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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오면 생각나는 것들 ①] 설빔 짓기

무명베를 짜서 옷을 지어서 입던 시절, 설빔에 얽힌 이야기

등록|2013.02.09 09:52 수정|2013.02.09 09:52
나는 시골에서 자라서 설날에 대한 추억이 유난히 많다. 이제 설날이 되었으니, 그 설날의 추억들을 차례로 적어볼까 한다.

가장 먼저 설날을 맞이하는 어머니들이 해야 할 일은 베를 짜서 아이들의 설빔을 만드는 것이었다. 벌써 한 달 전쯤부터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줄 옷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베를 짰다. 지금처럼 옷을 사다가 입히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6·25 전쟁이 시작되어서 휴전이 되고 공비토벌 등으로 시끄럽던 그런 시절을 산골에서 보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집에서 어머니 손으로 다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그 후로 거의 10년이 지나서 초등학교 4학년 1955년 무렵에야 겨우 옷감을 사다가 옷을 지어 입을 수 있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전의 이야기를 해보자. 가을 농사가 끝나면 어머니들은 밭에서 딴 목화를 가지고 솜공장으로 가서 목회 솜을 만들어 오셨다. 이때부터 사실은 설빔을 짓기 위한 일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목화솜을 가져다가 기다란 요즘 길거리에서 파는 어묵꼬지처럼 길게 말아서 고치라고 하는 것을 만든다. 이것 고치를 가지고 물레에서 가느다란 실로 뽑아내는 것이다.

물레의 가느다란 가락 기다란 철사 바늘(?)에 솜의 끝을 손으로 비벼서 만든 실모양의 부분을 대고 물레를 들리면 물레가 가락을 돌려서 솜으로 만든 고치에서 가느다란 실이 계속하여 뽑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계속 돌리면서 가락의 아랫부분에다가 감아서 실꾸리를 만든다.

이렇게 실꾸리를 만들어서 이 실을 이용하여 씨실을 만들고, 실꾸리를 북에 넣어서 날실을 만들어서 차례로 엮어가면서 짜는 것이 무명베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짠 베는 그 폭이 약 45cm~60cm 안팎이다. 이렇게 짠 베를 20자 단위로 잘라서 팔기도 하는데, 이것을 한 필이라고 부른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사진(1956년)대부분이 집에서 어머니들이 직접 짜서 지은 옷을 입었다 ⓒ 김선태


이 무명베에 검정 물을 들이는데,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검정 색소와 조달이라는 소금기가 있는 약품을 함께 넣고 한 두 시간 동안 삶듯이 끓이고 물에 헹구어 말리면 검정베가 된다.

이 검정 베를 가지고 옷을 지었는데,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가 제단을 하여서 재봉틀로 박아서 옷을 지어주셨다. 이 무렵 우리가 살던 동네에는 재봉틀을 가진 집이 두 집 밖에 없었는데, 우리 집에서만 남의 옷을 지어 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의 옷을 지어주고 삯을 받기도 하였고, 이 삯이 무서워서 직접 손바느질로 옷을 지어 입히기도 하였다.

이렇게 솜에서 옷이 되기까지에는 적어도 한 달 가량이나 걸렸으니 설날에 입을 설빔을 하기 위해서는 음력으로 동짓달 초부터 시작이 되었었다. 이렇게 어머님이 직접 짠 베로 만든 검정 양복 한 벌을 얻어 입으면 동네에서는 가장 호사한 아이가 되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어른들의 칭찬을 받아야 했고,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곤 하였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설날이었던 셈이다.

내가 이렇게 어머님이 짜서 직접 물들여 지어주신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꼭 한 장이 있으니l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사진이다. 이 사진의 아이들은 대부분이 자기 집에서 짠 옷감으로 만든 옷들을 입고 있었고 몇 명 보성강발전소의 직원자녀와 면 서기라도 하는 집안의 자녀 등 부잣집아이들 6, 7명만이 도시에서 사온 옷을 입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개인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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