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치까치 설날 아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방앗간 ⓒ 김동수
까치까치 설날입니다. 아침일찍 어머니를 모시고 떡방앗간에 갔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설앞날 떡을 했지만, 어머니 연세가 들면서 일찍 맞겨놓고, 떡을 찾으러 갑니다. 점점 사람냄새 나는 설날은 저 멀리 도망가는듯해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까치설날 떡방앗간은 김이 모락모락 납니다.
"어머니 이제 설날 맛이 안 나죠?"
"이제 내 몸이 안 따라주니 그렇지."
"어머니 그게 아니고. 떡도 맡겨놓고 찾으러만 가니 떡하는 기분도 들지 않으니 점점 설날 같지가 않아요."
"그렇지. 옛날에는 떡도 집에서 하고, 조청도 만들고, 술도 빚고, 두부까지 만들었는데."
"요즘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옛날이 좋았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머니 올해는 무슨 떡 하셨어요?"
"찹쌀떡하고, 약밥을 했지."
"약밥은 옛날에는 잘 먹지도 못했는데."
"너무 비쌌지. 그래도 한 번씩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 옛날에 비싸 잘 먹지 못했던. 약밥. 하지만 어머니는 한 번씩 집에서 만들어주셨다. ⓒ 김동수
어머니 음식 솜씨가 대단했습니다. 두부와 정과(과일을 조청에 조려 먹는 음식), 약과 따위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대단한 분이었지요. 하지만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이제는 모든 것을 떡방앗간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 여기보세요. 쑥떡이 있어요?"
"쑥떡 좋지. 쑥이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데."
"우리도 쑥떡 하면 좋겠는데."
"쑥이 있나."
"올봄네는 쑥을 뜯어 쑥떡 좀 해 먹어야겠어요."
"내가 뜯을 수도 없고."
▲ 쑥떡입니다 ⓒ 김동수
향긋한 내음이 나는 쑥떡이 있었습니다. 쑥에 콩가루를 뿌려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가장 완벽한 음식 중 하나가 쑥입니다. 설날하는 떡은 지역마다 다르고, 동네마다 다르고 집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어김없이 하는 떡 하나가 있으니 가래떡입니다. 가래떡은 온나라 곳곳이 같습니다. 이름이 같은 떡이라도 조금씩 다른데 오직 가래떡 만은 같습니다.
떡국 한그릇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어릴 적에는 나이드는 것이 그렇게 좋았는데 이제 마흔여덟 살이 되니 나이 먹는 것이 왠지 부담됩니다. 이럴 때 떡국이 아니라 가래떡을 조청이나 벌꿀에 찍어 먹으면 제맛입니다.
▲ 가래떡을 벌꿀에 찍어 먹으면 제맛입니다 ⓒ 김동수
"가래떡은 벌꿀이나 조청에 찍어 먹으면 맛있다."
"조청이 뭐예요?"
"엿."
"조청에 찍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어요?"
"그럼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오늘은 조청이 없어 벌꿀에 찍어 먹을 수밖에 없어 아쉽네."
"아빠 그런데 가래떡은 떡국 끓여 먹는 것 아니에요?"
"떡국! 물론 떡국 끓여먹지. 하지만 이렇게 찍어면 정말 맛있다."
"나는 별론데."
▲ 가래떡 먹는 방법이 떡국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벌꿀에 찍어 먹어도 맛있어요 ⓒ 김동수
가래떡을 벌꿀이나, 조청에 찍어 먹기 전에 살짝 불에 구우면 더 맛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불에 살짝 구운 가래떡 맛을 모릅니다. 인스턴트 음식에 맛든 아이들에게 구운 가래떡과 벌꿀에 찍은 가래떡은 맛이 나지를 않습니다. 벌꿀이 입에 맞지 않는지 아이들이 가래떡을 아예 '떡볶이' 만들어 먹자고 했지만, 떡볶이는 뒤로하고 그래도 설날은 누가 뭐래도 떡국을 먹어야 합니다. 다들 떡국 한그릇을 먹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어머니에게 '약밥'을 먹자고 했듯니 대뜸하시는 말씀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어머니 약밥은 어디 있어요?"
"약밥? 한 되 밖에 안 해서 먹을 것이 없다."
"아까 찾아왔잖아요."
"손주 사위가 오는 데. 사위 줘야지."
"어머니 손주 사위 준다고, 아들 넷은 안 줘요?"
"손주 사위는 처음 오잖아."
"그래도. 우리도 좀 주세요."
"너무 적다. 먹을 것이 없다."
"조금만 주세요."
어머니 말씀에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난 해 11월 결혼한 외조카가 온다며 아들 넷은 아랑곳하지 않는 어머니. 지극한 손주 사랑 놀라웠습니다. 까치까치 설날 온 가족은 가래떡과 떡국 그리고 조카사위 먹을 약밥을 먹어면서 즐거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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