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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

등록|2013.02.08 17:15 수정|2013.02.08 17:15
소설, 에세이를 비롯해 요리와 음식을 모티브로 한 문학 작품이 속속 등장하는 풍조다. 그 가운데서도 단순히 요리와 음식에 관한 맛깔스러운 묘사와 그에 얽힌 추억을 나누는 책들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즉, 밥의 의미에서 출발하여 현대인의 삶의 숱한 애환을 심층적으로 다룬 유승준의 <허기진 인생, 맛있는 문학>(유승준 저/소담출판사)가 눈에 띈다.

밥에게 인생 철학을 묻다

'밥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인간에게 먹고 사는 문제란 무엇인가'라는 저자 자신이 서두에서 밝히는 질문과 함께 저자는 먹고 사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이해하고 나면 인간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풀려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과거에 못지 않은 심각한 빈곤을 겪고 있다. 남들보다 '더' 성공하고 남들보다 '더' 경제적으로 풍족해지기 위해 현대인은 성인이 되고부터 죽는 순간까지 만족에 배가 고프고, 사랑에 배가 고프고, 여유에 배가 고프다. 물 말아놓은 찬밥에 김치 한 쪽, 나물 한 접시 놓인 밥상에 다섯 식구가 모여 앉아 밥을 먹었던 과거의 뭇 사람들보다 어쩌면 현대인은 더 극심한 허기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 박범신은 말한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번다면 행복해지는 게 목적이고 돈을 버는 것은 목표인데, 지금은 다들 돈 버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 되었어요. 많은 국민들이 불감증에 걸려 그게 마치 자신이 세운 목표인 것처럼, 자기가 스스로 생각한 것처럼 살고 있어요. 사실은 그게 자기 생각이 아닌데, 자기가 원했던 인생이 아닌데 말이죠.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폭력성이 우리에게 주입한 것이고, 우리는 그 포로가 되어 있는 거예요. 우리가 꿈꾸던 애초의 행복은 어디로 갔느냐 이거죠."

자본주의의 비틀린 이면이 부른, '먹고살기 위해' 시작된 처절한 몸부림이 부른 정신적 빈곤이야말로 이 책이 진정으로 채워주고자 하는 허기다. 책에 소개된 문학작품들은 우리 현대인의 자화상이며, 그에 곁들인 작가들의 인터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함께 나눠야 할 담론이자 위로다.

인간에게 밥이란 과연 무엇인가?

바다에서 밥상을 건져 올리는 한창훈을 만나면 바다가 달리 보일 것이고, 황석영을 만나 그가 권하는 꽃섬탕 한 그릇을 맛보면 잃어버린 시절의 추억을 되찾을 것이다. 편혜영을 만나면 패스트푸드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새로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손미나를 만나면 요리와 사랑이 빚어낸 달콤하고 짜릿한 호사를 누리게 될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식탐과 몸에 대한 구조적 탐구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백영옥의 작품도, 시장 사람들의 질펀한 이야기로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이명랑의 작품도 모두 그들 각자의 생생한 인생이 녹아 있기 때문에 남다른 공감과 설득의 힘을 지닌다. 세상에서 밥이 가장 무섭다는 김훈의 역설적인 말과 빵 속에는 해와 강물이 들어 있다는 신현림의 유쾌한 말은 언뜻 상반된 이야기 같아도 본질적으로는 그 의미를 같이한다.

열여덟 명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밥에 관한 모든 철학은 결국 희망을 찾는 목소리로 귀결된다. 일상이 허기질 때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들의 허기는 과연 무엇으로 채워질 수 있는지, 고독으로 인한 허기를 엉뚱한 욕망과 폭식으로 잠재우려 하지는 않았는지 반추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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