨는 한때 한국지엠 창원공장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다. 권순만·오성범씨와 함께 2006년 3~4월 사이 32일 동안 40m 굴뚝에 올라가 '불법파견 철폐' 등을 내걸고 농성했다.

노조 결성 뒤 한 도급업체가 폐업했다. 90여 명의 비정규직들이 한꺼번에 해고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 고공농성을 끝내면서 노사 합의를 했는데, 대부분 복직했지만 진환씨를 포함한 5명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고공농성을 벌였던 권순만씨는 한 노동단체 상근자로 있다. 진환씨는 정규직화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투쟁하고 있다. 지난 6일 진환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죽했으면 고공농성 하겠나... 불법파견 판결 나오면 나설 것"

▲ 한국지엠(옛 지엠대우) 창원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있다가 해고된 진환(37·가운데)씨가 지난해 2월 24일 오후 공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 뒤 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윤성효


- 오랫동안 '불법파견 인정' 투쟁을 해오고 있는 이유는?
"부당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서러움과 아픔이 있는데, 공장 안에서는 '외부인' 같은 느낌이다. 자동차 만드는 일을 같이하고 있는데, 비정규직한테는 내 일터가 아닌 것처럼 회사가 만들었다. 그 자체가 너무 부당하다. 같은 일을 한다면 같은 대우를 받은 게 당연한 것 아닌가."

- 한국지엠 창원공장 안에 아직도 불법파견이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가.
"한국지엠 안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등으로부터 수시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 회사는 불법파견 소지를 없애려고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노동부 판정 이후,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분리해서 작업을 한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된다. 자동차를 만드는데, '라인'이 흘러가는데 분리해서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초등학생이 봐도 아는 거 아니냐. 최근에는 혼재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이 급해 정규직이 일하던 자리에 비정규직을 투입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정규직이 특근으로 나오지 않아 비정규직이 그 자리에서 일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 요즘 한국지엠 창원공장 안에 일하는 비정규직들도 '불법파견' 사건에 관심이 많은가.
"대법원에서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을 했을 때,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들도 관심을 많이 보였다. 지금도 꾸준하게 연락하고 있다. 한국지엠에 대해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하면, 정정당당하게 나설 것이다."

- 요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비정규직은 커다란 사회적 문제다. 지금은 가족 안에서 비정규직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다. 정치권은 비정규직을 줄여야 한다고 하지만, 더 늘어나고 있다. '동일 노동'인데 '동일 대우'를 받지 못한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신문에 보면, 현대차나 삼성 같은 대기업들은 돈을 얼마 벌었다고 하는데, 비정규직은 더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호주머니는 얄팍해지고 있다. 그 돈은 어디로 갔나. 이윤의 대가는 노동자한테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 대기업은 '불법파견' 판결이 나와도 정규직화를 거부하고 있다. 회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 요즘 노동자들이 철탑 등에서 고공농성을 계속하고 있는데, 굴뚝 고공농성을 했던 사람으로서 심정은?
"고공농성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철탑에 올라가지 않으면 언론이 비정규직 문제에 주목을 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는 측면도 있다. 오죽 했으면 온갖 어려움이 있는데도 고공농성을 하겠느냐. 땅 위에서 할 수 있으면 누가 거기에 올라가겠느냐. 철탑이나 굴뚝에 올라가지 않게끔 노동자와 시민들이 관심을 함께 가져야 한다."

- 해고자 생활이 오랫동안 되고 있는데, 생계 어려움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용직으로 잠시 나가서 돈을 벌기도 한다.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설날 바람은... 다른 거 없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빨리 내려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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